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1
새파란 며칠이 지나갑니다. 날이 춥다는 것은 공기가 맑다는 것과 연결됩니다.
몸과 기분이 찌뿌둥했다가도 알싸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면, 맑은 하늘을 보면 한결 나아집니다.
다음 주부터 차츰 기온이 올라간다는데 반가우면서도, 조금은 흐려질 공기가 벌써 걱정됩니다.
가장 좋아하지 않는 계절을 굳이 꼽으라면 봄인데,
만물이 소생하는 연둣빛 봄을 좋아하면서도 이도저도 아닌 기온의 체감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겨울날인데 확연히 길어진 해의 길이를 느끼면서 벌써 봄이 오고 있음을 직감합니다. 아직은 한창 겨울이지만요.
올해의 봄은 또 어떤 계절이, 어떤 시간이 될까요.
너무나 확실한 것은 작년의 봄과는 또 다를 것이라는 겁니다.
설에 엄마집에 갔다가 책장에 꽂힌, 노랗게 변해버린 "완벽주의의 함정"이라는 책을 한 권 빼들었습니다. 오래된 책이기도 하고, 조금 읽다 말았던 책이라 아주 흥미롭지는 않았는데, 저 자신을 완벽주의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완벽함에 대한 바람이 가져오는 사회 문제들을 이야기하는 저자의 의견이 조금 들렸습니다. 완벽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의 상당한 시간을 자기 계발을 위해 쏟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그리고 그것에 연결되어 실패가 개인의 책임이 되어 버린다는. 부분적으로 동의가 되면서도 또한 동의되지 않는 말들.
결국 필자는 적당히 좋은 것이 완벽한 것보다 더 낫다고 말을 맺는데... 적당히라는 것을 누가 판단하는지, 결국은 적당히든 완벽이든 개인의 판단과 느낌과 만족감 아닌가 싶은데 말입니다. 필자의 말은 또한 개인의 행복을 사회의 탓으로 돌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오히려 나 자신의 기준이 아닌 사회적 기준으로 나의 상태와 행복을 판단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어쩌면 전 이미 사회가 개인에게 기대하는 완벽주의에 대한 요구에 젖어 있는 걸까요.
솔직히 한 자 한 자 다 읽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중간제목을 보면서 흥미여부에 따라 빠르게 읽기를 했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생각에 도달했는지 모릅니다. 책이란 게 원래 그렇잖아요. 공연이 관람하는 사람에 따라 달리 보이듯, 책도 사람에 따라 달리 읽히잖아요. 다음에 다시 이 글을 읽는다면 다른 생각이 들지, 같은 생각일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작정하고 싱크대(정확히 말하면 싱크대의 하수구?)와 화장실(이 또한 정확히 말하면 화장실의 하수구?) 청소를 했습니다. 버릴 고무장갑과 버릴 수세미, 버릴 칫솔로 아주 깨끗하게, 열심히, 박박. 그렇게 청소하고 나니 맑은 공기를 마셨을 때만큼이나 기분이 좋아지더군요.
그리고 침대 시트와 이불을 차가운 공기 속에 탈탈 털었습니다. 아마도 오늘밤은 잘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체 모를 전기소리(이 정도도 이명이라고 하나요?)가 저를 따라다니지만 말입니다.
설이 지나고,
짧은 출근 후의 주말이 지나고,
이 밤이 지나면 끝없는 시간이 이어질 것 같아 걱정이 됩니다.
애써 설렘을 갖다 붙입니다.
다행히 억지를 부리지 않아도 감정이 살짝 와서 닿습니다.
많이 웃고, 다음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