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샤 Jul 20. 2021

처서(處暑), 더위의 끝에 잠들지 못하는

절기의 일기, 처서(處暑)

  더위가 그친다는 뜻의 처서(處暑)는 24절기 중 열네 번째 절기이다. 아빠는 처서가 지날 때마다 '모기가 입이 돌아가는 처서네'라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모기는 귓가에서 쉬지 않고 윙윙거렸다. 밤과 아침이 조금은 선선하다 싶지만, 한낮의 더위는 가을 따위 오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진짜 가을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아 두려워지려는 때, 느닷없이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왔다. 귀뚜라미가 이끌고 온 가을의 입구에서, 나의 이별은 울부짖음을 멈추지 못했다. 20대 중반 청춘의 핑계 뒤에 숨어, 조금은 특별해서 더 처절하고 지질한 이별이었다.


 

처서






  중국어였다. 몽골인 룸메이트가 '이거 영어 아닌 거 같아요'라며 보여준 문자는, 중국어의 로마자 발음 표기였다. '나 내일 못 나가'라는 잘못 보내진 문자에 나는, '잘못 보내셨어요'라고 중국어 로마자 발음 표기로 답을 보냈다. 그는 '죄송합니다, 중국인인가요'라고 보냈고, 나는 '아니요, 중국어 할 수 있는 한국사람이에요'라고 답했다. 몽골인 룸메이트 폰으로 하기 미안해져서 나의 폰으로 답을 보내기 시작했고, 우연히 문자를 잘못 보낸 그와 나는 그날 세 시간을 넘게 문자를 주고받았다.

  새벽 두 시에 서로 사진을 보냈다. 그의 첫마디는 '귀엽네요'였고, 그의 사진에 대한 나의 대답은 '영화배우 같으세요'였다. 우리는 '잘 자요'라며 문자를 마쳤다. 잘 잘 수 없었다. 내가 본 중국인 중에 가장 미남이었다. 북방계 미남형, 그러니까 긴 얼굴에 눈썹이 짙고 쌍꺼풀도 짙고 높은 코에 입술은 보기 좋게 도톰했다. 머리숱도 풍성했다. 얼굴이 긴, 리즈 시절의 주윤발을 떠올리게 했다.

  다음 날 아침부터 '잘 잤나요'라며 문자를 주고받았다. 몽골인 룸메이트에게도 사진을 보여 주자, '멋지네요'라고 답했다. 그랬다, 누가 봐도 멋진 외모의 소유자였다. 3일째 문자 하던 날, 그는 '만나도 될까요'라고 보내왔다. 드디어 때가 온 건가. 천안에 사는 그는 나를 보러 서울로 오겠다고 했다.

  12월 중순, 우리의 첫 만남 장소는 신도림역 근처 순댓국집이었다. 리바오(立寶)는 '한국 사람들은 저를 입보라고 불러요'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나보다 두 살이 많았다.

  그는 시쳇말로 '외노자'였다. 한국에서 용접공으로 일하고 급여를 하얼빈 중국 집으로 보내고 있었다. 공장에서 주는 사택에서 살며 밥도 회사에서 주는 밥을 먹으며 지냈다. 그는 '한국 좋아요'라고 했으나,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사육당하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출입이 통제되었고 식사는 식판으로 방마다 전해졌다. '이 시대에도 이런 삶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듣는 중에도, 너무 잘 생긴 얼굴 때문에 집중하기 쉽지 않았다. 앞모습은 주윤발, 옆모습은 금성무였다. 시골에서 썩기 아까운 얼굴이었다. 자주 서울로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주간 열심히 문자하고 통화한 후, 두 번째 만남에서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나의 마음의 위치는 '사랑한다'는 아니었고, '호기심' 정도였다. 무엇보다, 잘 생겼다. 옆에 데리고 다니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아니 자랑스러울 정도의 얼굴이었다. 내 평생 이렇게 잘 생긴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싶었다. 게다가 중국어 원어민이다. 나는 잘생긴 중국어 선생님과 남자 친구를 동시에 얻게 되었다.


