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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디너리페이퍼 Aug 18. 2024

묵묵히 시간 채워나가기

2020년 10월 #3

"시간은 분말과 같아서

바람에 흩어져도

자욱이 남는다."


불은 4 원소 중에서도 물과 흙에 변화를 주는 요소라는 것,

다른 것들과 달리 재료나 상태가 아니라 불 타오르는 순간의 행위라는,

이야기를 공연 <물 불 흙 공기>(송이원 연출) 예술가와의 대화에서 들었습니다.

동의가 되면서도,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은 행위다.


그날 퇴근길 공덕오거리에서 소방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앞에 있는 차들에게 비키라고 방송까지 하면서. 

또 다른 여러 대가 대흥역 방향에서 달려와 좌회전해 애오개역 쪽으로,

마포역 방향에서 달려와 직진해 같은 방향으로 달려갔습니다. 

멈춰 서서 그 앞을 악착같이 비켜서지 않는 택시를 욕하며, 그 모습을 바라봤습니다.


그러다 문득 불과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겹쳐졌습니다.

왜 갑자기 그런 감정이 느껴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의 감정인지, 불의 감정인지, 저에 대한 감정인지, 불에 대한 감정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순간 불과 외로움이 같은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다른 요소들과는 다른 성질이라는 그날 들은 이야기 때문일 수도,

다른 요소를 변화하게 만드는 요소라는 것 때문일 수도,

상대와 함께 나를 태워버린다는 생각 때문일 수도,

휘몰아치는 새빨갛고 동시에 투명한 색 때문일 수도,

끝나고 나면 모든 것이 소진되고 남는 회검색의 재와 그을림 때문일 수도... 


이번 한 주는 제가 참 감흥이 없다는 자각을 하면서,

동시에 서정적인 한 주였던 것 같습니다. 말이 되나요? 

심지어 어젯밤에는

'행복이 밑도 끝도 없이 찾아와 나를 웃게 한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분노가 타인과 타인으로 인한 상황으로 인해 생겨나고,

행복이 타인과 타인으로 인한 상황으로 인해 생겨나고, 

동시에 나 스스로 불현듯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아직 살아낼 여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 다행스럽습니다.


많이 웃고, 다음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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