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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 3. 삶이 흔들릴 때면

by 심횬


#3. 삶이 흔들릴 때면


중간고사 기간, 시험 감독 시간표가 메신저로 전송됩니다. 시험감독 배치표에서 제 이름을 찾습니다. 과목시험 감독으로 3시간, 자습 감독으로 2시간이 배치된 것을 확인합니다. 자습 감독으로 들어가는 시간은 업무와 멀어져 읽고 싶었던 책 한 권 가볍게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마음도 가벼운 시간입니다.


그날, 자습감독 시간에 두 아이를 발견했습니다. 셋째 줄에 앉은 남자아이는 다음 시간 시험공부를 열심히도 합니다. 열심히 글로 쓰고, 쓴 글을 중얼중얼 읽더니 다시 씁니다. 연필을 쥐어 잡은 손, 힘이 잔뜩 들어간 어깨, 반짝이는 눈에는 분명 시험을 잘 보겠다는 목표의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 뒤에 앉은 여자 아이는 주변을 살피더니 그대로 엎드려 잠을 잡니다. 가까이 가보니 책상 위에 책은 없습니다. 지퍼가 열린 필통 속에는 각양각색의 펜들이 보입니다. 긴 머리를 축 늘어뜨리고 잠을 자는 모습은 그냥 엎드려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리저리 낙서가 된 종이 한 장에는 공부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고 한참을 바라보니, 시험을 불과 몇 분 앞두고 잠을 선택한 아이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아이에게 들어야 합니다.


자습 감독이 끝나고 두 아이에게 너무나도 묻고 싶었습니다. 왜 너는 이렇게나 열심히 시험공부에 집중을 한 것인지, 왜 너는 시험을 코 앞에 두고 잠을 선택한 것인지를 묻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엎드려 잠을 잔 학생의 마음이 다칠까 봐 여서였죠. 명확한 답에 대한 갈증은 수업 시간 아이들을 더욱 자세히 살피게 했습니다.


중간고사 시험이 끝난 다음날 만난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시험은 어땠어?”

“샘, 망했어요”

“응? 왜? “

“공부 안 했거든요”


“공부는 왜 안 했어?”


그 말에 여러 명의 아이들이 답을 합니다.


“그냥요”

“공부가 뭐예요?”

“의미가 없어요”

“공부하기 싫어요”

“원래 안 해서 못하겠어요”


그리고 눈이 마주친 한 남자아이는 그저 웃고 맙니다. 학교는 디자인특성화고등학교입니다. 중학교 시절 공부가 싫어, 그림이 좋아 이곳을 입학한 친구들이 절반이상이죠. 알고 보면 정서적 어려움을 온 마음에 채우고 있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아니 어쩌면 90프로 이상일지도 모릅니다.


아이들 삶은 흔들리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겐 그 삶을 붙잡아 세워 줄 어른이 필요합니다. 그 어른을 찾아 학교로 온 것이란 생각을 하니, 가슴에서 뭔가가 울컥해 옵니다.


자아존중감, 자기 효능감, 단기목표설정, 장기목표설정, 대인관계능력, 소통능력, 긍정적 효능감, 끈기와 몰입, 동기역량, 정서역량 등 아이들에게 채워야 할 것들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교사의 삶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자아존중감, 자기 효능감, 끈기와 몰입이 백 프로 풀 충전된 상태란 있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언어들이 물론 저에게도 가득 차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삶을 가르쳐야 하는 교사는 우리가 걸어온 걸음 안에서 알게 된 것들을 아이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지식과 기능만을 가르치는 교육은 알맹이 없는 빈 껍데기와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사의 삶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교사의 삶, 당연히 흔들리는 날들이 있습니다. 어느 순간 문득 삶이 휘청이는 때가 찾아옵니다. 학교에 와서 수업을 하고, 학생들을 만나고, 업무를 처리하는 똑같은 하루를 지내다가 어떤 이유인지 명확히 알지 못하지만, 혹은 명확한 이유 때문에 무너지는 느낌이 드는 날이 있습니다. 어떤 날은 아무 일도 아닌 말 한마디에 크게 상처받거나, 사소한 실수에 오래도록 자책하고, 때로는 평소 같으면 웃어넘길 일에도 이유 없이 눈물이 맺히곤 합니다.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명확한 삶의 흔들림도 있지만, 보통은 삶이 흔들리는 것에는 이유가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어느 날은 관계 때문입니다. 학생과의 작은 갈등, 동료 교사와의 어긋남, 학부모와의 오해가 마음을 무겁게 짓누릅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의심이 마음을 잠식하기 시작하면, 그 작은 균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또 어떤 날은 번아웃이 원인입니다. 달력의 빈칸 없이 빽빽하게 들어찬 일정들, 수업 준비도 채 끝내지 못했는데 쏟아지는 행정 업무들, 해결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잡무들에 정신없이 휘둘리다 보면, 어느새 몸도 마음도 텅 비어버립니다.


