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3
"시간은 분말과 같아서
바람에 흩어져도
자욱이 남는다."
불은 4 원소 중에서도 물과 흙에 변화를 주는 요소라는 것,
다른 것들과 달리 재료나 상태가 아니라 불 타오르는 순간의 행위라는,
이야기를 공연 <물 불 흙 공기>(송이원 연출) 예술가와의 대화에서 들었습니다.
동의가 되면서도,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은 행위다.
그날 퇴근길 공덕오거리에서 소방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앞에 있는 차들에게 비키라고 방송까지 하면서.
또 다른 여러 대가 대흥역 방향에서 달려와 좌회전해 애오개역 쪽으로,
마포역 방향에서 달려와 직진해 같은 방향으로 달려갔습니다.
멈춰 서서 그 앞을 악착같이 비켜서지 않는 택시를 욕하며, 그 모습을 바라봤습니다.
그러다 문득 불과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겹쳐졌습니다.
왜 갑자기 그런 감정이 느껴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의 감정인지, 불의 감정인지, 저에 대한 감정인지, 불에 대한 감정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순간 불과 외로움이 같은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다른 요소들과는 다른 성질이라는 그날 들은 이야기 때문일 수도,
다른 요소를 변화하게 만드는 요소라는 것 때문일 수도,
상대와 함께 나를 태워버린다는 생각 때문일 수도,
휘몰아치는 새빨갛고 동시에 투명한 색 때문일 수도,
끝나고 나면 모든 것이 소진되고 남는 회검색의 재와 그을림 때문일 수도...
이번 한 주는 제가 참 감흥이 없다는 자각을 하면서,
동시에 서정적인 한 주였던 것 같습니다. 말이 되나요?
심지어 어젯밤에는
'행복이 밑도 끝도 없이 찾아와 나를 웃게 한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분노가 타인과 타인으로 인한 상황으로 인해 생겨나고,
행복이 타인과 타인으로 인한 상황으로 인해 생겨나고,
동시에 나 스스로 불현듯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아직 살아낼 여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 다행스럽습니다.
많이 웃고, 다음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