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샤 Jul 06. 2021

중간(中間), 이야기의 가운데

절기의 일기, 한가운데


  '사계절'은 무뚝뚝하다. 성의가 없고 불친절하다. 삶을 단순화시킨다. 기억의 조각들을 강한 흡입력을 가진 엔진이 되어 빨아들인다. 깔끔하게 사라진 기억들의 자리에서 우리는 그저 현재를 살거나 미래를 향한다. 과거를 돌아보는 일을 누추한 옷을 꺼내어 보는 따위로 여기게 만든다. 우리 앞에 놓인 계절들을 살아내기 바쁘게 만든다.


  24절기는 섬세하다. 세심하며 상냥하다. 사계절이 품지 못한 개구리 소리와 보리 종자와 봄비를 일깨워 주었다. 24절기는 오감으로 시절을 환기시킨다. 절기 안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허물어진 과거를 재구축할 수밖에 없다.

  물론 상냥하지 않은 기억들이 군데군데 꽂혀 심장의 뒤쪽을 쿡쿡 찌르곤 하지만, 대게는 '추억'으로 불리는 과거가 쌓여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24절기로 나누어진 옛 일들은 가는 빗자루 앞에 놓인다. 천천히 비질을 하다가 추억의 파편들 앞에서 멈춰 서게 된다. 쪼그려 앉아 파편을 잡고 바라보고야 만다. 어쩌다 손이 베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햇빛에 이리저리 반사되어 생각지도 못한 감정들로 빛나게 된다.

  이제 비질은 의미가 없어진다. 파편들이 나열되어 만들어진 이야기들 앞에서 문득, 추억들이 뭉쳐져 만들어진 지금의 나를 사랑하게 되고야 마는 것이다. 그렇게 절기의 한가운데까지 왔다.


중간






  '입춘(立春)'이라는 글씨 앞에서 나는, 막연하게 내 안의 이야기를 꺼내 놓고자 마음먹었다.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아, 펼쳐놓다 보면 재미있겠지, 그러다 보면 지금의 나를 잊을 수 있겠지, 지금의 나를 좀 더... 좀 더, 어찌할 수 있을까. 거기까지는 생각지 않았다. 생각할 수 없었다.

  절기로 나누어 나의 생을 돌아보는 작업은, 그저 필요할 뿐이었다. 우울과 무기력과 그을음처럼 검은 눈물과 찌꺼기 같은 감정으로 가득 찬 그때의 내게 그저 필요한 일이었다. 내 안에 소란스럽게 부유하는 이야기들을 꺼내어 말리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그리고 조금은, 행복해질 수도 있겠지. 그뿐이었다. 


  생각지 못한 결실이었다. 절기의 일기는 내 안의 퇴적층을 단단하게 해 주었다. 단언컨대 계획한 이야기는 아무것도 없었다. 절기를 하나씩 맞이할 때마다 곤혹스러웠다. 열 살의 춘분, 열네 살의 춘분, 스무 살의 춘분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이야기들을 고르고 주름을 펴고 모퉁이를 잡아당기며 가장 그럴듯한 때를 골랐다. 내 안에 구겨놓은 이야기가 이리도 많았다니.

  24절기가 건네는 상냥한 위로 앞에 많이 웃고 많이 울었다. 나는 꽤나 속필이다. 그러나 절기 일기만큼은, 쓰는 시간보다 한숨을 쉬고 웃고 우는 시간이 더 많아 빨리 마무리할 수가 없었다. 모든 이야기는 백 퍼센트 순도를 자랑하는 진짜이다. 물론 기억의 구멍이 난 곳이 있어 상상의 땜질을 한 곳도 있다. 그러나 그런 부분은 극소수이다.

  지금까지 꺼내놓은 것들은 내 과거에서 유난히 명도와 채도가 높은 이야기들이라, 인물들의 표정과 말투, 나와 그 사이의 공기의 냄새와 햇살까지 기억이 난다. 그러니까, 절기의 일기는 나에게 쓰기 쉬운 이야기이자 동시에 쓰기가 어려운 이야기들이었다. 기억의 나열은 쉬웠고 감정의 나열은 어려웠다. 어느 순간은, 타자를 칠 수 없어 두 시간을 꼼짝을 하지 못한 적도 있다. 이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는 것이 맞나, 유해한 물질이 섞여 있는 내 생의 부분을 꺼내어 무엇을 하려 하나.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쓰는 것 말고는 없었다. 그 시절의 그 절기를 재생시키며 나는, 과거가 내 영혼의 현재를 어떻게 형상화해왔는지 처절하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30대의 마지막 봄과 여름에, 내 전 생의 봄과 여름을 기록했다.




  절기의 일기를 읽어 준 어느 독자가 말했다.

  '작가님은 참 경험이 많으세요. 저는 너무 평범하고 단편적인 삶을 살아와서 이렇게 많은 경험이 없어요. 소재가 많으신 것 같아 부러워요.'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이런 류의 답을 주었다. 작가님께서 잘 더듬지 않아 그렇게 느끼시는 거라고, 작가님도 분명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삶을 살아오셨다고.

  그렇다. 나는 절기의 일기를 쓰며 알게 되었다. 모든 이들은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왔음을, 그들의 과거를 사계절이 아니라 24절기로 나누고 쪼개면 나와 같이 많은 추억이 파편이 되어 앞에 놓이게 될 것임을. 그러다 당혹스러워지는 거다. 내 안에 이렇게나 많은 이야기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어 왔다는 사실 앞에서, 내가 꽤나 괜찮은 삶을 살아왔음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 앞에서.



  24절기의 절반이 지났다. 절기의 한가운데 서서 남은 절기의 이름들을 바라본다. 입추(立秋), 처서(處暑), 백로(白露), 추분(秋分), 한로(寒露), 상강(霜降)... 내 인생을 가득 채운 가을과 겨울이 펼쳐져 있다.

  지금까지 그랬듯, 어떤 이야기들로 채워질지 나 역시 알지 못한다. 지금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그랬듯 무수한 웃음과 눈물과 한숨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 감정들을 활자로 고체화시켜 이곳에 걸어두는 것, 이 것이 내 앞에 놓인 소명이다. 순명할 수밖에 없는 손을 가졌다. 쓰다가 기진할진대 그럼에도 받아들여야 하는 가을과 겨울의 이야기들이 추억의 외투를 입고서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이런, 또다시 완벽한 거짓의 시절부터이다. 그 시작은, 여름의 정가운데서 맞는 '입추(立秋)'이다.







0으로 끝나는 날마다 절기의 일기를 써보려 합니다.

입춘과 입하를 지나 입추와 입동에 이르는 찰나의 순간들, 그 틈새에 끼워져 있던 이야기를 펼쳐 보려 합니다. 퀴퀴한 냄새를 털어내고 빛바랜 장면을 손으로 쓸어내다 보면, 무기력을 벗어난 진짜 나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만 같습니다.


이전 13화 대서(大暑), 영혼의 쉼터에서 다시 물들길 바라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