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되면 자연스럽게 출근 준비를 하고, 학교에 도착해 교실로 발걸음을 합니다. 교사의 하루는 늘 같은 루틴으로 지나갑니다. 작은 에피소드들이 생겨 하루의 시간을 당겨줍니다. 괄목할만한 큰 사건이 생기지 않는 한 교사의 하루는 큰 파도 없이 잔잔합니다. 물론 그 시간 안에서 쉴 새 없이 노를 젓고 있는 것도 우리지요. 쏟아지는 업무와 함께 분주한 일과 속에서 수업은 종종 무게감 없는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다 문득, 하루를 돌아보며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나는 어떤 교사일까?”
“내 수업은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학교 안에서 교사로 살아가는 시간들이 어떠신가요? 혹시 빽빽하게 탁상 달력에 적힌 해야 할 일의 체크리스트에 함께 스며들어 ‘나’라는 존재는 그저 달력 귀퉁이에 적힌 글자처럼 느껴지지 않나요? 마치 수업 시간표에 맞춘 삶을 살며 그 사이 비어 있는 시간에는 수업 준비가 아닌 업무를 쳐내기에 바쁜 삶이 바로 우리입니다. 그러니 내 삶을 들여다볼 여유는 없지요.
수업이 잘 안 되는 이유, 수업을 하고 나오면 온 에너지가 다 빠지는 느낌에 급하게 믹스커피를 찾는 행동의 이유가 그저 내 수업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아이들이거나, 쳐내고 쳐내도 되돌이표인 업무 탓을 해봅니다. 그것은 해소되지 않는 찝찝함으로 마음을 후벼 팝니다.
수업이 힘든 건 하나의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수많은 요소들이 서로 엮이며 예측불가능하게 작용하지요. 그 요소들은 심지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살아있는 무형의 요소들입니다. 교실은 그야말로 수많은 관계들이 얽히고 얽혀 있는 공간입니다. 수업의 다양한 요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교사의 내면, 학생의 내면, 교사-학생 상호작용, 학생-학생 상호작용, 교수, 관계, 경계, 그리고 이 안에서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수업 안에 존재합니다.
그 공간으로 선생님들은 다양한 배움의 장치들을 준비해서 용감하게 들어갑니다. 들어가는 마음은 호기롭지만, 나오는 마음은 천차만별, 어느 날은 무겁게 무너집니다. 잘하고만 싶은 수업인데 왜 그럴까요? 열심히 활동지를 준비하고, 짜임새 있게 수업을 구성했는데 그것이 답이 아니라면 답은 무엇일까요? 답을 알려드리기 전에 선생님의 수업을 같이 체크해 볼까요?
수업 준비는 늘 하루살이인가요?
수업을 하러 교실로 들어가는 마음이 꽉 차게 무거운가요?
수업이 늘 고민이 되고 어려운가요?
수업을 하고 나올 때 왠지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나요?
수업 때문에 교사로서의 자신감이 떨어지나요?
저 경력 교사인 시절, 저는 다섯 개 모두가 해당되었습니다. 수업에 휘둘려 감정까지 제 멋대로인 열심히 쌓은 성인데 알고 보면 모래성, 툭하면 흐트러지는 여리디 여린 교사가 저였습니다.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호했던 제 삶을 수업으로 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죠. 교사의 삶이 층층이 쌓이고 쌓여 어느 날 제 삶과 만납니다. 제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 가치관, 삶을 대하는 태도가 선명해지면서 그것을 수업으로 들이게 됩니다.
수업 회복의 첫 번째 방법은 ‘삶을 수업에 담는 것’입니다. 수업이 힘들게 느껴지는 이유는 수업과 내 삶이 '따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수업은 단지 ‘교과 내용을 전달하는 활동’이 아닙니다. 수업은 교사의 삶이 고스란히 스며드는 영역입니다. 교사의 삶이 녹아들어 그 삶을 무의식 속에서 그 삶을 아이들에게 전합니다. 삶의 언어에는 열정, 끈기, 몰입, 긍정적 사고, 감사 등의 에너지 넘치는 것들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사의 삶은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흔들리며, 때로는 회복을 기다립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꾸어볼까요?
‘나는 내 삶을 수업 안에 담고 있나요?’
수업 회복은 내 삶과의 연결에서 시작됩니다. 수업이 어렵게 느껴질 때, 우리는 흔히 ‘방법’을 찾습니다. 좋은 활동, 매력적인 도입, 새로운 디지털 도구… 분명히 도움은 됩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교사로 살아가는 나의 내면을 살피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수업이란 결국 교사인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드러내는 시간입니다. 내가 불안하고 흔들릴수록 수업도 그렇게 흔들립니다. 내가 지치고 나를 돌보지 않을수록 수업도 힘겹게 느껴집니다. 수업을 회복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나 자신을 회복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또 다른 시선에서 수업 회복의 시작은 ‘나다운 수업’입니다. 수업이 어려워지는 이유는 내가. 아닌 무언가가 되려고 애쓸 때입니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 평가받는다는 압박, 완벽한 교안을 만들겠다는 강박이 수업을 무겁게 만듭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기억하는 건 사실 그런 것들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기억하는 건, 수업 시간에 들려준 선생님이 삶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그것을 수업에 녹여 진심으로 아이들의 변화와 성장을 꿈꿀 때, 아이들은 압니다. 그리고 선생님을 닮으려 수업에 몰입합니다.
교사의 삶이 수업 안에 녹아 있을 때, 수업은 저절로 깊어집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수업이 쉬워지는 가장 단순하고 강력한 방법은, ‘나’를 담는 것입니다. 수업은 교사의 전문성을 보여주는 공간이자, 아이들에게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중요한 무대입니다. 교사의 삶이 단단할수록, 수업은 깊어지고 학생의 삶도 변화를 맞이합니다. 수업은 교사의 말과 행동,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장입니다. 학생들은 수업을 통해 교사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태도를 체득합니다. 정직, 존중, 성실, 경청, 책임감 등은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일관된 삶의 태도를 통해 자연스럽게 전달됩니다.
10년 전 졸업생이 학교를 찾아오는 일이 있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테이블에 앉자마자 이야기합니다. "전 선생님 하면 생각나는 건 '열정'밖에 없어요. 진짜 그때 그 모습이 멋졌어요. 선생님 보고 배웠잖아요" 그해 긴 육아휴직 후 복직을 했었거든요. 얼마나 열정이 넘쳤는지, 아찔합니다. 지금은 그 열정이 조금 식은 듯하여 등이 쭈뼛거려졌지만, 제자의 이야기에 흐뭇해졌습니다.
좋은 수업은 ‘좋은 교사의 삶’에서 나옵니다. 좋은 수업은 수업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수업의 깊이는 교사의 가치관, 경험, 일상의 성찰에서 비롯됩니다. 아이들은 수업을 통해 지식을 얻기도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이런 어른이 되고 싶다’는 모델을 내면화합니다.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당연히 그 선생님의 수업에서 신이 날 것이다.
"좋은 수업은 삶에서 시작되고, 또 다른 삶을 변화시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