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이라는 터널 너머에도

퇴직자들의 모임에서 벌어지는 이권 다툼에서 인간의 한계를 보다

나이가 들어 퇴직이라는 터널을 지나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다. 직장에서의 치열한 경쟁과 권력 다툼, 그 모든 것들을 뒤로한 채 평온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30여 년간 공직에 몸담으면서 보고 겪었던 온갖 치졸한 다툼들, 승진을 위한 눈치와 아부, 동료를 짓밟고 올라서려는 발버둥들이 모두 과거의 일이 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추잡한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아니,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변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퇴직 후 활동하는 단체에서, 그것도 공무원 퇴직자들의 모임이라는 단체에서 목격하는 풍경은 여전히 낯익다. 젊은 시절 승진을 위해 싸웠던 그 더러운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아니, 오히려 더 노골적이고 추악해졌다고 해야 할까.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는 듯 거침없이 드러내는 민낯이 차라리 충격적이다.

처음에는 이해하려 노력했다. 평생을 관료 조직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니 그런 습성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리는 없겠지.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세월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는 것 같았다.


자기들보다 앞서가는 누군가는 제외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된다. 교묘하고 은밀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거나 변화를 시도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집단으로 견제한다. 그들만의 카르텔을 형성해 외부인을 배척하고, 기득권을 지키려 한다. 심지어 같은 퇴직자끼리도 출신 부서나 직급에 따라 은근한 서열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또 다른 권력 게임을 벌인다.

그리고 거기에 상처받는 사람들이 생긴다. 단순히 좋은 뜻으로 참여했다가 불쾌한 경험을 하고 떠나는 사람들, 진심으로 봉사하려 했다가 배신감을 느끼고 등을 돌리는 사람들. 그들의 상처받은 표정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나 역시 그런 상처를 받기도 했고, 때로는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사회적 지위에서 물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누군가를 밀어내고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려는 본성은 변하지 않는 것일까. 더 이상 승진할 자리도 없고, 쟁취할 권력도 없는데 왜 여전히 경쟁하고 다투는 것일까. 습관일까, 본능일까.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은 죽어 천국을 갈 때까지 더럽고 추잡할 것인가.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절망스럽기도 하다. 퇴직이라는 새로운 시작점에서도 결국 인간의 본질은 그대로구나 싶어서. 그렇다면 우리가 꿈꾸는 성숙한 노년, 지혜로운 어른이라는 것은 결국 환상에 불과한 것일까.

어쩌면 이것이 인간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죽을 때까지 욕망하고, 질투하고, 경쟁하는 존재.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결국 변하지 않는 본성 앞에서 무력해지는 존재. 그렇다면 우리는 이 추잡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홀로 앉아 들려오는 소식들이 착잡하다. 누군가는 또 상처받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 상처를 주고 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외모는 늙었지만 내면의 욕망과 질투, 시기는 여전히 젊은 시절 그대로인 사람들의 모습에서 인간의 한계를 본다. 백발이 성성해도, 주름이 깊어져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이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절망스럽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이 인간다운 것일까. 완벽하지 않기에, 끝까지 욕망하기에 인간인 것일까. 추잡하고 더럽다고 해서 그것이 곧 악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적 한계이자 숙명일 뿐일지도.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안에서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완전히 변할 수는 없어도 조금씩이라도 나아질 수는 있을 것이다. 서로의 추잡함을 이해하고 용서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는 것이 어른이 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들만 남은 채, 오늘도 홀로 앉아 세상을 바라본다. 여전히 착잡하고 혼란스럽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생각해보려 한다. 퇴직이라는 터널 너머에도 여전히 인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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