땜빵용 기타리스트(3)
“그러다 Delight를 들었어. 처음 듣자마자 몽롱한 게, 기분이 이상하더라. 금방 빠져들었지. 그래서 그 곡이 들어있는 CD를 사고, 매일 그 곡을 듣기 시작했어.
어느 순간 보니까 나도 모르게 그 노래를 계속 흥얼거리고 있는 거야. 근데 내 목소린데도 그 흥얼거리는 소리가 참 듣기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 어, 잘 어울리네?
처음이었어. 나도 놀랐어. 내가 내 목소리를 들으면서 좋다고 느끼다니. 욕심이 나더라. 이 노래를 정말 잘 불러보고 싶다. 연습해보고 싶다. 그래서 리더 형한테 부탁했어. 연습실에서 노래를 좀 연습할 수 없겠느냐고. 형도 많이 놀란 것 같긴 했지만, 어쨌든 별 말 없이 허락해줬어.
그렇게 밴드 연습이 없는 날이면 형만 있는 연습실에서 노래를 연습했어. 그리고 기왕 하는 김에 기타도 연습했어. 혼자 있을 때만 부르는 노래니까, 나라도 반주를 해야 될 것 같더라고. 근데 형이 갑자기 그러는 거야. 너, 기타에 소질이 좀 있는 것 같은데? 그러더니 나는 싫다는데 자꾸 기타를 가르치려 드는 거야.
내가 본격적으로 기타를 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어. 별 관심은 없었지만, 보통 애들이 연습하는 곡들을 듣고, 하나하나 연습하고……. 그러다 마침 밴드 기타 한 명이 펑크 나면서 얼떨결에 밴드에 끼게 됐어.
리더 형이 당장 사람을 구하기 힘드니까 곡이 마음에 안 들어도 좀 도와줄 수 없겠냐 그러더라고. 자기가 노래하면서 리드기타까지 할 테니까 리듬 기타만 좀 쳐 달라고. 솔직히 기타 친 지 얼마나 됐다고, 밴드에 껴서 연주를 한다는 게 어이없긴 했지만, 좋았어. 막 가슴이 뛰는 거야. 형 말대로 장르는 정말 나하고 안 맞았지만, 사람들 앞에서 기타를 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좋았어.”
“근데 왜 기타를 계속 치지 않았어? 밴드가 해체됐다고 해도 형이 다른 데 소개해주면 다시 기타를 칠 수는 있었잖아. 시작은 땜빵용이었다고 해도 나중에 잘 자리 잡으면 기타도 치고 노래도 할 수 있었던 거 아니야?”
“너는 내가 노래할 수 없었던 이유가 단순히 갑자기 기타를 배워서 땜빵용으로 밴드에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거니?”
푸석하다. 성이가 그렇게 말했을 때 지은 미소의 느낌은, 그랬다. 체념이 동반된 실망 정도의 감정을 드러내는 미소였다. 아마도 내가 뭔가 잘못 짚은 모양이었다. 조금 미안해진 나는 녀석의 물음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잠시 시선을 돌렸다.
“말했잖아. 나는 이곳에서도 이상한 놈이었다고. 본격적으로 기타를 치기 시작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유명 밴드들의 음악을 듣고, 연습하게 됐어. 그 중에서도 메탈리카나, 너바나나, 핑크플로이드나 그런 하드하고 현란한 밴드들을 주로 카피했지. 기타를 치는 애들이라면 당연히 그런 음악을 듣고, 연습해야하는 거라고 모두들 생각했어.
하지만 나는 솔직히 그런 음악들에 별로 흥미가 없었어. 기타에 재미를 붙이면서 그런 음악들도 열심히 듣고, 연습했지만, 정말 내가 관심 있었던 음악은 따로 있었어. 크린베리스나 노 다웃이나 자드 같은……. 여자 보컬의 목소리가 매력적인 밴드들이었지.
내가 그런 음악을 듣고, 연습하는 걸 보면 사람들은 되게 황당하게 봤어. 쟤는 뭐 저런 걸 해? 이상한 놈이네. 고등학교를 다니는 남자애라면 당연히 미친 듯이 하드하거나 미친 듯이 펑크한 음악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그 세계에서 나는 확실히 이상한 놈이었지. 우리 밴드도 펑크나 얼터너티브를 주로 하는 밴드였고, 당연히 내가 노래할 수 있는 자리는 없었던 거야.”
말을 마친 성이가 기타 줄을 한 번 쓸어내렸다. ‘스르릉’ 같기도 하고, ‘다라랑’ 같기도 한 짧은 소리가 메아리처럼 공기가 무거운 연습실을 떠돌았다. 하염없이 떠돌고, 벽에 부딪치고, 귀퉁이가 부서지는 스르릉, 혹은 다르릉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힘없이 기타 줄을 쓸어내리는 녀석의 모습에서, 축구를 그만 두던 날의 내 모습이 느껴졌다. 그래서 조금은 오래 전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지금의 녀석에게도 위로 같은 게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 다시 밴드할 생각은 없는 거야?”
그러나 나는 그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위로를 생각해보긴 했지만, 어느 순간 그것은 내 몫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로라는 건, 어쩌면 전혀 다른 입장에 놓인 사람들 사이에서만 통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칫 위로는 결국 누가 더 불행한가를 비교하는 행위에 그칠 수도 있다. 그들 사이에 정말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라 공감, 그리고 상대방이라도 그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같이 고민하는 일인 것이다.
“글쎄……. 하고는 싶지만, 이미 이 세계에 내가 낄 자리가 없는 걸 알고 있는데 무리하게 욕심내서 더 비참해지고 싶지가 않아. 겁쟁이라고 욕할지 모르지만, 어쩔 수 없지. 난 원래 겁쟁이였으니까.”
녀석이 다시 힘없이 웃었다. 너무도 익숙한 미소였다. 안쓰럽긴 하지만, 정말 짜증나는 그 미소. 녀석의 푸석한 미소를 아예 부숴버리고 싶었다. 이제 좀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니.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야! 그런 소리가 스르릉, 혹은 다르릉, 가슴 속을 맴돌다가 마른 한숨이 되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다른 노래 하나 더 해봐. 크린베리스든, 노 다웃이든, 자드든. 뭔지는 모르지만, 한 번 들어보자. 내가 들어줄게.”
내가 들어줄게.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혹시 그 말이 녀석에게 건방지게 들리진 않을까 걱정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렇진 않은 모양이었다. 녀석이 살짝 특유의 수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푸석거리는 듯 보이던 미소가 조금 촉촉해졌다. 본의 아니게 오해할 수도 있는 말을, 본의로 알아들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거부감 없이 받아준 녀석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Don't speak야. 노 다웃.”
녀석이 다시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래했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멜로디가 익숙하지만 전혀 새롭게 들리는 녀석의 목소리를 타고 천천히 무거운 공기를 헤쳐 나아갔다. 그 소리에 맥 빠진 형광등 빛은 더욱 무기력하게 숨을 죽였으나, 대신 연습실 곳곳에 쓰러지거나 주저앉은 초라한 사내들이 초저녁에 띄엄띄엄 떠오른 별들처럼 서서히 빛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