땜빵용 기타리스트(2)
나는 다시 웃을 수 없었다. 성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전한 한 마디에, 내 얼굴에 편안한 느낌으로 자리하던 미소는 왼쪽 눈두덩에 일어난 작은 경련을 따라 부서져 내렸다. 뒷목이 무언가가 얹어진 것처럼 무거웠고, 입 안에서는 빠르게 침이 말라갔다.
'어떻게 해야 할까.' 세계가 사라진 한 가운데에 홀로 서있는 것처럼 모든 게 막막해서, 나는 생각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기보다, 그저 막막하게 몇 개의 글자로 이루어진 그 한 문장만 수도 없이 반복해서 떠올렸다.
“병이 있었어. 3년 전쯤에 병이 있는 걸 알았고, 그래서 입원도 했는데 결국엔 희망이 없다고 해서 퇴원했어. 누나가 그러기를 바랐거든. 어차피 오래 살 생각도 없다고, 그냥 하루라도 사는 것처럼 살아보고 싶다고. 그래서 학교에 돌아오긴 했는데 체력도 안 되고, 어차피 대학갈 필요도 못 느꼈으니까 보통은 오전 수업만 마치면 학교를 나왔어. 그리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몇 시간쯤 돌아다니다 집에 왔지. 집에 와 봐야 엄마 걱정하는 것만 보지 별로 좋을 게 없으니까 집에 일찍 오기가 싫었던 거야.”
성이가 말을 이었다. 나는 얌전히 성이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사실 녀석의 말이 별로 귀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막막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그래서 녀석의 말을 듣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녀에게 병이 있었다. 아마도 녀석의 말에서 내가 알아들을 수 있었던 부분은 그게 다였을 것이다.
“미안해”
나는 말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본능적으로 마른 입천장을 더듬던 혀가 몇 번이나 미끄러지다 겨우 던진 말이었다. 그래서 왜 그렇게 말했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것은 말이라기보다 미, 안, 해라는, 혀와 입술이 움직여 나온 세 음절의 소리에 불과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말과 함께 서서히 몸이 움직이고, 세계가 제 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심장이 뛰는 느낌이 아릿하게 가슴을 타고 목 위로 오르면서 코끝이 찡해지고, 지하세계의 숨죽인 사내들의 모습이 흐릿한 시야를 타고 들어왔다.
갑작스럽게 몸에 돌아온 감각을 버겁게 느끼며,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금 내 몸의 모든 감각이 규정하는 감정이 정말 ‘미안해’와 상통하는 것일까. 그럴 이유는 없었지만, 그렇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나는 정말 누군가에게, 무엇인가에 대해서 미안한 것일런지도 몰랐다.
내 미안하다는 말에 성이는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소리 없이 짧게 한 번 웃어보였다. 그 웃음을 보며, 나는 그것이 용서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녀석은 내 어깨에 손을 올려주지 않았지만, 나는 믿을 수 있었다.
녀석은 내가 알지 못하는 ‘미안해’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설령 나의 ‘미안해’가 전혀 ‘미안하다’라는 감정과 거리가 먼 것이라고 하더라도 왠지 성이는 나의 ‘미안해’에 숨겨진 속뜻까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용서’를 느낄 수 있도록 그의 감정을 전하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치유의 음악을 부를 때 그의 얼굴에 머금던 미소. 그의 웃음이 거의 그것과 같은 느낌으로 나를 위로했다.
그녀가 치유의 음악이라 부르던 성이의 노래는 끝내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감히 그의 음악이 치유의 음악이 아니었다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 노래를 부르고, 연주하던 사내의 미소를 확인한 내가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었겠는가. 그 곡을 치유의 음악으로 만든 것은 순전히 1년의 시간동안 오로지 그 노래를 위해 목을 가다듬었던 그의 몫이었던 것을.
“그 노래, 여기서 녹음한 거야. 누나는 내 노래를 꼭 한 번 듣고 싶어 했어. 만날 밖에서 형편없는 취급 받고 살던 동생이 뭔가를 한다니까 좋았나봐. 정작 밴드에서는 기타만 치는데도 언젠가는 내가 보컬 겸 기타를 맡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줬어. 나한테 그런 사람은 딱 둘이었는데. 리더 형하고, 누나. 내가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고, 리더 형이 드럼을 쳐줬어. 내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건 여기서 형이랑 단 둘이 있을 때뿐이야. 근데 누나는 몸도 안 좋고, 솔직히 여기가 환경이 좋은 편은 아니잖아. 그래서 형이 도와줘서 녹음한 거야.”
