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
오늘의 할 일이 끝났습니다. 사실 그냥 끝냈습니다.
눈에는 잠이 내리지만, 몸의 다른 감각들은 자지 않겠다고, 이대로 자면 아깝다고... 하고,
내일을 앞둔 머리는 그래도 자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서도 또다시 해야 할 일을 떠올리는 중이라
이 메일을 다 쓴 이후의 시간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음 한 주는 다시 추워진다고 합니다.
추워진다는 말에는 공기가 맑을 거라는 기대가 언제나 앞섭니다.
저녁나절의 해가 길어짐을 느끼고, 그새 아침의 해가 길어져 눈을 떴을 때 어슴프레 밝은 해를 느낍니다.
해가 길어져 좋다기보다는 시간 참 속절없이 잘도 간다... 는 생각이 듭니다.
속절없다는 말이 사연 있어 보이네요. 유난히 시대가 느껴지는 단어가 있는 것과 같이 유난히 정서가 담긴 단어도 있습니다.
올해 안에 보자, 겨울 지나기 전에 보자, 봄이 오기 전에 보자, 코로나 좀 잠잠해지면 보자... 는 말을 던지며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네, 갑자기요.
사람들은 잘만 바깥을 다니고, 친구를 만나고, 음식점과 술집에를 가고... 하는데,
공연을 보고, 전시회를 가고, 쇼핑을 하고, 나들이를 하는데,
저는 사무실과 극장과 집을 왔다 갔다 하며, 진자운동이 아닌 삼각형의 틀 안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네, 이 또한 갑자기요.
그러다 보니 참 속절없는 시간이고, 세월이고, 삶이란 생각이 듭니다.
어제는 작정하고 쉬는 날이었기 때문에
엄마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친구(거의 유일하게 만나는 친구)와 저녁식사를 하고, 넷플릭스에서 타우(TAU)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썩 훌륭한 영화는 아니었는데, 실험을 위해 남자(인간)에게 감금되어 있는 여자(인간)가 그 집의 컨트롤시스템인 AI와 유대관계를 형성하면서 결국은 탈출을 한다는. 그런... 특별히 감동적이지 않고, 불필요한 장면을 쓸데없이 집어넣어 러닝타임을 채운 느낌이 다소 들었지만, 아이디어는 나름 신선했습니다.
TAU가 그 AI의 이름인데, 나는 03번이 아니라 줄리아다, 사람이다, 나는 밖에 나가야 한다, 나를 풀어줘...라고 말하는 여자 인간에게
TAU는 줄리아가 뭐냐, 사람이 뭐냐, 밖이 뭐냐고 묻습니다.
나는 TAU인데, 나도 사람이냐, 밖에는 뭐가 있냐고 묻습니다.
밖에는 뭐가 있을까요? 제가 몸 담고 있는 이곳의 건물 밖에는 뭐가 있을까요? 어떤 기대를 갖고 있나요? 어떤 바람을 갖고 있나요?
한 달, 두 달 뒤의 시간은 어떤 것들로 채워질까요?
아마 그때쯤이면 아, 맞다. 이렇게도 살 수 있는데...라는 생각을 하고 있겠지요?
참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내일을 응원합니다.
많이 웃고, 다음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