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젤리피시 Jul 02. 2020

6. 전원생활 판타지 척살기_악성 민원러와 벌인 기싸움

이웃 잘 만나는 것이 복중의 상복


얼씨구, 똥물 타령     

“또오오옹- 물이 나온다고!!”    


동네가 떠나갈 듯 아랫집 노인의 똥물 타령은 오늘도 계속됐다. 건축 공사 내내 ‘비만 오면 공사장에서 흙탕물이 내려온다.’고 면사무소와 구청에 줄기차게 민원을 넣던 노인이었다. 건물을 다 짓고 나자 이제 그의 해코지는 흙탕물에서 똥물 타령으로 전이되었다.

노인이 문제 삼는 것은 우리 집 정화조에서 구거까지 연결해놓은 오폐수 관이었다. 마지막 맨홀에서 관이 30cm쯤 노출돼 있는데, 노인은 거기서 ‘똥물’이 쏟아진다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노인의 똥물 출현 신고를 받고 면사무소와 구청에서도 이미 여러 차례 다녀갔다. 하지만 노인의 눈에만 보이는 상상의 똥물이니 공무원들도 번번이 허탕을 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지경이 되었다. 아무도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자 노인은 틈만 나면 내게 시비를 걸었다.     


“아니, 어르신 제 집은 겨우 11평이고요. 일주일에 한두 번 혼자 들어와서 하루 머물다 가잖아요. 겨울에는 몇 달 동안 오지도 않고요. 제가 똥을 싸면 얼마나 싼다고 똥 타령이세요. 말씀대로 문제가 있었으면 준공 허가를 내줬겠어요?”    

“또오오옹-물이 나온다고!! 관을 틀어막을까 부다 그냥!”    


노인의 메들리 똥 타령이 다시 시작되자 이장님과 옆집, 앞집 주민들이 구경거리 났다고 몰려들었다. 마을은 졸지에 똥물 시연회장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뚜껑을 열자 사람들의 시선이 맨홀 안으로 쏟아졌다. 아무리 뚫어지게 본들 똥물은커녕 물이 흘러내린 흔적조차 없다. 세상에 이렇게 정갈한 맨홀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끔한 상태에 모여든 사람들이 장탄식을 터트렸다.      


“어디에 똥물이 흐른다는 말씀이세요? 그리고 여기서 댁까지 거리가 멀어서 설사 똥물이 나온대도 아무 지장이 없을 것 같은데요.”    

“으흥, 그래? 내가 면장을 잘 아는데 면장을 오라고 해서 여기다가 밥상을 차려서 먹어봐야겠네. 냄새가 나나 안 나나!”    

“면장님과 식사는 김영란법에 안 걸리게 주의해서 하시고요. 말도 안 되는 똥물 타령 그만 하세요.”    

“뭐야! 그럼 마셔볼 수 있어? 마셔봐. 똥물 아니라며. 마셔봐 어디!”    


부창부수라고 가만히 듣던 노인의 부인이 북채를 잡고 추임새를 넣었다.     


“만약에 똥물이 나온다면 문제는 문제 아니겄어유?”    


나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똥물이 나오면 당연히 문제가 되겠죠. 문제는 안 나온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죠.”    


바보 같은 선문답이 오가는 사이 주민들도 흥미를 잃고 제갈 길로 흩어졌다.       

 

노인의 1인 시위     

시골에 들어가 살기 시작한 직후 벌어진 똥물 사태 이후 우리 집 맨홀 뚜껑은 2년 동안 열려 있었다. 영문도 모르던 나는 ‘누가 위험하게 뚜껑을 열어놨지?’하며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맨홀 뚜껑을 닫고는 했다. 하지만 며칠 뒤 와보면 뚜껑은 다시 열려있기 일쑤였다. 알고 보니 노인이 우리 집 똥물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맨홀 뚜껑을 뒤집어 놓는 것이었다.

노인은 뚜껑만 열어두는 게 아니었다. 맨홀 안에 물받이 통을 받쳐놓고 우리 집에서 똥물이든 뭐든 수상한 물질이 흘러나오길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여차하면 자기 똥을 던져놓고 증거물로 채택해 민원을 넣을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열성이었다.

노인은 맨홀 옆에 모기약통도 서너 개씩 전시를 해놓았다. ‘사람들아, 나는 윗집 맨홀에서 나오는 똥물과 냄새 때문에 모기가 꼬여 도무지 살 수가 없다.’는 극렬 시위용품이었다.  

   

“공사비 조금 들여서 파이프를 안 보이게 묻어버리면 안 될까?”    


어느 날인가는 보다 못한 이장님이 넌지시 중재에 나섰다. 노인의 주장이 말도 안 되지만 이웃끼리 다투며 살 필요까지는 없지 않느냐는 의견이었다. 내가 더 젊고, 이제 막 도시에서 이사 들어왔으니 시골 노인에게 인사한다 치고 공사비를 들여 민원이 발생할 수 있는 싹을 없애자는 요청이었다.

이장님 말씀을 듣는 사이, 나는 몰랐지만 정말 노인의 주장대로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살짝 쫄리기도 했다. 똥을 눌 때마다 불편한 마음에 괄약근이 움찔거려 평생 없던 변비가 걸리면 어쩌나 걱정스럽기도 했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노인이 보이기라도 하면 죄를 지은 것처럼 표정이 어색해지기까지 했다.  