  설 연휴 동안 그는 휴가를 받아 중국을 다녀왔다. 공항에 갈 때 그의 공장 외국인 관리자도 함께 갔다. 그가 나에게 무슨 관계냐고 물어서 '그냥 아는 사람이에요'라고 대답했다. 관리인은 갸웃거렸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2주 만에 한국에 돌아온 입보는 옥을 잔뜩 사 왔다. 옥개구리, 옥 목걸이, 옥반지. 중국 사람들은 결혼하고 싶은 사람에게 옥을 선물한다고 했다. 대답을 회피하느라 진땀을 뺐다.

  남자 친구보다는 '잘생긴 중국어 원어민'으로, 그렇게 우리는 여름까지 만났다. 불에 그을려서인지 갈색이 된 입보는 볼 때마다 더 잘생겨지는 것 같았다. '너 왜 이렇게 잘 생겼어'라고 물을 때마다, '아니야'라며 쑥스럽게 웃곤 했는데 그럴 때가 제일 잘생겨 보였다.

  여름이 시작되던 어느 날, 나는 8월에 대만 교환학생을 갈 거라고 말했다. 통보였다. 일 년 동안 갈 거니까, 기다리든지 말든지 그건 네 맘대로 해.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다릴게'라고 말했다. 그 후 한 번을 더 만났다. '나 이제 바빠질 것 같아'라고 말하는 그에게 '알았어'라고 대답했다. 기차역 플랫폼으로 들어가는 그가 한참을 쳐다보기에 나 역시 한참을 손을 흔들었다. 얼른 들어 가. 그땐 그게 마지막 만남이 될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wo you le xin de nv peng you, wo men fen shou ba."

  "나 새로운 여자 친구가 생겼어, 우리 헤어져."

  연락이 뜸해지던 8월 중순의 어느 금요일 아침, 후텁지근한 공기 사이로 뜨겁게 달궈진 문자가 왔다.

  무슨 노래 가사처럼 유치하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잘못 보낸 건가. 전화를 걸었다. 그는 받지 않았다.

  나는 그날 총 68통의 전화를 걸었다. 그는 단 한 번도 받지 않았다. 문자에도 답이 없었다. 점심이 지나고 나서야 현실감각이 생긴 나는, 갑작스러운 이별 앞에 처음으로 '남자 친구'라는 말을 입에 담았다. 하필 엄마 앞이었다. 

  "엄마아아아아, 엄마아아아아아."

  딸의 이상한 목소리에 엄마가 급히 방으로 왔다.
  "니 왜 그르노."

  "엄마, 나 남자 친구가 헤어지쟤."

  엄마 품에 안겨 엉엉 목놓아 울었다. 엄마는 나를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남자 친구의 존재조차도 잘 몰랐던 엄마는, 어느새 나의 어깨를 뜨거운 눈물로 적시고 있었다.



  토요일은 한자 시험이 있었다. 모조리 찍었다. 시험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사과를 해야 했다. 그동안 남자 친구는커녕 인격적인 대우도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진심을 담아 미안하다고 말해야 했다. 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했다.

  그때 그는 파견 차 경남 진주에 있었다. 진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거리는 문제가 될 수 없었다. 네 시간 내내 버스에서 울었다. 네 시간 동안 눈물이 끊임없이 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휘성의 '다쳐도 좋아'라는 노래를 계속 들었다. '알아 아플 거란 걸 다칠 거란 걸 눈물만 날 기다릴 거란 걸 난 어차피 부딪힘 밖엔 다른 길이 없는 걸.... 상처도 고마워 네가 준 거라면'이라는 가사가 심장을 때렸다. 아파서 계속 울었다. 미안하고 보고 싶었다. 깊은 쌍꺼풀에 긴 속눈썹, 곧았던 콧날, 입술, 웃을 때 살짝 보이는 보조개, 나긋한 목소리까지 모든 것이 그리웠다. 갑자기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 것만 같았다.

