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횬 Oct 21. 2024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있나요?

 #3.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있나요?


그게 누구든 이십 대에는 빛이 난다. 특유의 빛이 있다. 외모의 생김새와 차림의 꼴과는 별개의 영역이다. 그 나이만이 가질 수 있는 젊음이라는 빛, 그것이 사랑받게 하고, 사랑하게 함을 그땐 알지 못했다. 지금 그때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글쎄.., 이미 세월이 묻어버린 터라 자연스럽게 뿜어내는 빛을 내 안에 담지 못할 것만 같아서 나는 그냥 여기를 택할 것이다. 그게 더 현명한 일이란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스무 살의 청춘은 스무 살일 때 예쁜 것임을, 세상을 다 알지 못하는 사람이 뿜어내는 아우라는 따로 있음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세상을 알지 못해 그땐 결혼이라는 것은 언젠가는 나에게 오는 것이고, 그것을 피하거나 애써 동경하지 않았다. 이십 대의 나는 눈에 띄는 예쁜 외모는 아니었지만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하얀 피부와 까만 눈동자의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여러 남자들이 호감을 표현했고, 이것저것 그들의 조건들을 따질 수 있었다. 누군가는 부러워했고, 또 다른 누군가도 그랬다. 이십 대를 함께 보낸 친구들이 그랬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얼굴은 예쁜 구석이 하나 없는 친구 영미는 큰 키에 흐느적거리는 걸음걸이가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런 그녀에게 남자들의 프러포즈는 끊이지 않았으니 우리에겐 늘 그것이 의문이었다. 더구나 또 우리 중 가장 내세울 것이 없는 외모를 가진 희선이는 무려 세명의 남자 중 고르고 골라 한 남자와 가장 먼저 결혼을 했다. 그 결정에는 우리의 역할이 컸다. 잠시 그 우리에 대하여 이야기를 할 때가 된 것 같다. 우리는 대학 시절을 함께 보낸 일곱 명의 친구들이다. 칠공주라는 촌스러운 별칭은 어딘가로 꾸깃꾸깃 접어 아무도 찾지 못할 곳에 숨겨두고 싶지만, 우리는 누군가에게는 단지 일곱 명이란 이유로 칠공주라 불렸다. 칠 공주 그 안에는 영미, 희선이와 함께 현모양처를 꿈꾸는 영현이, 나와 은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영현의 꿈은 현모양처였는데 아직까지도 결혼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현모양처를 울부짖는 영현이는 회사를 빨리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어쩌면 회사를 그만둘 수 있는 은신처가 현모양처일지도 모른다. 은서는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해 같은 학교, 같은 과에 입학했으니 일곱 중 가장 속을 터 놓을 수 있는 친구였다. 우리 둘은 그 당시 참 철이 없게도 희선이의 남자 셋을 평가했고 그녀가 세 번째 남자를 선택하기를 고대했다. 그리고 어느 날 저녁, 그녀와 함께 하는 술자리에서 우리는 세 번째 남자를 언급했다. 희선은 매우 진지했다. 그리고 얼음물을 시켜 벌컥벌컥 마셨다. 두 손으로 두 볼을 세게 수차례 쳤다. 알코올의 기운을 물리치려는 것이었다. 그리곤 반듯하게 떠지지 않는 눈을 겨우 부릅뜨곤 두 손을 턱에 괴어 우리를 주시했다.      


“다시 이야기해 줘 봐”      

“응?”     

“난 누구를 선택해야 할까?, 누구를 선택해야 행복할까?”      


그때 우린 그 선택이 얼마나 무거운지 알지 못한 채 우리들의 생각을 주저리주저리 떠들었고, 희선이는 우리 생각을 그대로 따랐다. 물론 희선은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고 했다. 은서와 나는 조마조마했다. 희선이 오히려 다른 선택을 했으면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희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왠지 우리가 반절쯤 껴안은 느낌이었다. 너무나도 다행스러운 것은 희선은 세 아이를 낳고 누구보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희선이는 결혼을 선택하며 매우 진지했고,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고, 수차례 되물었고, 수많은 밤을 고민했다. 나도 그랬었어야 했다.      


본론으로 들어가 내 남편, 장현우.     

 

내 남편, 착한 장현우. 속이 깊고 매사에 진지하다. 다정하고 모범적이다. 일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그 진중한 삶의 태도가 내 마음에 닿았다. 한마디로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 현우를 만나기 전, 물론 나에게도 수많은 선택지가 있었다. 그중 현우를 선택한 것은 희선이만큼의 고민은 없었지만, 그를 존경했기에 내 삶이 그와 함께라면 단정해질 거라 여겼다. 그것은 그의 외모가 주는 신뢰감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수려한 반듯한 외모에 꾹 다문 입, 반전의 시원한 웃음의 태는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었다. 어쩌면 나는 그의 황홀한 모습에 눈이 가려져 이면을 들여다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이면을 알려주는 단서는 꽤 있었다. 짧은 치마를 입었을 때 그의 반응이라던가, 그의 친구들과 음식을 차려 먹어야 했을 때, 설거지를 요구하던 그의 모습이라던가, 여자니까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무언의 요구들이 이상하기는 했었다.