'나는 교사로서 성장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 계속 달려야만 하는 걸까?‘


질문만 가득한 채, 정작 답은 찾지 못해 무기력해집니다. 때로는 특별한 이유 없이 우울감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열심히 살아가는 중인데, 문득 삶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 수업 시간에 아이들의 눈을 마주 보면서도,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을 때. 내가 왜 이 길을 걷기로 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완벽한 답은 아니지만,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해 봅니다.


우선, 흔들리는 나를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흔들리는 나를 다잡으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흔들린다는 것은, 그만큼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때 필요한 것은 ‘더 열심히 해야지’ 하는 다짐이 아니라, ‘그래, 지금 나는 흔들리고 있구나’ 하고 조용히 나를 안아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조급하게 몰아세우지 않아야 합니다. ‘왜 이렇게밖에 못할까’ ‘다른 선생님들은 다 잘하는데’라는 비교와 비난은 상처 입은 나를 더욱 위축시킬 뿐입니다. 다른 누구와도 비교하지 말고, 어제보다 오늘 한 발짝이라도 나아간 나를 칭찬해줘야 합니다.


또한, 나를 회복시키는 작은 루틴을 만들어야 합니다. 긴 시간을 투자할 필요는 없습니다. 5분 동안 좋아하는 음악 듣기, 10분간 햇살 아래 산책하기,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하늘을 바라보기, 책 한 페이지를 소리 내어 읽기 같은 소소한 행동들이 지친 마음을 다시 숨 쉬게 만듭니다.


무엇보다, 나를 지지해 줄 사람들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혼자 힘으로 견디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동료, 나를 믿어주는 친구, 때로는 전문가의 도움까지도 우리 삶에 반드시 필요한 안전망입니다. 혼자 울지 않고, 혼자 견디지 않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용기를 내야 합니다.


삶이 흔들릴 때마다 깨닫습니다. 흔들림은 약함이 아니라 성장의 과정이라는 것을. 나무도 가지가 흔들리면서 뿌리를 더 깊게 내리듯, 교사인 우리도 삶이 흔들릴 때 더 깊고 단단한 존재로 자라납니다. 그러니 괜찮습니다. 오늘 흔들리고 있다면, 그것은 더 좋은 교사가,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흔들리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나를 믿고, 작은 숨을 고르며 다시 천천히 걸어가면 됩니다. 우리는 그렇게, 다시 삶을, 수업을, 그리고 우리 자신을 회복해 낼 것입니다.


흔들리는 나를 다잡기 위해 거창한 변화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작은 실천 하나하나가 모여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 힘이 됩니다. 지금 이 순간, 숨을 고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이것은 교사뿐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알려줄 수 있는 방법들이 될 것입니다.


1.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 "지금 이 모습도 괜찮아."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느끼는 그대로 인정합니다. ‘나는 지금 슬프구나’, ‘나는 지쳤구나’라고 마음속으로 말해봅니다.

2. 하루에 단 한 번,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기 ➔ 5분 동안 핸드폰 없이 창밖을 바라봅니다.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을 끝까지 들으며 가사를 음미합니다. 짧은 산책을 하며 들숨과 날숨을 의식합니다.

3. 나를 지지하는 사람에게 다가가기 ➔ 동료 교사에게 커피 한 잔을 청합니다. (주제 없이 수다 떠는 시간도 회복입니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짧은 안부 메시지를 보냅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전문가 상담을 망설이지 않습니다.

4. 감정 일기 써보기, 하루를 마무리하며 오늘 느낀 감정 세 가지를 기록합니다.➔ [기쁨 / 슬픔 / 짜증 / 평온함 / 외로움 / 기대감 / 무력감 / 감사] 중 골라봅니다. "내가 오늘 느낀 감정은 ___ 였다. 그 이유는 ___ 때문이다." 문장으로 짧게 써봅니다.

5. 나만의 회복 루틴 만들기 매주 한 번, 수업과 업무와 무관한 '나를 위한 활동'을 예약합니다.
(예: 꽃시장 가기, 영화 보기, 글쓰기, 드라이브, 운동 등)➔ "일주일 하루는 일찍 나서서 일찍 문을 여는 카페 들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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