사실 공사비를 들일 것도 없이 플라스틱 파이프를 30cm만 구해다가 오폐수관 끝에 붙이기만 해도 될 일이었다. 그러면 우리 집에서 흘러나오는 어떤 액체도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다.    

만약 노인이 나로 인해 조금의 피해라도 입었다면 나는 집을 다시 짓는 한이 있어도 해결해 주었을 것이다. 아니, 나 때문이 아니라도 노인이 이런저런 생활의 불편을 이야기했다면 공사비를 들여 해결해주었을 것이다.

실제 나는 집이 준공되는 시점에 맞춰 5만 원 권 40장, 현금 200만 원을 봉투에 담아 마을 발전기금으로 쾌척할 계획을 세워두었다. 발전기금 전달식에서 날릴 멘트도 부끄럽게 살짝 연습해 두었다. 날 좋은 때를 골라 주민들을 초대해 수육에 막걸리를 대접하며 입주 신고식을 거하게 치를 궁리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밑도 끝도 없는 노인의 텃세에 나는 심각하게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현찰이 넘실대던 봉투 주둥이는 냉정하게 닫혔고, 덩달아 내 마음도 굳게 닫혀버렸다.   

노인은 왜 누가 봐도 말이 되지 않는 일을 벌였을까, 노인이 그러는 데는 분명 무슨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상상의 나래도 펴봤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어렴풋이 내 땅의 전 주인과 어떤 감정싸움이 있었던 게 아닐까, 그때 풀지 못한 구원(舊怨)이 아무 상관도 없는 나를 향한 억하심정으로 발현된 게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아니면 조상 대대로 밖에서 굴러들어 온 외부인을 경계하는 습관적인 텃세의 일종이려니, 신입인 주제에 뭐라도 내놓으라는 시골 노인네의 공짜 정신이려니, 했다.    

나의 투쟁     

“이장님, 저도 시골에서 자랐지만 세상인심 이렇게 무서워졌는지 몰랐네요. 저는 부당한 텃세에 굽힐 마음이 없습니다. 자꾸 제게 져주라고 하실 거면 이장님도 저희 집에 오지 마세요.”    

“알었네. 나도 더 이상은 두말 않겠네.”    


나는 이장님이 들어서 서운해도 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선을 그었다. 그리고 아랫집 노인은 숫제 투명인간 취급하기로 했다. 드나드는 길에 노인과 마주치면 그래도 이웃이니 한동안 차창을 내리고 인사를 건넸는데, 노인의 무모한 텃세에 참 교육을 시전 하기로 결의한 뒤로는 인사마저 중단했다.

나는 노인이 항의의 표시로 뒤집어 놓는 맨홀 뚜껑을 보란 듯이 내팽개친 채로 놔두었다. 노인의 집과 우리 집 경계선에 자라는 풀도 뽑지 않았다.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인적 교류나 물적 거래도 중단해버렸다. 시골 이웃과 어울 더울 살아가기로 결심했던 나의 캐릭터는 딱 한 사람에게만 도시에서 막 이사 들어와 마을 정서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이웃과 교류할 마음도 없으며, 마을 일에 비협조적인, 지극히 까칠하고 싹수없는 이방인이 되기를 자처했다.

노인에게는 통탄할 일이겠지만 2년에 걸친 맨홀 뚜껑 시위에도 나를 옭아맬 증거물인 ‘똥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증거를 잡지 못했으니 심심풀이 여가활동이던 노인의 악성 민원 놀이도 금세 시들해졌다. 혼자 붉으락푸르락 분통을 터트리던 노인은 언제부터인가 기력이 다했는지 맨홀 뚜껑 뒤집어놓기 시위도 포기했다. 다만, 내 차가 지나가면 일손을 멈추고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레이저 안광을 내뿜는 저항은 계속했다. 나는 계속 노인을 투명인간 취급했다.

그 사이 친해진 이장님은 시골에 모처럼 들어와 박힌 젊은 사람이 행여 다시 도시로 돌아갈까 봐 틈만 나면 찾아와 ‘이제 악성 민원도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졌으니 마을에 정 붙이고 잘 지내보자’며 다독여주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아갔다. 아랫집 노인은 더 이상 똥물 타령을 하지 않는다. 2년에 걸친 신입 군기잡기가 대실패로 막을 내렸다는 걸 자각했는지 어쩌다 내 차라도 보면 슬금슬금 피하는 눈치다. 가장 가까이 지낼 수도 있던 이웃을 한 명 잃었지만, 나는 나대로 악다구니 끝에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다.  

도시에서 사람에 치인 상처를 치료하자고 시골로 들어갔는데, 시골에서 또 다른 형태의 악당을 만나는 일은 엄청난 고역이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고, 그 때문에 전원생활을 포기하고 다시 도시로 유턴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라는 점이다.  

시골에 들어가 살기로 결심했다면 이웃과의 적절한 관계 정립은 필수다. 피해를 끼치고 나몰라 하는 도시인의 깍쟁이 정신도 좋지 않지만, 행여 시골에서 더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걱정돼 처음부터 지나치게 굽히고 들어가는 것도 제 무덤을 파는 위험한 일이다.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노인과 화해하겠지만 당분간 나의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끝.    

작가의 이전글 5.전원생활 판타지 척살기_게으름의 역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