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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Jul 10. 2021

입추(立秋), 안개 뒤로 숨은 대륙

절기의 일기, 입추(立秋)

   24절기의 열세 번째 절기, 입추(立秋). 가을의 시작이라고는 하나, 찌는 더위와 푸르른 산천 그 어디에서도 가을은 찾아볼 수 없다.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맞는 가을이라니.

   절기는 늘 그러했다. 계절보다 앞서서 달력에 자신을 표기했다. 우리는 절기와 기상의 간격에 당황하며 그러나 조금씩 바뀌어가는 잎의 색에 익숙해지며 지내야 했다. 그러고는 깨닫게 되는 것이다. 입춘이 그러했듯, 우리는 입추를 거치지 않고 가을을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을. 마치 중국을 거치지 않고 지금까지의 내 생을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입추





 


   분명히 알람을 해놓고 잤는데, 5분에 한 번씩 알람 같은 건 무용했다. 이륙까지 한 시간 삼십 분 남았다. 세수도 않고 옷만 입고 가방만 들고나가 택시를 탔다. 아저씨, 무조건 무조건 빨리요. 다행히 강서에서 인천공항까지 새벽길은 막히지 않았다. 택시에서 사장님께 이런저런 욕을 다 들었다. '아, 이런 욕도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수속은 다행히 빨리 진행되었다. 시간이 남아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화장을 했다. 배에 인덕 가득 담은 사장님은 그새 화가 풀렸다. 아메리카노를 먹지 않는 나에게 '잠 깨라고 투샷 했어'라며 진한 아메리카노를 건네주었다.

   의뢰받은 제품을 제작할만한 업체를 찾는 게 쉽지 않았는데, 일주일 내내 찾던 그 업체가 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어어, 이것 보세요, 사장님. 전화해 보고 내일 비행기 표 끊어. 갑자기 가게 된 출장길이었다.


   광저우(廣州)는 몇 번 가 봤지만, 선전(深圳)은 처음이었다. 광저우고 선전이고 거기서 거기지, 공장 많고 차 많고 사람 많고 공기 안 좋고 덥고 습하고 밤이면 불야성이고. 제일 싫은 건 사장님이랑 가는 거였다. 다행히 1박이었다. 이 업체만 잡으면, 물건이 만들어져 수입만 제대로 되면 작년 회사 매출만큼의 수익이 창출되는 것이었다.

   약속은 한 시였는데, 사장님은 새벽 비행기를 탔다. 사모님이 사 오라고 한 리스트가 A4용지 가득이었기 때문이다. 살면서 처음으로 '속물'이라는 단어가 뇌리에 훅 박혔다. 노트 한 가득 리스트는 모두 '명품 가방'이었다. 사장님이 세계의 공장 선전으로 간다는 말에 그동안 적어온 욕망의 글자들을 내민 것이다. 쳇, 사모면 다냐. 사모 짝퉁 가방 사는 데 내가 있어야 한다 이 말이지. 있는 대로 최대한 사 오래, 라는 사장님 말에 '명품 중국어는 모르는데요' 하려다가 꾹 참았다. 공항에 늦게 온 주제 말이 많으면 안 된다.

   호텔에 짐을 맡기고 대충 먹고 쉬는 동안 열심히 명품 이름을 중국어로 검색했다. 출장비도 안 주면서 이런 것도 시키다니, 배불뚝이 사장 놈. 나의 생각과 다르게 나의 머리는 쉬는 시간 동안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열심히 중국어 공부를 했다. 구찌-guchi, 루이뷔통-luyiweideng, 샤넬-xiangnaier, 알마니-amani...

   사장님이 내민 주소로 택시를 타고 향했다. 택시는 도심을 빠져나가더니 한낮에 봐도 어둡고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어, 어, 어, 이러다가 4차원의 세계로 가겠는데? 아저씨 여기 맞아요? 아가씨, 요즘 여기 공안 감독이 심해서 문을 닫아서 그래요, 그래도 살 수는 있으니 걱정 마세요. 아저씨는 매일 하는 말인 것처럼, 녹음하여 재생된 멘트처럼 말해 주었다.

