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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Jun 30. 2021

대서(大暑), 영혼의 쉼터에서 다시 물들길 바라며

절기의 일기, 대서(大暑)

  24절기의 절반에 들어섰다. 여름의 한가운데이기도 한 대서(大暑)는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찜통더위, 불볕더위 같은 단어들은 모두 이때를 위해 태어났다. 소나기도 잦고 그로 인한 습한 공기는 자연스레 계곡을 떠오르게 한다.

  나의 유년의 모든 대서는, 안타깝게도 계곡을 떠나 무더위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계곡이든 제 발로 찾아간 무더위 속이든 모든 곳이 괜찮았다. 어린 내 영혼의 쉼터, 초록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대서




 

  내 유년의 땅 태백은, 여름이 정복하지 못한 땅이었다. 한낮 최고 온도가 25도였다. 모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자랐다. 선풍기도 무색했다. 집 앞산과 뒷산이, 태백산맥의 일부였다. 태백산맥의 험준한 기운이 보내주는 바람을 맞으며 엄마는 늘 '이 바람을 싸서 외할머니 보내 주고 싶다'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바람에 약이 들어있는가 보다'라는 생각을 했다. 가끔 밤에는 보일러를 틀어야 했다. 여름이 덮치기엔 태백은 너무나도 높고 자존심이 강한 곳이었다.

  여름 태백의 자랑은 역시나, 초록이었다. 태백산맥이 내뿜는 초록은 그냥 초록이 아니다. 신성한 그 무엇이 담겨 있었다. 어린 영혼이라 그랬는지, 나는 그 초록에 자주 홀렸다. 집 옥상에 올라 또는 앞산에 올라 초록을 수시로 읽었다.

  겨울에는 단 하나의 색, 눈의 순백에 묻혀 있던 산이 봄을 관통하며 오색찬란한 꽃을 피워댔다. 그 오색찬란을 증발시킨 여름은 다시 단 하나의 색, 초록만을 내뿜었다. 그러나 하나의 초록은 실은, 제각각의 초록이었다. 모든 나무와 각각의 줄기와 각각의 잎에서 초록은 각각의 영혼을 지니고 있었다.

  다행히 나의 유년엔 여백이 많아서, 나는 이 초록의 진리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렇게 내 영혼은 여름마다 초록으로 물들었다. 거부할 수 없는 일이었고, 거부할 이유가 없는 일종의 사명(使命) 같은 것이었다.

 

  태백(太白), 이름값은 한철이었다. 여름의 태백의 이름은 태록(太綠)이어야 한다고 혼자 중얼거렸다.



  중얼거림은 잠시였다. 나는 기꺼이 고향의 바람을 등졌다. 두 시간 반의 기차여행 끝의 안동역엔, 큰아빠나 친척오빠나 언니가 있었다. 태백에 비해 평지이고 분지여서 한여름의 더위를 제대로 알게 해 주는 태양도 있었다. 나와 동생은 진짜 여름 속에서 태백을 잊었다. 매년 대서(大暑) 즈음, 안동역의 뜨거운 아스팔트에 발을 디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참으로 대범하고 뻔뻔했으며 자식에 대한 믿음이 과했다. 아홉 살의 나에게 가방을 들게 하고 동생의 손을 잡게 한 후 세 가지를 강조해서 말했다. 절대 잠들지 말 것, 방송 잘 듣다가 '영주' 역이라고 하면 가방을 챙길 것, 안동역에서 내리면 사람들을 따라 나갈 것. 아, 하나 더 있다. 모르는 사람이 사탕이나 초콜릿을 준다 해도 절대 받지 말고 따라가지 말 것.

  이것들을 끊임없이 말해주고는, 아홉 살 여자아이와 여섯 살 남자아이를 기차에 올려 태운 것이다. 태백역에서 안동역까지 가는 두 시간 반 동안 어미의 마음은 어땠을까. 안동 큰 집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부모가 되어 생각해 보니, 어쩐지 나는 못할 것만 같다.

  아홉 살 여자아이가 기억하기에 엄마가 말해준 것들 가운데 어려울  없었다. 동생 손을 놓지 않고 창밖을 보다가 '영주'역이라는 방송을 들으면 동생에게 '곧 내릴 거야'라고 말했다. 한 손은 동생 손을 꼭 잡고 한 손은 가방을 꼭 잡았다. 안동역에서 내려서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 우르르 따라갔다.

  역 안에서 큰아빠가 손을 흔들었다. 분명 큰 아빠는 무서운데, 그렇게 웃으며 손을 흔드시는 걸 보니 안 무서운 사람 같기도 했다. 엄마 아빠 없이 기차를 타고 내린 것은 그렇게 아홉 살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다. 그 경험으로 인해 매년 여름 안동행 기차에 오르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안동이 좋은 이유는 딱 하나, 큰집이었다. 큰집엔 먹을 것도 많았고 친척오빠가 둘이나 있고 친척 언니가 둘이나 있었다. 매일 재미있는 일들 뿐이었다.


