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비: 헛되이 헤프게 씀
직업 특성상 평일에 쉬는 경우가 가끔 있다.
아내는 출근하고, 딸은 유치원에 가고 난 혼자가 된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있을라 치면
아차차! 이럴 때가 아니지!
하며 일어난다.
사실 ‘이럴 때가 아니지가 않다.’
그래도 된다.
딱히 급하게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루종일 멍하니 있어도 되는 날이다.
하지만 혼자 있는 오늘 같은 날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또 멍하니 있는 시간이 아까워 뭐라도 읽어야 되고, 뭐라도 써야 되고, 뭐라도 공부해야 한다.
그렇게 나를 몰아간다 해도 , 내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변하지는 않더라.
얼마 전부터 집에 구피를 키운다.
처갓집에서 서너 마리 데려온 것이 하루하루 번식을 하더니 지금은 수십 마리다.
심지어 주위에 분양을 몇 번 하고 난 후의 숫자다.
아내는 가끔 어항 앞에 철퍼덕 앉아 몇 분이고, 몇십 분이고 구피들을 바라 본다.
“뭐 해 거기서?”
“그냥 힐링. “
”그게 힐링이 돼? 책을 읽어 그냥. “
”오빠도 이리 와서 보고 있어 봐. 엄청 좋아! “
난 아직 아내처럼 어항 속의 구피를 바라본 적이 없다.
가끔은 내가 지금의 순간, 하루, 일주일 또는 한 달을 올바르게 활용하고 있는지 의심이 들 때가 있다.
특히 힘들지 않을 때다.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날들이 지속되면, 왜 이렇게 편안한지, 아무 문제가 없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혹시 편안함만을 추구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떤 어려운 일을 피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런 의문이 든다.
물론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자기 계발을 하거나, 시간낭비를 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선 너무 좋은 행동이다.
하지만 큰 문제가 생겼다.
그렇게 나의 발전을 위해서 쓰는 시간이 아닌 모든 나머지 시간을 <시간낭비>라고 생각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영어공부를 해야 하는데 아이와 놀아주는 시간이 시간낭비일까?
당장 영상편집을 해야 하는데 아내와 걷는 시간이 시간낭비일까?
어떤 일이 우선이 돼야 하는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그 시간들을 그대로 즐기는 게 더 좋을 지도…
가족과 함께하는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선에서,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에 의한 스트레스로 주변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열심히 하는데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포기하지 않는다는 선에서,
가끔은 멍 때리라는 아내의 조언을 실천하겠다는 선에서,
우선순위를 정해 시간낭비 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