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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by 심횬


고요함이 깊어진 밤 11시, 집안일과 아이들 케어를 마무리하고 드디어 노트북 앞에 앉습니다. 수업을 준비하기 위함이었죠. 매일 같은 루틴이지만 더 이상 투덜거리지 않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왜 이렇게 수업은 하루살이로 준비해야 하는 거야?" 라며 볼멘소리를 했던 참이었습니다. 새 학기 시작 전 수업을 계획하고, 교수학습평가 계획을 작성하며 그 계획을 선명하고 단단하게 정리했건만, 늘 밤이 되면 다음날 수업준비를 해야 하는 제 처지가 무척이나 안쓰러웠거든요.


그날은 달랐습니다. 마침 늦은 밤까지 고민하며 뒤엎어버린 수업 구성이 기가 막히게 아이들에게 스며들어 수업 기분이 최고였던 밤이었습니다. 스스로를 측은해했던 마음은 깨끗하게 사라지고 "하루살이 수업준비"는 교사니까 당연하다는 생각이 꽉 채워졌습니다. 세상의 사건들에 의해 주식시장이 요동치듯 수업 또한 학습자의 마음, 상황, 컨디션, 관계, 수업자의 마음, 상황, 준비에 따라 상승 또는 하락합니다. 매일의 수업이 한결같지 않으니, 전 수업에 비추어 다음날 수업을 다시 고민하고 계획해야 하는 것이죠.


그렇게 마음먹으니 "하루살이 수업준비"가 즐거워집니다. 내 마음대로 레시피를 개발하여 요리할 수 있으니 레시피를 개발하는 과정이 즐겁기만 합니다. 이상하게 어렵고 멀게만 느껴졌던 "수업"과 가까워지고 꽤 사이가 좋아진 기분입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수업을 파헤쳐 보기로 작정했습니다. 수업을 파헤쳐 찾은 답을 수업이 어려운 선생님들에게 예쁘게 담아 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이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행정업무, 학생생활지도, 학부모상담, 민원처리 등으로 수업은 어느새 후순위로 밀려나 있습니다. 제일 잘하고 싶은 것이 수업이고, 수업이 행복하고 싶은데 그 바람은 손에 잡히지가 않으니, 교사의 삶이 늘 불만스러울 때가 많았습니다. 꽤 오랫동안 저에게 수업은 그랬습니다. 결핍, 불만, 두려움, 욕심(잘하고 싶은)등의 키워드로 꽉 차 있었죠.


그렇게 교사로서 방황하던 시간은 꽤나 길었습니다. 수업은 늘 어렵고 결핍으로 느껴졌고, 교실은 익숙하지만 낯설었죠. 겨우 ‘해내야만 하는 일’로 느껴졌던 시절, 교사로서의 저는 존재감 없는 빈 껍데기 같았습니다. 그 힘겨움의 끝자락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내가 원하는 수업은 무엇인가?”

“아이들에게 어떤 배움을 주고 싶은가?”


"나"를 중심에 두고 "학생"과 연결되며 비로소 수업이 단지 지식을 전달하고 결과를 완성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수업은 만남이고, 연결이고 삶이었습니다. 어느새 21년 차 교사가 되었고, 새내기 수석교사로 시작을 하며, 수업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됩니다 "만남", "연결", "삶"이 수업의 답이란 것을요.


수업은 교사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가는지를 가장 또렷하게 보여주는 삶의 언어입니다. 그것은 교사의 눈빛과 숨결, 태도와 침묵에 스며듭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전하는 말과 행동, 수업의 방식과 분위기, 질문과 응답의 호흡…, 그 모든 것에는 교사로서의 철학과 가치가 녹아 있습니다. 교사의 삶은 수업 속에 조용히 스며들고, 학생들은 그것을 통해 지식만이 아닌 삶의 태도와 방향성을 자연스레 배우게 되는 것이죠.


선생님, 이곳에 남기는 이야기는 완벽한 수업의 매뉴얼은 아닙니다. ‘이렇게 수업하면 된다’는 정답도, 최신 교수 전략도 담고 있지 않았습니다. 대신, 수업 앞에서 고민하고, 흔들리고, 다시 일어서려 했던 교사로서의 기록을 담아내 누군가의 어려움을 어루만지려 합니다.


수업을 통해 교사로서의 자신을 회복하고 싶은 분, 수업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순간에 마음을 다잡고 싶은 분, 아이들과의 만남이 다시 살아있는 경험이 되기를 바라는 모든 선생님들과 만나고 싶습니다.


어느 날은 수업이 숨 쉴 틈이 되어주고, 어느 날은 엉망진창으로 끝난 수업 탓에 스스로를 자책하던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날들 덕분에 ‘나다운 수업’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할 수 있었죠. 수업을 회복한다는 건, 결국 교사로서의 나를 회복하는 일이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선생님들의 수업이 조금 덜 무겁고, 선생님들의 하루가 조금 더 가벼워지는데 조금이나마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좋은 수업은 삶에서 태어나고, 또 다른 삶을 변화시킵니다. 그 단순하고도 깊은 진리를, 함께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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