  ㄴ자 형태의 옛 한옥이었던 큰집에는 비밀을 품은 공간이 많았다. 그래도 용기 내서 다락은 한 번 올라가 봤는데, 지하계단은 도저히 내려가 볼 수 없었다. 언니 오빠들이 '곰지'라는 괴물이 살고 있다고 했다. 어린아이를 잡아먹는단다. 곰지, 곰지 하고 부르면 올라온단다. 곰지, 곰지 하다가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 살려줘.

  곰지는 보지 못한 채, 우리는 정문 앞에서 '함정'을 만들었다. 땅을 파고 물을 부었다.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올리고 그 위에 나뭇잎을 올리고 흙을 뿌렸다. 정말 완벽했다. 역시나, 우리의 타깃인 큰아빠가 걸려들었다. '이 눔들이!' 하는 큰아빠의 외침을 뒤로하고, 깔깔대며 도망 다니는 재미 또한 만만치 않았다.        

  매일 저녁엔 남자 편 여자 편 갈라서 전쟁놀이를 했다. 방 천정 모퉁이에 커다란 이불을 재주 좋게 걸고 이쪽 진영, 저쪽 진영 만들어지면 사정없이 총을 쏘고 베개를 던지며 인질을 잡아댔다. 큰오빠한테 질질 끌려가서 울다가 큰엄마한테 혼나기 일쑤였다.

  "이놈들이 안 자고 뭐하노! 시끄러 죽겠다! 잠이나 빨리 자그라, 내일 밭에 나가야 된다!"

  큰엄마가 불을 끄고 나가면 야전, 게릴라 전, 탐색전, 고지전이 끊이지 않았다. 언제 잠드는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아침에 대충 세수하고 가는 곳은, 비닐하우스였다. 비닐하우스 위에는 조선호박이, 아래엔 수박이 큰 집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어린 내가 보기에 큰 집의 비닐하우스는 끝이 없었다. 그리고, 끝없는 비닐하우스에서 나는 다시, '초록'을 만난 것이다.

  비밀의 방 같은 비닐하우스 안은 초록이 가득했다. 그러나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초록이었다. 초록을 맞이하기엔 비밀의 방이 내뿜는 열기가 대단했다. 열기가 허락하는 사람은 큰엄마와 큰아빠뿐이었다. 조무래기들은 열기에 타서 없어질 것만 같았다. 우리는 밖에서 그들의 무사귀환을 바라야 했다.

  누워서 파란 하늘과 흙냄새에 취해있다 보면, 큰엄마와 큰아빠는 땀에 절은 옷을 노동의 훈장 삼아 '구루마'를 끌고 왔다. 일륜 손수레 가득 동글동글한 초록을 실어오는 것이다. 그렇다, 동글동글 생명의 초록. 어제 한낮의 열기와 여름밤의 매미소리가 키운, 초록의 표피를 입은 조선호박. 아직 비닐하우스의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들은 따끈따끈한 열기를 뿜었다.  

  나의 할 일은, 그 열기가 식기 전에 신문지에 싸는 것이었다. 신문지 모서리에 호박을 놓고 왼쪽 오른쪽 안으로 말아 동그르르 돌린다. 박스에 차곡차곡 쌓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친척오빠들과 언니들과 나의 일이었다. 우린 대부분 '누가누가 빨리 싸는지' 내기했다. 경력과 경험 면에서 한참 앞서는 언니와 오빠들을 이길 수 없었다. 급한 마음에 급하게 잡다가 떨어트려 도르르르 구르는 호박에 상처라도 면 여름보다 뜨거운 큰엄마의 외침이 들려왔다.

  손에 호박의 초록과 신문지 잉크의 색이 어울려 어색한 검초록이 묻어나기 시작할 때에 점심을 먹었다. 점심은 매일 똑같았다. 집에서 끓여온 된장찌개에 상추를 손으로 죽죽 찢어 비벼 먹었다. 내 기준 세계 3대 고추장 장인에 버금가는 큰엄마 고추장을 넣으면 다른 게 더 필요가 없다. 말도 않고 밥을 다 먹고 나면, 큰아빠는 아침 일찍 하우스에서 가져와 찬물에 담가 뒀던 수박을 쪼갠다. 이 역시 말을 할 수 없고 말이 필요 없으며 말로 표현 못할 맛이었다.

  수박마저 다 먹고 평상에 누워 하늘나뭇잎을 보는 것이, 밭나가 있던 시간 중 가장 큰 기쁨이었다. 하늘의 파란빛을 간지럽히는 나뭇잎의 초록과, 그 초록을 간지럽히는 바람의 모양을 지켜보다가 어느 순간 아, 하고 알아차렸다. 호박 듬뿍 들어간 된장찌개와 상추, 수박 모두 그지없는 '초록'이었음을. 나를 먹이고 키운 모든 것이 이 여름과 더위를 머금은 땅이 보내 준 초록이었음을. 내 유년의 여백은 이렇게 쉬지 않고 '초록'의 의미를 알아차리느라 바빴다.


