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신발을 벗는 순간 어깨가 떨어진다. 오늘도 누군가의 분노와 마주했다. 오늘도 누군가의 목소리로 뺨을 맞았다.
일곱 시간.
아니다. 이제 여덟 시간이다.
민원인의 얼굴. 휴대폰을 들고 있던 손가락. 큰 목소리. 제도는 잘못되지 않았는데 그들은 자꾸 제도 너머를 본다. 자신의 분노를 본다. 절망을 본다. 내가 그 절망의 대상이 된다. 마치 나 때문에 세상이 이렇다고 느끼는 것처럼. 모두가 그렇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그들뿐이었다.
책상 위의 서류더미. 결제를 기다리는 것들. 내일도 있을 것이고 모레도 있을 것이다. 끝이 없다. 마치 내 인생처럼.
떨리는 손을 안정시키며 냉장고문를 끌어 안는다.
두 다리를 쩍 벌인채 막걸리병이 서 있다. 탁한 흰색. 마치 내일도 같은 하루를 반복하라는 경고처럼 뿌옅다. 어제와 똑같은 맛인줄 알면서 군침이 돈다 왜 그러는지 720일이 지났어도 난 모른다.
드디어 내 손에 안겼다 자슥 안길거면서 두 다리를 벌리고 잘난 체를 하는 모습이 웃긴다
그래도 난 이놈이 좋다 항상 내가 원하는 곳으로 안내 하기에
집에서 가장 투명하고 깨끗한 요염한 모습의 잔을 꺼내어 본다 수줍은 웃음을 웃는다 마치 왕에게 선택 받은 궁녀처럼.
천천히. 손에 힘을 빼고. 마치 의식을 치르듯. 막걸리가 잔 밑에 가라앉는다. 탁한 부분이 아래로. 맑은 부분이 위로. 어제와 오늘이 섞여서.
손가락으로 잔을 돌린다. 보글보글 일렁인다.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것처럼. 마치 누군가 내 손을 잡아 같이 움직이는 것처럼.
한 모금.
그 사람이 처음 내게 막걸리를 마시라고 권했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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