   택시가 멈추더니, 아저씨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저 골목 세 번째 문으로 들어가세요. 지금까지 들어온 골목이 몇 개인데 또 골목으로 들어가라니. 냄새가 재수 없네, 라는 사장의 목소리를 앞에 세우고 세 번째 문 앞에 섰다. 사장만큼 배가 나온 아저씨가 빼꼼히 문을 열더니, 한국에서 가방 사러 왔다는 말에 여권을 보여 달라고 했다. 여권을 확인한 그는 우리에게 한국말을 해 보라고 했다. 사장님 더운 데 그냥 가면 안 돼요, 여기 좀 이상해요. 야, 나 이거 안 사가면 집 못 들어가. 우리의 표정과 말투를 훑고 나서 날카로운 눈매를 거둔 중국 배불뚝이는,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사장님 무서워요. 야, 중국에 이런 데 많아, 라는 사장님의 목소리도 떨리는 것 같았다. 어두운 창고를 꽤 걷고 악마의 허물처럼 보이는 거죽 더미를 얼마간 걸어냈다. 사다리 두 개쯤을 타고 올라가니, 오 마이 갓, 신이시여, 알라 알라! 해리포터 출신 학교나 야수가 벨에게 선물한 궁정 도서관 따위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진열대가 나타났다. 세상의 모든 짝퉁 명품들이 이곳에 다 모여있는 것 같았다. 아, 맞지, 세상의 거의 모든 짝퉁 명품 가방이 이곳에서 태어나 전 세계로 뻗어가고 있긴 하지. 

  실로 엄청난 광경이었다. 진열대가 대략 30층 가까이 되었다. 이 끝에서 저 끝까지 500미터는 충분해 보였다. 도서관처럼 진열대가 겹겹이 있었다. 사다리도 10개는 충분히 넘어 보였다. 어마어마한 대륙 스케일, 역시 쭝궈. 코를 찌르는 가죽 냄새는 덤이었다. 요즘 공안들이 난리라 어쩔 수 없네요, 라는 아저씨가 갑자기 엄청 부자로 느껴졌다.

   나는 순서대로 하나씩 품목 넘버와 컬러를 말했다. 어디선가 나타난 아줌마 두 명이 열심히 찾았다. 창고가 너무나도 커서 세 명이 찾기엔 무리처럼 보였으나, 그들은 전문가다운 걸음과 손놀림으로 잘 찾아내었다. 전리품을 획득한 사장이 하는 일이라곤 내 옆에서 뿌듯한 표정을 짓는 것뿐이었다.

   "너도 하나 할래?"

   그 때나 지금이나 패션 센스라고는 없는 내게, 가방은 그저 책 넣고 지갑 넣는 물건이어서 더 이상의 가방은 필요 없었다. 명품을 전혀 몰랐다는 게, 그러면서 자존심에 짝퉁만큼은 싫었다고 하는 게 핑계로 더 어울리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아니요, 됐어요."

   "여기 엄청 싼데 하나 하지 그래."

   인조 가죽 냄새가 너무 심해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해서, 빨리 나가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머리를 흔들고는 아줌마들이 가져오는 가방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에 집중했다.

   시간이 부족해 14개의 가방에 만족해야 했다. 골목을 걸어 나오니 아까 그 택시 아저씨가 더 누레진 듯한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해외영업 팀장급인 여자의 영어 이름은 앨리스였다. 그녀가 이끄는 곳으로 간 점심식사는 역시나 중국다웠다. 대부분 내가 싫어하는 향신료 가득 들어간 볶음 요리였고, 정말 싫어하는 머리부터 꼬리까지 요리된 생선찜 요리가 있었다. 아, 제발, 생선 눈은 저쪽으로. 피할 수 없는 중국 술까지 두 잔 마시자, 앨리스가 입을 열었다.

   "오늘 아침만 해도 한국에서 두 군데나 전화 왔는데, 사장님 뵈려고 미팅을 잡지 않았네요. 맘껏 드시고 공장 가보시죠."

   우리 사장의 뭐가 맘에 든 거지, 저런 배는 중국에도 많을 텐데. 사장과 앨리스는 잘 통했다. 공장 견학을 하고 제품을 보더니 나에게 '우리가 찾는 딱 그 제품이다'라고 중국어로 말하라고 했다. 일사천리였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보니 5시가 넘었다.

   1시에 그렇게 많이 먹인 앨리스는 또 술을 먹으러 가잔다. 그렇지, 이게 중국 스타일이지. 기분 탓인지 저녁은 점심보다 좀 더 맛있고 좀 더 여유로웠다. 도수가 좀 더 높아진 건지 기분이 풀린 건지 술이 올라 얼굴과 눈이 벌게질 즈음 만찬도 끝이 났다.

   사장은 마사지가 하고 싶다고 했다. 하아, 사장 너 끝까지. 나와 연락을 주고받던 피터에게 물으니 걱정 마라며 이내 남방 중국인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보였다. 잠시 후 우리가 묵는 호텔 근처로 안내했다. 사장을 마사지 샾으로 들여보내고 나니, 내게 한 시간 반의 개인 시간이 주어졌다. 무얼 할까 고민하다가 술을 깨고 싶었다. 피터에게 물었다.

   "여기 근처 강가나 물, 호수가 있니?"

   "걸어서 10분 정도 가면 작은 천이 있는데, 같이 갈래?"

