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 원격근무의 숨은 의미 "업무 경험 혁신"
재택근무는 장단점이 매우 분명한 제도입니다. 기대 효과도 있지만, 그만큼 리스크도 크다는 얘기겠죠.
재택근무는 팬데믹 이후 일하는 방식과 환경에서 아주 큰 화두였습니다. 그렇다면 일단 재택근무를 하면 뭐가 좋을까요? 엄밀히 말해 장점이라기 보다는 이런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효과 측면에서 살펴봐야할 것 같은데요. 재택근무에 대해 자주 이야기되는 기대 효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육아 등 일과 삶의 균형
재택근무를 하면 하루의 시간을 일과 삶에 적절히 분배해 보다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특히 출퇴근에 소요되는 시간을 세이브할 수 있어서 아이를 어린이집, 유치원에 등원시키고도 여유 있게 정규 업무시간 전에 책상 앞에 앉을 수 있게 되고, 출퇴근 스트레스와 시간낭비를 없애며 삶의 질도 한층 좋아질 수 있죠.
2. 개인 최적화 및 개인 업무시간 보장을 통한 업무 효율 향상
재택근무를 하면 내가 선호하는 환경으로 공간과 도구를 꾸리고 일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타격감 있는 기계식 키보드를 쓰고 싶어도 다른 사람들의 집중에 방해되면 안 되니까 회사에서 쓰기는 좀 어렵죠. 그런 것들이 집에서는 가능합니다.
또한 재택근무를 하면 개인 업무시간이 좀 더 보장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회사에서 불쑥불쑥 걸려오는 전화, 상사나 동료들의 호출과 도움 요청 등등 하루에도 몇 번 씩 예기치 못한 것들로 인해 집중이 흐트러지죠. 때문에 시간뿐 아니라 몰입도 측면에서도 재택근무가 더 효과적이었다는 경험담이 많습니다.
3. 불필요한 회의, 보고 축소 등 업무방식의 비효율 개선
2번과 약간 유사한 부분일 수 있는데요. 아무래도 대면 보고 빈도가 줄어들고,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다 보면 위계적인 보고문화나 비효율적인 회의가 완화되면서 수평적이고 효율 지향적인 문화로 개선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4. 공간, 시설 등 자원 운영 효율화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 그만큼 회사에 출근하는 인원이 줄어듭니다. 때문에 자율좌석제를 병행하면서 좌석 수를 축소할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업무좌석을 배치하는 것만 해도 부족했던 오피스 내에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여유공간이 확보되는 것이죠.
이 경우 그 동안 부족했던 다양한 공간을 추가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인원 충원 등으로 더 많은 면적을 확보해야할 때 실제 임차면적을 확장하는 대신 재택근무로 공간을 효율화할 수 있습니다. 필요에 따라 아예 임차면적을 줄여 비용을 절감할 수도 있죠. 공간뿐 아니라 모니터 등의 업무 도구, 탕비와 OA 비품 등 자원 투자를 줄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입니다.
5. 자율성 강화와 다양한 환경 경험 등을 통한 업무경험 혁신
재택근무는 '눈 앞의 관리'라는 기존 오피스에서의 일반적인 업무관리 체계에서 벗어나 개인에게 상당부분 자유도를 보장합니다. 관리자의 시야를 벗어난 곳에서 눈치 보지 않고, 과도하게 동료를 의식하지 않고 내게 맞는 스타일과 시간 계획에 따라 일할 수 있는 가능성이 늘어납니다.
또한 재택근무를 할 경우 공간에 대한 자유도가 있어 내 업무환경을 좀 더 나에게 맞게 꾸미고, 개선하고 하는 활동들을 더욱 다양하게 해볼 수 있습니다. 사무실 안에서만 일할 때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환경을 바꾸며 다양한 경험과 새로운 자극을 받을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이밖에 재택근무를 희망하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Z세대 등 인재들을 유입, 유지하는데도 중요한 전략이 될 수 있다는 점(이미 IT를 비롯해 많은 곳에서 이러한 관점으로 재택근무를 유지, 도입하는 경우는 많습니다)도 있지만, 이는 재택근무 자체의 기대효과라기 보다는 앞서 나열된 다양한 기대효과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타나는 결과로 보고 별도로 정리하지는 않겠습니다.