성이가 천천히 연습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입구에서 시작하여 낡은 LP재킷이 붙은 벽을 거쳐 철제 캐비닛에 이르기까지, 녀석의 눈길이 연습실 구석구석을 훑었다. 그러다 한 지점에서 녀석의 눈길이 멈춰 섰다. 먼지가 쌓인 드럼세트 옆이었다. 시선이 그곳에 멈췄을 때, 녀석의 눈에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엷게 일어났다. 아마도 그곳이 노래를 녹음할 때 그가 서 있던 곳인 듯했다. 그날 녀석의 표정은 어땠을까. 조금 전 기타를 치던 모습과 같았을까. 나는 성이의 시선이 머문 자리에 그날의 녀석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녀석은 조금 긴장했을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온전한 자신의 곡을 레코딩 하는 Delight의 남자. 1년간 다듬은 목소리를 비로소 세계 속의 누군가에게 전달하려는 그는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긴장감 속에 뿌듯함과, 그 노래를 간직할 한 사람을 위한 배려, 애정, 혹은 연민 따위를 애틋하게 녹여내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그날 그의 목소리는 세계를, 세계에 치유가 필요한 모든 이를 끌어안을 만큼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성이가 약간은 굳은 얼굴에 간간이 특유의 밝지만 무기력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한동안 기타의 튜닝상태를 확인한다. 잠시 손을 멈추고, 한숨을 쉰다. 한숨을 쉬는 동안, 지하 연습실의 먼지 묵은 공기의 움직임을 몸 안으로 받아들여 세계와 일체화되어가는 그의 몸. 천천히 그의 손이, 입술이 움직인다. 그렇게 그의 노래가 시작된다.
“근데 왜 너는 사람들 앞에서는 노래 안 했냐?”
상상 속의 그가 노래를 시작할 즈음, 나는 성이에게 물었다. 왜 녀석은 자신의 목소리를 숨겨야했을까. 궁금했다. 이 아름다운 것을 왜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없었던 것일까.
“나는 여기서도 이상한 놈이었거든.”
“무슨 뜻이야?”
성이가 말을 이었다.
“밴드를 하는 다른 애들하고 좀 달랐어. 내가 처음 기타를 배운 건 중학교 때였어. 리더 형 따라서 가끔 연습실에 놀러오곤 했는데, 그러다 자연스럽게 형한테 조금씩 배운 거야. 특별히 기타가 재미있다거나 기타를 미치도록 잘 치고 싶었다거나 그랬던 건 아니야. 그냥 혼자 덩그러니 있기 뭐해서 코드 알려주는 거나 좀 익히고 그랬지.
다른 애들은 거의 어떤 곡에 푹 빠졌거나, 어떤 연주에 푹 빠졌거나, 그래서 기타를 배우고, 연습하고 하잖아. 무슨 곡을 마스터해야겠다, 아니면 누구처럼 쳤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그곳에 닿기 위해 단계를 밟으며 연습하고. 근데 난 고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곡 하나를 끝까지 쳐본 적이 없었으니까.
노래도 마찬가지였어. 노래를 잘 했던 적도 없고, 노래를 잘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어. 오히려 목소리는 내 콤플렉스였으니까. 힘도 없고, 너무 여리고, 약하고. 그래서 애들한테 계집애 같다고 무시당하고. 그런데 노래하는 걸 좋아할 리가 없었지.”
손끝으로 기타 줄을 매만지며, 성이는 말했다. 그러다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말을 끊고는 기타 줄을 만지던 손으로 바지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녀석은 끝내 아무것도 찾지 못한 모양이었다. 곧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더니 이번에는 초조한 듯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담배를 찾는 것 같았다. 그러나 꼭 입술보호제 케이스에 담배 한 개비만을 숨겨 다니는 녀석에게 남은 담배가 있을 리 없었다. 애석하게도 나는 담배를 완전히 끊은 상태였다. 그래서 잠시 고민했다. 잠깐 나가서 담배 한 갑을 사올까. 그러나 나는 담배를 사러 나가지 못했다. 여전히 손가락이 떠나지 않은 상태에서 오물오물하듯 그의 입술이 다시 움직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