  진주 터미널에서 날 반긴 건 뜨거운 햇빛이었다. '나 지금 진주 버스터미널이야, 만나줄 때까지 서울 가지 않을 거야'라고 문자를 했다. 전화는 역시나 받지 않았다. 터미널에서 또 울었다. 몇 시간을 그렇게 앉아서, 서서 울었다. 어디야, 어디 가면 널 볼 수 있니, 잠깐만 만나 줘, 널 보려고 진주까지 왔어, 미안해, 보고 싶어, 한 번만 만나줘. 찌질한 문자를 계속 보냈다. 폰은 조용하고, 진주의 햇빛은 오후 내내 뜨거웠다.

  터미널에서 걸어 나왔다. 다행히 바로 앞에 대형 사우나가 있었다. 오늘은 저기서 자면 되겠다. 이별 중에도 배가 고파 우유와 빵을 사 먹었다. 그 와중에 배가 고픈 내가 미웠다. 눈이 팅팅 부어서 그를 만나게 되면 못생긴 얼굴로 보게 될 것 같아 속이 상했다. 마지막은 예쁘게 보이고 싶은데.

  밤이 되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별에 어울리는 배경이었다.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입보였다.

  "진샤. 여기까지 오게 해서 미안해. 내가 오늘 바빴어. 지금도 일하는 중에 잠깐 전화한 거야. 내일도 바쁠 것 같아. 여기까지 왔는데 못 보고 보내서 정말 미안해. 새로운 여자 친구는 거짓말이야. 이번 주말에 서울 갈게. 그때 만나자. 오늘 어디서 자니. 잘 자고 내일 일어나면 연락해. 밤새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럽고 상냥했다. 나는 응, 응, 대답하면서 중간중간 '미안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봐, 잘 자,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를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잘생긴 얼굴을 보고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게 더 주어지다니, 다행이었다.

  26년 인생 살면서 가장 많이 운 날이었다. 사우나에서 바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그에게 문자가 왔다.

  '지금 일 나가야 해. 서울 올라갈 때 문자해. 조심히 가고.'

  서울에서 꼭 보자는 답을 하고 사우나를 나왔다. 어제와 같은 진주의 날씨였는데, 뜨거운 여름이 아닌 화창한 봄날 같았다. 하늘도 파랗고 모든 것이 좋았다. 두 시간 후 출발하는 서울행 버스표를 샀다. 아무래도 소풍을 즐겨야 할 것만 같았다.

  택시를 잡고 순진하게 물었다.

  "아저씨, 진주에서 볼 만한 곳이 어디인가요, 거기로 가주세요."

  어딜 가도 아름답게 느낄 수 있는 기분이었다.

  "진주하면 촉석루지요."

  진주하면 촉석루인 것 또한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촉석루에 서서 바라본 남강은 지금까지도 내 안에 선명한 사진 한 장으로 남아 있다. 그날의 남강은 햇살이 자신의 몸을 부수어 흩뿌린 파편으로 빛나고 있었다. 분쇄된 햇빛은 남강의 강물 위에서 찬란하게 반짝였다. 눈이 부셔 정면으로 볼 수 없을 정도였지만, 실은 내 마음의 환희가 더 밝고 영롱했다. 나는 시력을 잃은 장님처럼 촉석루에 서서 남강의 눈부신 표정을 살폈다. 아름다운 표정의 남강은 내 마음을 눈치채고는 '희망'의 향기를 실은 바람을 선물해주었다. 

  그랬다. 그날 남강에 넘실거린 것은, 반짝거리는 희망이었다. 재회의 희망,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 아직 남은 사랑의 확인, 여전한 관계가 안겨 주는 안온, 그 모든 것에 대한 환희.

