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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근본(根本), 책

책의 일본어와 중국어

by 진샤
KakaoTalk_20201001_224258995.jpg 책의 사전적 정의

책(冊)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한자어의 오묘함이 함께 느껴진다. 한자의 생김새 그 자체가 너무나도 '책'이어서, 책이 무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지체 없이 한자를 써 보여줄 것이다. 이렇게 생긴 것이라고, 읽는 것이라고. 예전에야 죽간에 글자를 새긴 것을 묶은 것을 형상화한 것이지만, 어째 요즈음의 책의 형상과도 곧잘 어울린다. 굳이 사전적 의미를 나열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글자 자체로 설명이 가능한 단어로 느껴진다.



책의 일본어는 '本'이다. 발음은 '혼' 또는 '홍' 정도 되겠다. 처음 배울 때는 그냥 외웠다. 책, 혼, 책, 홍. 쓰고 발음하고 쓰고 발음하고.

몇 년 후 중국어를 공부하며 책의 중국어 단어를 배웠다. 書. 오호라. 이거구나. 발음은 '수' 또는 '슈'. 외웠다. 책, 수, 책, 슈. 책을 세는 단위도 함께 외워야 했다. 어라.이다. 이럴 수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발음은 '번'. 중국어 어순은 '한 권 책, 두 권 책' 이렇게 해야 하는데, 一本書, 兩本書 이렇게 표기하고 발음한다.

이즈음 되면, 생각을 해봐야 하는 것이다. 책이란 단어의, 양 옆 나라들이 사용하는 한자어, 本에 대해. 나무에 땅을 표현하는 획을 그어, 뿌리를 나타내는 글자로서, '근본', '기본'을 의미한다. 그렇다. 나무는 튼튼한 뿌리가 그 근본이 되어 서 있고 나무 그 자체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과 중국에서는 이 단어가 '책'을 의미하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무의식적으로 '책'을 떠올릴 때, 근본이나 기본 같은 의미를 바탕에 둘 것이다. 중국인들은 책 한 권에서 하나의 '근본'을 찾고, 두 권에서 두 가지 '근본'을 떠올릴 것이다.

책은, 인생의 바탕이었던 것이다. 책에서는 삶의 의미에 대한 근본을 찾을 수 있다. 책은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을 제시하고 알려주는 것이다. 일본어와 중국어에서, 책에 대한 그들의 인식에의 탁월함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책에서 인생의 근본과, 삶의 태도에 있어서의 기본을 찾으려는 그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본'을 사용하기는 한다. 원본, 사본, 가제본, 제출본, 양장본, 저장 본 등등. 그러나 '글 묶음'으로서의 의미가 더 강하다. 책이라는 광범위한 의미에서 부분적 의미만 차지할 뿐이다. '책'이라는 단어가 갖는 느낌보다는 어째 가볍게 다가온다. 우리 정서에는 '本'보다는 '冊'이 맞는 듯도 하다.




인생의 근본이라는 책을, 나는 근 5-6년째 가까이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쉽게 읽히는 에세이는 읽고 있지만,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대하소설이나 사고력을 요하는 책들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에세이를 쉬이 본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에세이 역시 작가들의 삶이 통째로 녹아있음을 절절히 알고 있다. 지금의 내 일상에 에세이라도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한 일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책을 가까이하지 못해서, 그래서 삶의 기본이 탄탄하지 못해서, 자주 내 삶이 흔들리는 것이 이 때문인가, 그런 생각이 자주 든다. 내가 일상에서도 쉽게 주저앉는 이유. 그렇다면 지금은 글로서 그 한을 풀고, 조금 더 시간의 여유가 허락될 때 책에서 '本'을 찾아보겠다. 내 사고와 의식, 삶의 태도의 근본을 다지는 시간이 빨리 다가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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