반면 재택근무를 하면 생길 수 있는 문제는 뭐가 있을까요? 이 역시도 단점이나 부작용이라기 보다는 현실적인 어려움이라고 언급하고 싶네요. 많이 이야기 되는 재택근무를 하며 마주하게 되는 부정적인 현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1. 업무와 일상의 불분명한 경계로 인한 혼란과 피로감
재택근무를 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이런 문제를 호소한 바 있습니다. 이른바 스위치가 제대로 전환되지 않는다는 것인데요.자율성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내가 시간을 알아서 사용하면서 언제 끊어야할지 몰라 퇴근시간이 지나도 명확히 일을 정리하지 못하는 상황을 겪기도 합니다. 육아 등 일 외의 생활이 중간중간 끼어들면 회사에서 일하는 것에 비해 내가 명확하게 시간 관리를 한 것인지 확신하기도 힘듭니다. 그런 업무에 대한 감각에 혼란이 생기면서 사람에 따라 오히려 업무 능률이 떨어지거나 또 다른 피로감을 느끼는 이들이 있습니다.
2. 비대면으로 대체 불가능한 고도의 협업이 어려움
회의는 문자나 언어로만 이뤄지지 않습니다. 듣는 이들의 표정 변화나 동작 등으로 반응을 캐치하기도 하고, 이런 비언어적 신호가 의사결정이나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칩니다. 아이디어 생성이나 문제해결 같은 많은 고도의 정신노동이 필요한 협업의 경우 한 공간에서 치열한 토론과 상호작용을 거쳐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아무리 비대면 회의 기술이 발달한다고 해도 오프라인에서의 긴밀한 협업에 대한 니즈는 여전하고 쉽게 해소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3. 네트워킹 기회 감소로 인한 조직 유기성과 구성원 간 사회적 유대감의 결핍
이미 사무환경과 일하는 방식에 있어서 소통은 매우 중요한 이슈이며,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여전히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재택근무를 하면 아무래도 이런 기회가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우연한 만남과 비일상적 상호작용이 중요하다고 하는 이 시대에 재택근무는 그런 기조와 상반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재택근무가 구성원들 간 만남의 기회를 제한하고, 이는 궁극적으로 사회적 만족도와 유대감, 조직 유기성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우려죠. 특히 신규 입사자들의 적응과 멘토링 등에서도 이슈가 될 수 있습니다.
4. 이직률의 증가 가능성
1, 2, 3번의 복합적인 영향은 회사에 대한 애착감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회사의 방향성과 가치관을 직원들에게 내재화하는데 애로사항이 생길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실질적인 피해로는 이직률의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험도 있습니다.
해외 한 조사에 따르면, 원격 근무자와 일반 근무자를 대상으로 이직에 대한 의향을 물어보자 일반 근무자는 28%가 현 회사에 머무르고 싶다는 의사를 나타냈으나, 원격근무자는 그 수치가 5%에 불과했습니다. 가뜩이나 우수 인재 확보가 중요한 이 시대에 이는 기업들에게 큰 걱정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5. 불균등한 업무환경
재택근무가 업무환경에 대한 개인의 자율성을 높여준다고 하지만, 반대로 업무환경을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거주환경에 따라 일하기 적합한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이들도 있고, 경제 수준에 따라 회사보다 기능적으로 떨어지는 환경에서 일해야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죠. 재택근무에서 사무실 근무로 복귀하고 싶다는 직장인들의 의견 중에는 사회적 관계뿐 아니라 기능적으로 업무에 적합한 환경이 필요해서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6. 산업안전, 보건, 보안 등 관리적 측면에서의 리스크
업무에 대한 주도권과 자율권을 직원들에게 주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직원에 대한 관리가 불필요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일을 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인사사고에 대한 관리와 대응, 보안 등의 이슈는 회사 관리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지만, 직원들이 회사 밖으로 나가면 일일이 통제하기가 어렵습니다. 보안의 경우 시스템적으로 많이 보강됐다고는 하나, 막말로 누군가 나쁜 마음을 먹으면 그것까지 제어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이처럼 재택근무에는 기대효과만큼이나 현실적인 문제들도 존재합니다. 이를 나열해놓고 보면 참 많은 생각이 듭니다. 과연 재택근무는 우리에게 득이 될 것인가, 해가 될 것인가.