  촉석루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나는, 우주가 나를 위해 끌어온 '긍정의 어휘'를 하나하나 받아들였다. 남강에 범람하는 행복과 감사에 마음을 담그고 있다가 하마터면 출발 시간을 잊을 뻔했다.    

  터미널에 도착하고 보니 '터미널 국숫집'이 있었다. 마음이 잔칫날이니 잔치국수를 시키는 게 당연했다. 이제와 고백하건대, 그 국숫집은 지금까지도 내 인생 최고의 잔치 국숫집으로 남아 있다. 맛의 비결의 5할은 국물이었다. 간장이나 김치, 단무지 없이 그저 국물만으로도 맛이 기가 막혔다. 남도 음식 맛이 좋다더니, 국수도 차원이 다르구나. 비결의 나머지 5할은 역시나 '희망'이었다. 국수를 먹는 내내 히죽거렸다. 주말이면 다시 만날 수 있어, 이곳에 온 것이 내 인생 최고의 결정이었어. 그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게 되었고, 이런 맛집도 알게 되었고.

  버스에서는 어제와 똑같이 네 시간이었는데, 훨씬 짧게 느껴졌다. 8월 말의 더위는 유리창을 경계로 바깥에서만 기세 등등했다. 버스 안과 내 안의 모든 것이 시원하기만 했다. 오랜만에 '90년대 댄스 가요'를 틀었다. '다른 여자 생긴 거라면, 혼자 있고 싶어서라면' 같은 가사는 쿨하게 패스했다. 나랑 상관없는 일이니까.

  

  서울에 도착해서부터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그에게서 연락은 없었다. 그는 모든 말은, 안전하게 나를 서울로 보내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희망은 네 시간 만에 절망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타이베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그가 준 옥개구리와 목걸이와 반지를 담을 상자를 샀다. 그리고 7장에 달하는 손편지도 함께 넣었다. 7장 내내 왜 미안한지에 대해 썼다. dui bu qi, '미안해'가 편지 이곳저곳에서 남강처럼 넘실댔다. 마지막엔 '我爱你'도 썼다. 다 부질없었지만 한 번은 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랬다, 애인 사이였지만 '사랑해' 같은 말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친한 친구에게 입보 전화번호와 상자를 건네주었다. 내가 대만에 가고 나서 그에게 연락이 닿으면 꼭 좀 전해 줘.


  8월 말이어도 인천공항 활주로는 여전히 뜨거웠다. 처서라는 말이 무색한 온도와 공기였다.






  타이베이에 도착한 날부터 불면에 시달렸다.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것은 많았다. 뜨겁고 습한 공기, 타국의 밤이 주는 낯선 기운, 그래서 적응 안 되는 몸과 마음, 무엇보다 이별의 아픔. 타이베이에서도 나는 거의 매일 그에게 메일을 썼다. 이곳은 더워, 그래도 지낼 만 해, 음식이 맛있어, 잘 지내니, 몸조심하면서 일해, 잊지 못해 미안해, 빨리 잊을게, 편지도 줄이도록 노력할게.

  갈수록 나의 불면은 더욱 심해졌다. 밤을 꼬박 새워도 낮에도 잠들지 못했다. 잠들지 못하는 병에 걸렸다. 20일을 꼬박 못 잔 날, 빨간 눈 때문에 교수님이 병원에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내 생에 첫 링거를 맞았다. 수면제를 탄 수액 덕분에 타이베이에 도착하고 처음으로 잠 다운 잠을 잤다.


  찬바람이 시작되던 11월, 친구에게 메일이 왔다. 입보랑 연락이 닿아서 상자 잘 전해 줬어, 아무 말 않고 받더라고. 그런데 걔.. 좀 그래. 물건 받고 다음 날부터 계속 문자해. 오늘은 남자 친구 있냐고 묻던데.

  개새끼.

