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시간 안에

2022년 1월 #3

by 올디너리페이퍼

지난 월요일에 휴대폰이 생긴 조카가 한 주 내내, 드문드문 전화와 문자를 보내 이에 답하면서, 덕분에 소통하며 지냈습니다. 보고 싶다고, 놀러 오라고 그래서 토요일에 본인도 다른 계획이 없다며 할머니집, 저에게 엄마집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갑자기 얼음낚시를 하러 가기로 했다고 안 온다네요. 하아. 역시 이제는 제가 조카랑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조카가 저와 놀아주는 것으로 인식전환을 할 때인가 봅니다. 올 3월 초등학교 입학을 하고 나면, 같이 놀일도 별로 없겠지요.


며칠 전에는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너무 늙기 전에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는데...

할아버지가 먼저 떠오르고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아니면 그런 생각을 먼저 하고 할아버지가 떠올랐는지 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주 가끔 할아버지 돌아가실 때 생각이 나곤 합니다.

할아버지는 집에서 갑자기 쓰러지셔서 응급실로 실려갔다가 중환자실에서 석 달 정도 계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중환자실에 누워계시는 할아버지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고, 사실 이야기를 나눴다기보다는 할아버지는 간신히 눈으로 저의 얘기를 또는 저의 존재를 인식한다는 신호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분명 제 이야기를 들으셨다고 믿어요. 다른 도시 대형 종합병원에서 조금 작은 집 근처 병원 중환자실로 옮길 때 엄마와 제가 할아버지와 함께 앰뷸런스에 타고 이동했는데, 그때의 기억으로 앰뷸런스 소리만 들리면 긴장해 두리번거리고, 길을 비켜주지 않는 차를 원망하고, 비켜주는 차를 응원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중소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조금 더 저희를 보아주시다가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처음 한 인간이 소멸해 가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아기 상태의 어른을 보았습니다.

할아버지가 쓰러지시기 약 한 달 전에 할머니집에 가서 같이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할아버지는 소파에 누워 TV를 보며, 간간이 우리의 수다에 동참하셨는데 그게 마지막 제대로(?) 된 만남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페이스북 과거 상기 메시지를 통해 그게 거의 2년 만에 할아버지를 보러 갔던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제 엄마아빠랑 같이 저녁식사를 하다가, 너무 늙기 전에 죽었으면 좋겠다, 나도 그렇다,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같이 밥 먹었던 기억이 났다, 그게 2년 만이었다.... 는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울어버렸습니다. 너무 속상하고, 할아버지에게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그로부터 몇 년이 흘러 지금은 할머니도 안계시구요. 엄마는 괜찮다고, 결국 부모 돌아가시면 자식은 다 불효자라고, 하지만 엄마는 괜찮다고... 그렇게 사는 거라고...


그렇습니다. 그렇게 인간은 태어나 살다가, 누군가를 먼저 보내고, 누군가를 남기고, 그렇게 떠나가고, 이 세상에서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 존재는 다행히 기억에 남습니다. 사실 기억에 남는 것이 다행스럽기만 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아직 전화 너머로 "우리 새끼냐~ 우리 애기냐~"라고 부르시던 목소리가 생생합니다.

할아버지는 불현듯 전화통화 하는 것을 좋아하셨고, 놀러 가면 어렸을 때부터 족보를 꺼내 읽어주는 것을 좋아하셨고, 항상 벼루에 먹을 갈아 한지에 글자 쓰는 것과 한자 가득한 책 읽는 걸 좋아하셨고, 식사에 한 잔 곁들이는 약주를 좋아하셨고, 그렇게 그렇게 좋아하시는 것이, 생전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 분입니다. 그래서 다행입니다.


나이에 비해 젊다 하지만, 순간순간 완연히 늙음이 보이는 엄마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도 겉으로 늙고, 사회적 나이도 어느덧 중년 여성이나 여전히 철없고 물정 모르고 두려움 많은 저를 보면서

길어야 10년 내외 정도일 시간을 생각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겨울이, 올 한 해의 첫 달이 지나가는 것을 느낍니다.


많이 웃고, 다음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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