문제는 기대효과와 현실적 어려움 모두 명확한 수치로 잡아내기 어려운 부분이 있고, '그럴 확률이 있다'(통계적으로 유의미할 수는 있겠지만) 정도로 봐야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 구성원의 성향에 따라, 현재 조직의 문화에 따라 실제 실행했을 때 어떤 효과나 문제가 발생하고 발생하지 않는지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수치적으로 플러스, 마이너스를 계산하기 어려운 것이죠.
제가 재택근무의 장단점이 아니라 기대효과와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달리 표현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저는 이런 기대효과를 누리기 위해 재택근무를 검토하되 이런 현실적 어려움을 어느 정도까지 극복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는 관점으로 접근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재택근무를 이런 단점이 있으니까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가 아니라, 이런 현실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가, 구성원의 우려를 어느 정도 해소하고 기대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이죠.
여기서 중요한 것이 회사의 방향입니다. 현재 우리의 일하는 방식은 우리가 추구하는 기업 철학, 가치관에 충분히 부합하는가, 일하는 방식과 문화의 혁신이 필요하지는 않은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궁극적인 가치는 혁신을 지향하더라도 현재는 안정을 꾀할 때인 곳도 있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기업 철학과 가치관에도 변화가 필요한 곳도 있습니다. 결국 그 기준에 따라 리스크를 관리하는 과제를 안고 가더라도 어떤 목적(기대효과 중 일부)이나 방향을 위해 재택근무를 도입할지 여부를 결정해야할 것입니다.
하지만 시장상황과 사회문화적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하는 이 시점에서 가급적이면 재택근무로 대표되는 원격근무 등의 업무방식의 혁신을 계속해서 테스트해보려는 노력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업무경험의 혁신 때문입니다.
업무경험, 또는 직장경험이란 직장 내에서 직원들이 얼마나 좋은 경험을 하느냐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외에서는 생산성, 직무만족만큼이나 중요하게 인식되는 가치입니다. HR적으로 업무경험 혁신이 곧 고객경험 혁신을 통한 기업의 지속가능 경영으로 이어진다는 의견이 다수입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실린 한 아티클에서는 직원의 업무경험 지수가 상위 25%인 회사는 하위 25%인 회사에 비해 3배 이상의 ROA(총 자산 대비 이익률)를 보인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에어비엔비의 기업가치가 메리어트 호텔을, 아마존의 기업 가치가 월마트를 따라잡는 시대입니다. 전통적인 사업 영역이라고 해서 그들만의 경쟁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각지 못한 다른 방식의 사업분야, 신생기업들과 경쟁하게 되는 시대이며, 그 경쟁자들은 기존 방식에서 벗어난 혁신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합니다.
이베이가 과거 국내 진출해 오픈마켓 양대산맥이던 지마켓과 옥션을 인수할 당시, 오픈마켓 시장 점유율이 무려 87%에 육박하는 것으로 평가되며 시장 독점 우려가 높았습니다. 이베이의 인수를 승인해준 공정위에 비판 여론이 일기도 했죠. 하지만 십여년이 지난 시점에서 온라인 커머스 시장은 네이버 쇼핑과 쿠팡을 중심으로 당시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글로벌까지 가지 않아도 시장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고 어떤 대응책이 필요할지 모른다는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 시대의 흐름을 읽고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기 위해 업무경험 혁신은 대다수 기업들이 고민해야할 과제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