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
토요일이라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잊을 수가 없는 토요일인데 말이지요. 잊었다기보다는 시간의 흐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말이 더 맞습니다.
저의 10월 한 달은 일주일 주기로 동일한 패턴이 네 번 반복되어야만 완성되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짧은 주기로 극장에서의 준비, 시작, 끝을 반복적으로 해낸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계속해서 풀충전 상태로 에너지와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중 첫 번째가 내일 끝납니다.
그 시작이었던 이번 주에는 동생이 제 집에 잠시 머물렀습니다. 잠만 잤다고 해야겠네요.
제가 잠이든 후 동생은 퇴근해서 잠을 자고, 제가 출근한 후 일어나 우유 한 잔 하고 출근을 합니다. 그나마 하루는 제가 조금 늦게 출근하는 날이라 동생이 눈뜨고 나오는 거 보고, 하루는 동생이 아침 회의로 일찍 일어나 얼굴도장 찍고 바로 출근했습니다. 3박 했는데 한 1분 봤나. 첫날도 제가 자는 사이에 들어왔거든요.
말로만 듣던 동생의 출퇴근을 실제로 보니 저와는 비할 바 없이 피곤하게 사는 것 같습니다. 일 년 중 업무상 바쁜 시기가 되면 상당한 기간 동안 거의 매일 2시 넘어 퇴근하고, 아침 10시쯤 출근하는 패턴이라고 하는데, 슬슬 동생도 건강을 생각해야 하는 나이라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중간중간 휴일근무도 있는 데다, 쉬는 휴일에는 어린아이가 있는 여느 가정처럼 여기저기 외출이 많다고 하는데 제가 생각할 땐 피곤할 것도 같지만, 동생은 오히려 그게 자신에게 힐링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 시간이 없다면 오히려 힘들 것 같다고.
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꿈이 마흔에 은퇴하는 거라고 말해왔는데, 그 나이를 넘긴 채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기본 은퇴가 60세 이후였던지라 동생의 생각에 대해 그 당시의 저는 왜 밑도 끝도 없이 40세인가, 너무 이른 거 아닌가 싶었지만 살다 보니 '사오정'이라는 말이 등장했네요.
주변을 보면 참 힘들게 사는 사람도 많고, 그런가 하면 참 쉽게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쉽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은 절대 동의하지 안 하겠지만 말입니다. 시골에 살며 무작정 행복하기만 했던 초등학생 때는 우리들의 삶이라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했지만, 4학년 즈음부터 친구들의 환경이, 그 안의 우리들의 삶이 꽤나 서로 다른 모양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누굴 부러워하거나 가여워해 본 적 없고, 다른 누군가가 또한 저를 부러워하지도 가여워하지도 않았겠지만 그 다름은 분명히 존재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쨌든, 다행스럽게도 지금의 동생은 덤덤히 그 생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아직 버겁지 않은가 봐요.
이번주 극장에서는 거의 1년 만에 공연이 올라갔습니다.
공연장에 공연을 만드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이 있으니 한결 좋았습니다. 사실 한결 좋았다는 말로는 충분치가 않습니다. 아주 많이, 정말 살 것 같은 기분이었거든요. 공연장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니까요. 존재가 존재의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전염병 시대에 사람이 모이는 공연을 올리기 위해 긴장하고, 대비하고, 준비하는 사람들의 손과 노력이 그 이전에 비하면 몇 배는 더 많이 들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함께 하는 상태에서 조금씩 나아지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최소한 내년까지는 이런 일과 순간이 반복되겠지만 말입니다. 다만 바라건대, 조심하는 마음이 어느 순간 무뎌지고 습관처럼 행하다가 그 빈틈에 문제가 생기지 않기를, 분명 조금씩 나아지길 기대합니다.
루틴 사이에 존재하는 습관이란 참 무서운 것 같습니다.
잘 되고 있을 때에도 습관은 무섭고, 문제가 있을 때에도 습관은 무섭습니다.
습관은 생각을 멈추게 합니다.
물론 좋은 습관은 들여야 한다고 하겠지만, 요즘의 습관은 저를 불안하게 합니다. 이유 모를 불안과 불만이 저를 건드리고 저를 채근합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이 나이가 되어서도 이렇다는 사실이 더 불안합니다.
어쨌든 공연이 관객을 만나 신나는 것과는 별개로 여러모로 피곤한 한 주이기도 합니다. 주변이나 다른 생각을 잘 의식하지 못하고, 다만 업무의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공기는 맑고, 하늘은 파랗고, 이따금 흐르는 구름은 예쁘고, 바람은 시원하다 못해 살짝 차가운 기운이 들어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가끔은 일을 하는 것이 나를 위한 시간이라기보다는 시간을 보내기 위한 과정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시간 자체에 변화를 도모하고 싶으나, 방향성이나 용기가 없습니다. 이따금 과거의 나로 돌아가고 싶으나, 과거의 나로 돌아가는 것이 지금 이 시점에 맞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많이 웃고 싶습니다.
힘을 내거나 재미있기 위한 웃음이 아니라, 힘이 나고 재미있어서 나오는 웃음 말입니다.
많이 웃고, 다음에 만나요.
추신. 메일함에 들어 있는 답장을 반가운 마음에 읽으며, 오늘 적은 제 메일의 단어와 내용들에 맞닿는 부분들을 발견합니다. 모두 가을을 맞았나 봅니다. 가을에 밀리지 말고, 신나게 타봅시다. 마치 서핑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