결정적으로 그를 낳아 키워준 부모를 만나러 간 날, 그의 동생을 만나러 간 날, 그는 내가 아는 그가 아니었다. 그때 멈췄어야 했다. 그의 엄마가 그를 보는 눈빛, 자리에 앉아 있지만 없는 것 같았던 그의 아버지, 그리고 나에 대한 배려는 볼 수 없었던 그의 태도, 그도 처음이어서 그려려니 생각했다. 그 순간이 그에게는 처음이니 그의 가족들 대화 안에 나를 끼우려 노력하지 않은 그의 행동을 탓할 수 없었다. 불편하고 의아한 식사는 끝이 나고 설거지를 하려 일어났다. 그의 엄마, 지금의 나의 시어머니는 나를 다시 자리에 앉히며 말했다.      


“야, 야, 할 날 많다. 앉아 있그라”      

“아.. 네.”      


그땐 어머니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컸다. 현우의 행동이 괘씸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괘씸함이 잘못 느낀 감정이려니 애써 그 감정은 내려놓고 나는 웃었다. 앞으로 잘 지내야 할 사람들이니, 그저 웃었다.  돌이켜 생각해도 참 의아했던 그 자리의 의문이 풀리다 못해 그때 멈추지 못함을 내내 후회했다. 그것은 조금 더 예민하면 알 수 있는 것이었음을. 그 집을 나서며 엘리베이터를 탄 순간 또 다른 사람이 된 현우를 보면서도 나는 눈치채지 못했었다.


“고생했어”


현우의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에 의아한 마음은 녹아내렸다. 결혼식 날까지 현우는 늘 다정했고, 엄마와 새아버지를 아들같이 살뜰하게 챙겼으며, 동생에게도 형 노릇을 톡톡히 했다. 장현우는 그런 남자였다. 남편으로 선택을 망설이기엔 너무 아까운 남자, 결혼날이 다가올수록 알 수 없는 의아함이 내 안에 자라고 있었지만, 그것은 결혼이란 것에 대한 두려움 정도로 느꼈다. 결혼은 내가 선택했지만 운명처럼 느껴졌고 그날이 다가왔다.      


칠공주 중 희선이 가장 먼저 결혼을 하고, 몇 달 뒤 내 차례가 되었다.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어 새로운 내 삶에 대한 기대로, 현우와 매일을 함께 할 수 있음이 그저 기뻤다.  특별할 것 없이 무난하게 결혼식이 마무리될 것 같았던 마지막 지점에 칠공주의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고, 흥겹고 경쾌하게 결혼식은 마무리되었다.


폐백을 하러 들어간 자리에서 어머님은 심기 불편한 표정으로 앉아계시다가 불편한 한복치마를 부여잡고 어색한 기운을 뿜으며 일어나셨다. 나에게 다가와서 귀에 대고 한 말씀을 하시곤 다시 자리로 가셨다. 순간 나는 창백해졌고, 그 공간, 그 시간이 흐려졌다.      


“너, 두고 보자.”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고개를 흔들어 보았다. 두고 보자니, 이게 폐백자리에서 이제 막 결혼식을 마친 며느리에게 할 이야기인가? 절을 한차례 하고 고개를 들며 어머니 표정을 살폈다. 한없이 인자한 표정, 나는 잘못 들은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현우야, 있지, 어머님이 아까 폐백실에서... 아니다. 아니야. 내가 잘못 들었을 거야”

      

순간 현우의 표정은 굳어졌다. 현우는 그랬다. 자신의 부모님 이야기만 나오면 평소의 표정을 잃었다.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여행, 신혼여행을 위한 길을 서둘러야 했다. 누가 주인공인지를 알 수 없을 만큼 어른들의 손님으로 북적거렸던 결혼식장을 벗어나니 두고 보자는 어머님의 말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은 신혼여행 중 내내 작은 가시가 손끝에 박힌 듯 한 번씩 아리게 했다. 내내 편하지 않은 마음은 그날부터 시작이었다. 누구와 결혼한 건지 수천번의 물음표를 그려낸 나의 결혼은 가슴 시리게 그리운 스무 살 시절마저 애써 돌아보지 않게 만들었다.


지금 나는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없다. 그것이 얼마나 사람을 종잇장처럼 만드는지 아는가? 물이 닿으면 금세 녹아내릴 것 같은 습자지만큼 얇아진 나는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생기기를 꿈꾸었다. 그것이 내가 여기를 벗어날 수 있는 시작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이전 02화 안고운 엄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