   작은 수다가 시작되었다. 중국은 몇 번 와봤니, 어디 가 봤니, 선전은 처음이니, 나는 선전에서 나고 자랐어, 좋은 곳이지, 발달된 도시야, 나는 선전이 좋아. 갑자기 문자가 왔다.

   '야! 여기 퇴폐잖아! 나가게 해 줘!"

   피식. 좋은 시간 보내세요~,라고 답하고는 계속 걸었다. 조금 더 걸으니 작은 천이라기엔 넓고 강이라기엔 작은, 그래서 더 좋았던 물가에 닿게 되었다. 강가의 바람이 불었다. 아, 중국 바람이네, 중국 바람맞네. 덥고 습기 가득한, 중국 냄새 품은 강가의 바람이 불어왔다. 그렇게 나와 피터는 말없이 물가에 앉았다.




   너는 중국어를 공부하면 될 거야,라고 아빠가 말했다. 나와 중국의 인연은 그렇게 아빠의 입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시작되었으나, 나의 삶에서 중국은 결코 아무렇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상해특파원의 꿈을 안아서인지, 내 첫 중국은 상하이(上海)였다. 20살의 끝자락, 교환연수로 밟은 푸단대학의 교정은 자전거로 가득했다. 자전거만큼 붉은 대자보도 많았다. 모든 것이 중국다웠다. 그래서 좋았다. 버스의 앞사람 머리에 기름이 가득해도, 어깨에 쌓인 하얀 가루를 보아도 '이게 중국이지'라며 기꺼이 참았다. 훈툰(馄饨)과 교자를 먹으며 '난 전생에 중국인이 분명했어'라며 혼자 끄덕이기도 했다.

   나의 막연했던 전생 중국인설에 쐐기를 박아준 것은 군고구마 아저씨였다. 군고구마 매대 앞에 선 세 명의 학생들이 자못 궁금했나 보다. 아저씨는 친구에게 '너 일본에서 왔니'라고 물어서 친구가 '한국 서울에서 왔다'라고 대답했다. 또 다른 친구에게 '너도 한국에서 왔니'라고 물어서 그 친구가 '한국 광주에서 왔다, 광주 아느냐'라고 대답했다. 나는 '나도 저 친구와 같이 서울 사람이다'라고 대답하려 속으로 문장을 만들고 있었다. 아저씨는 나에게 '너는 저장성(浙江省)에서 왔니'라고 물어서 '不, 不, 不'만 크게 외쳤다. 나도 서울이라고 대답하고 싶었는데, 아저씨는 중얼거릴 뿐이었다. 절강 아니면 안휘성인데... 친구들 앞에서 화난 척하고 웃어넘겼지만, 내심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중국에서 일할 몸인데, 중국인처럼 보이는 건 좋은 걸지도 몰라.

 

   항저우(杭州)와 쑤저우(苏州) 여행은 지금까지 내 생에 다시 얻지 못할 선물을 안겨 주었다. 항저우의 시후(西湖)에 간 날은 비가 왔다. 젊은 패기에 비를 맞으며 배를 탔다. 비옷 입은 가이드가 '미녀 서시(西施)와 비교될 정도로 아름다운 호수라는 이름'을 설명한 것까지 듣고 이후부터는 그저 웅성거림이 되었다.

   안개와 비를 받아들이는 시후와 나뿐이었다. 어느새 주위는 고요해졌다. 중국이 자랑하는 시인 이백(李白)이 달을 건지려 손을 넣었다면 이 호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백의 심성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호수는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해 침묵을 선택했고 비는 호수를 덮었으며 태산처럼 무겁고 자욱한 안개만이 존재했다. 그 와중에 어렴풋이 정자가 보였다. 안개는 짙었으나, 누각은 팔을 올려 안개를 걷어내는 듯했다. 어느덧 호수와 안개는 회색빛의 하나가 되었다. 수면이나 수평선 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는 공간이었다. 그곳에 오로지 나만 떠 있었다. 중력마저 사라졌다. 그러한 때 그러한 곳에서 시(詩)가 잉태되는 현상을 나는 영혼의 깊은 곳에서 바라보았다.

   정자에 도착하니 다시 웅성웅성 들려왔다. '날이 좋을 때 오면 더 아름다운 곳이다'라는 가이드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 날이 좋을 때 왔으면 오늘과 같은, 장소가 문학을 낳는 경험은 절대 하지 못했으리라.