  집에 들어와 씻고 하루의 마무리를 하면 햇빛도 대지 뒤로 숨고 달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대지에 달이 떠있는 그림을 포함한 동양화가 큰 집의 바닥을 차지고, '똥 먹고 죽어야지'라든가 '고는 하고 때려쳐', '네가 싼 거 내가 먹는다'라는 알 수 없는 말들이 저 방에서 들려왔다. 그때는 몰랐다, 그 시간이 여름의 비닐하우스에서 온몸으로 받아낸 더위를 삭히는 시간이었음을. 그 시간을 통과해야만 다음날 태양의 부름 이전에 눈을 뜰 수 있는, 농사짓는 삶의 일부였음을.


  큰 집에서 이렇게 2-3주를 보내고 나면, 엄마와 전화 통화할 때 '집에 가고 싶어' 소리가 자동으로 재생됐다. 갈 때와 마찬가지로 나와 동생은 손을 꼭 잡고 태백역에 내렸다. 아빠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사이 태백산과 연화산과 구봉산의 초록은 더 짙어져 있었다. 호박이 품고 있는 생명의 초록과는 차원이 다른 초록이었다. 위엄과 존엄, 신성과 영험이 깃들어 있는 초록이 말없이 나의 귀갓길을 엄호해 주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초록을 먹고 자라 초록이 간지럽히는 하늘을 목격하며, 태백산맥이 내뿜는 초록의 보호를 받으며 자란 사람. 도치 않았으나 과 농촌의 모든 초록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도 초록으로 물들며 자란 사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지하실의 '곰지'는 내 안에서 전설이 되어 버렸다. 친척 언니들은 화장을 하고 나가 밤늦게 들어왔다. 말이 없어진 오빠들은 컴퓨터 앞을 떠나지 않았다. 그 넓은 집에 나와 동생만 덩그러니 있었다. '탐구생활'을 다 하고 가져간 책을 다 봐도 심심했다. 그 후로는 더 이상 방학마다 큰 집을 가지 않게 되었다.

  거의 같은 시기에, 나는 산 뒤에 '감옥'을 붙여 불렀다. 앞뒤 옆 아무리 둘러봐도 산뿐이었다. 지긋지긋한 산 감옥. 산 감옥을 벗어나는 생각만 했다. 초록 따위, 십대 여학생의 마음을 물들일 그 어떤 힘도 없었다. 

  태백과 여름과 초록은 그대로인데, 내 마음엔 하나의 계절뿐이었다. 대서(大暑) 보다 뜨거웠던 그 계절의 이름은, 아이러니하게도 '사춘(思春)기'였다.

  사춘기의 끝 무렵, 드디어 산 감옥 탈출에 성공했고 회색 도시에서 자유의 냄새를 맡았다. 그러나 그 후 나의 생에 있어 태백의 산과 초록을 향한 향수병을 없애는 것은,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오히려 더 짙어질 뿐이었다.


  봄날의 철쭉과 진달래를 구별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사춘기를 보냈다. 당시는 뜨거웠으나, 진짜 뜨거움이었는지 잠시 달아오른 것뿐이었는지 지금도 여전히 구별할 수 없다. 뜨겁다고 생각되었으나 실은 천천히 데워지고 있을 뿐이었던 20대의 시간도 추억 뒤편으로 보냈다.

  생의 전체로 봤을 때 진짜 대서(大暑), 불볕더위이자 찜통더위의 시기는 지금인 것만 같다. 아이 셋을 키워내고 길러내는 태양의 에너지를 갖고서, 밤에도 그 열기가 식지 않아 글을 쓰며 지낸다.

  한여름의 열기가 익게 하는 것들이, 생의 가을에 어떤 결실을 이루어낼지 지금은 알지 못한다. 지금은 그저 소나기와 태풍에 비 새는 곳을 막고 낙과를 주워 담기 바쁘다. 그러다 어느 날, 대서의 열기와 초록을 그리워할 날이 오면 생각지도 못한 결실이 가을빛을 하고 품에 안겨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날을 기다리며, 지금은 다시 초록 곁에 있을 때이다. 초록의 향기가 나는 영혼을 눕히고, 초록빛이 나는 글을 써 내려갈 때이다.


  내 유년의 대서마다 나를 물들인 이, 내 인생의 대서에 내 글을 물들이고 있다. 세월이 책임질 글의 숙성을 기대하며, 오늘도 영혼의 쉼터에서 그저 물들고 있을 뿐이다.




*절기 설명은 '네이버 지식백과'를 참조하였습니다. 


0으로 끝나는 날마다 절기의 일기를 써보려 합니다.

입춘과 입하를 지나 입추와 입동에 이르는 찰나의 순간들, 그 틈새에 끼워져 있던 이야기를 펼쳐 보려 합니다. 퀴퀴한 냄새를 털어내고 빛바랜 장면을 손으로 쓸어내다 보면, 무기력을 벗어난 진짜 나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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