  타이베이에 도착한 지 3개월 만에 나는 그에게서 마음을 털 수 있었다. 친구의 메일 덕분이었다. 그러나 불면은 털지 못했다. 미움과 회과 미련과 분노와 용서가 휘몰아치는 바람에 잠이 들 수 없었다. 내 모든 감정들이 만드는 소용돌이에 몸을 싣고 휩쓸려 날아갔다.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한 채 매일 아침을 맞았다. 그 시절 내 밤의 주인이 잠이 아닌 불면이었던 이유는, 대만의 열대야로 가장한 '이별'의 감정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은 그을음으로 남아 아직까지 내 밤의 밑바닥을 차지하고 있다. 





      


  외노자. 얼마나 비웃으며 흘리고 다닌 단어였던가. 잘생기긴 했는데 외노자야. 그래 봤자 외노자야, 대충 만나다 헤어지면 돼. 친구들 앞에서 더 크게 떠벌렸다. 어차피 외노자, 별거 없는 외노자, 얼굴 말고 볼 거 없는 외노자. 나는 그에게 '외노자'라는 투명한 누더기를 씌웠다. '남자 친구'라고 불렀으나, 손 잡는 것 이상은 싫었다. 중국 놈, 냄새나는 짱깨, 기껏해야 외국인 노동자. 외노자 주제 잘생겼으니 만나 준다. 잘생긴 중국어 원어민이니까 만나 준다.

  뻔뻔스러운 이기심의 끝에 나는 이별을 당했다. 그는 몇 번이나 '나는 중국어 선생님이 아니야'라고 했지만, 나는 비웃음을 숨기며 흘려들었다. 그렇지, 중국어 선생님 아니고 그냥 외노자인 거지. 단 한 번이라도 그를 인격적으로 대했다면, 데이트마다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점심 통조림이었구나, 통조림이 중국어로 뭐야, 타이어가 펑크 났다고? 타이어가 중국어로 뭐지? '잘 자'를 중국어로 다르게 말하는 건 없을까? 너네 동네 특산품 중국어로 설명해줘 봐, 듣기 연습하게.

  그럼에도 그는 최선을 다해 내 곁에 있었다. 자신 안에 사랑이 메마른 것을 확인한 날, 우리의 첫 만남처럼 문자를 보낸 것이다. 잘못 보낸 문자처럼, 당황스럽게, 어색하게. 

  내가 그에게 가진 이기심에 대한 죄로, 그는 나에게 불면을 남겼다. 사랑의 마음을 이기적으로 이용한 내 젊은 날에 대해 지금까지 용서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잠 못 드는 많은 시간 동안 그에게 용서를 구했으나, 돌아온 것은 깊이가 더해진 불면뿐이었다.  

    

  어쩌면 이 글은 내 이기심의 최후의 수단이기도 하다.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이 글로서 다시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해보려는 것이다. 끝까지 파렴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이 마음이 가닿길 바라는 것이다. 잃어버린 나의 잠을 되찾아 오고 싶어서이다. 사실상 내 인생 마지막 단잠이었던, 진주 터미널 근처 사우나에서의 잠이 매일 내 밤을 구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여름날 전하지 못한 사과를 글로 남긴다.

  부디 이 글이 힘을 갖기를 바라본다. 중국 북방 어느 지역에 가닿아 그로부터 진정한 용서를 싣고 올 수 있기를, 그리하여 남은 생의 내 밤에 넘실대는 잠이 허락되기를. 그리하여, 반짝이는 남강에 유유히 흐르던 희망을 바라보았던 그 상쾌한 기분으로 매일 아침을 맞이할 수 있기를.     





0으로 끝나는 날마다 절기의 일기를 써보려 합니다.

입춘과 입하를 지나 입추와 입동에 이르는 찰나의 순간들, 그 틈새에 끼워져 있던 이야기를 펼쳐 보려 합니다. 퀴퀴한 냄새를 털어내고 빛바랜 장면을 손으로 쓸어내다 보면, 무기력을 벗어난 진짜 나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만 같습니다.

이전 15화 입추(立秋), 안개 뒤로 숨은 대륙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