   

   항저우, 쑤저우를 거쳐 칭다오(靑島)의 우쓰(五四) 광장에 한참을 서 있던 날과 뜨거운 여름 베이징의 이화원과 천안문 광장의 풍경이 내 안을 스쳐갔다. 청대(靑代) 유물같이 남겨진 북경의 전통 골목 후통(胡同)에서의 느린 걸음이 선전의 바람결과 속도를 같이 했다. 판다의 귀여움보다 대나무의 울창함이 내게 더 강하게 다가온 청두(成都)와 침사추이에서 페리만 네 번 탔던 홍콩의 밤에 잠시 머물었다가, 이내 창사(長沙)에 불어닥친 마오의 붉은 혁명이 붉은 향신료가 되어 코끝을 찌르는 듯했다.


   내 몸이 머물렀던 중국이 내 안에서 휘몰아치고 있을 때, 피터가 갑자기 말했다.

   "나 다음 달에 결혼해. 그런데 무서워."

   "그렇구나, 축하해. 그런데 결혼은 좋은 거 아냐? 뭐가 무서워?"

   "월급이 너무 작아. 여자 친구는 너무 좋지만 이곳에서 잘 살 자신이 없어. 하지만 난 선전이 좋아. 열심히 살아볼 거야."

   그는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을 굳이 나를 빌려하고 있었다. 선전, 중국 최고 아니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도시. 개혁개방으로 중국 경제 개혁의 선구자가 된 거대하고 아름다운 도시. 그곳의 젊은이 역시 서울의 젊은이들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마사지가 끝났다는 사장의 문자가 왔다. 피터와 나는 호텔 근처로 돌아왔다. 내일 한국으로 가면 한동안 마시지 못할 중국 공기를 최대한 들이마시며 걸었다. 입추 즈음 선전의 밤공기는 한국의 그것보다 훨씬 뜨겁고 습했다.






   사장이 돌아오는 공항에서 준 장지갑은 결혼하면서 버렸다. 모조품은 값을 톡톡히 했다. 몇 번 쓰지 않았는데 모서리가 까지기 시작했다. 회사 서랍에 넣어만 두다가 퇴사할 때 가져와 더 쓸 일이 없었다.


   선전 이후 결혼을 했고 공자학당 초청 중국어 교사 연수 제외하곤 중국을 가지 못하고 있다. 무한도전에서 박명수가 '하얼빈역이 어디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하얼빈 삥덩지에(冰灯节)에 가보고 싶었고, 지린(吉林)의 산림과 쿤밍(昆明)의 석림을 보고 싶었으나 지금까지는 소망에 그치고 있다. 네이멍구(內蒙古)의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독수리를 보고 싶고, 우루무치(乌鲁木齐)에서 실크로드의 역사를 새긴 모래를 만져보고 싶었으나 언제 이루어질지는 모르겠다.


   지금 와서 보니, 내가 밟은 모든 중국이 꿈결만 같다. 중국에서의 시간과 얼굴과 음식과 문화와 역사와 노래가 시후에서의 안개처럼 뿌옇다. 안개를 걷어내면 꿈이 깨질까 봐 못 걷어내고 있다. 안개는 차마 걷어내지 못한 채 뿌연 중국의 이곳저곳을 더듬는다. 어떤 때는 치솟은 누각이, 어떤 때는 후통의 회색 벽이 만져진다. 얼후(二胡)를 배경으로 째지는 듯한 노래 소리나 아득히 향신료 냄새도 함께 한다.

   나는 알고 있다, 내 몸과 정신의 어느 구석이라도 '중국'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음을. 기상이 절기를 따르듯, 가을이 입추를 따르듯, 나의 삶도 붉은 중국을 따랐음을 인정한다.

 

   중요한 것은, 중국을 공부하다가 중국을 공부하는 친구를 통해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내게 '생의 목표로서의 대상'이, 중국에서 남편으로 옮겨왔다는 것이다. 결혼 이전의 내 삶의 대륙이 중국이었다면, 결혼 이후의 내 삶의 대륙은 한 사람으로 정해졌다. 큰 체구는 아니지만, 속은 어쩌면 중국보다 더 큰 마음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곁에 두고 지내고 있다.

   가끔 육아가 몸과 마음을 덮칠 때면, 조용히 추억의 대륙을 거닐며 일상의 체력을 회복하게 된다. 마음속 대륙에 발을 디디고 있다 보면, 아이들이라는 거대한 대륙을 떠받치는 힘을 얻게 된다. 이제 그 힘으로, 미래의 대륙을 향해 나아갈 아이들을 잘 키워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 개인적인 추억의 단편을 회상하는 글일 뿐, 특정 국가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나 편견을 드러내기 위함이 목적이 아님을 밝힙니다.





0으로 끝나는 날마다 절기의 일기를 써보려 합니다.

입춘과 입하를 지나 입추와 입동에 이르는 찰나의 순간들, 그 틈새에 끼워져 있던 이야기를 펼쳐 보려 합니다. 퀴퀴한 냄새를 털어내고 빛바랜 장면을 손으로 쓸어내다 보면, 무기력을 벗어난 진짜 나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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