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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아미고 Sep 09. 2023

대전 도마동 경남아파트

오래전 기억


대전시 서구 도마동


난 엄마 뱃속에서부터 중학생이 될 때까지 도마동에 살았다.

주택에 살았던 기억도 있지만, 확실하게 기억이 나는 곳은 <경남아파트>이다.


아파트 대단지가 많지 않던 시절 도마동엔 경남아파트가 있었다.

배재대학교 정문에서 내려오는 큰 도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경남아파트 2차 아파트가 있었고,  도로가 끝나는 지점 맞은편에는 1차 아파트가 있었다.


난 이 경남아파트 안에서만 3번의 이사를 한다.

후레쉬맨

이사를 할 때마다 항상 긴장을 했다.

그 시절 남자아이들은 후레쉬맨 놀이(역할극이다.)를 했는데 그 놀이에서 빌런이 된다는 것은 그 놀이를 할 때마다 후레쉬맨들에게 두들겨 맞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계급이었다.



도마초등학교

8살이 되자 국민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도마동에 살고 있으니 당연하게, 도마국민학교에 들어갔다. (이땐 국민학교)

멋모르고 신나 하는 시절이다.

학교 정문 앞에는 (어디나 있는 것처럼) 작은 문구점 겸 분식점이 있었다.

예전 짜장면그릇색깔을 한 작은 접시에 한 주걱 퍼주는 떡볶이는 100원이었고, 스테이플러로 겹겹이 매달려 있는 뽑기도 100원, 가끔 오는 병아리아저씨의 병아리(대부분 하루가 지나면 죽었다. 물론 닭이 될 때까지 키우는 아이도 가끔 있다.)도 100원이었다.


그 시절 나의 100원은 곧 나의 자존감이었다.




등굣길, 경남아파트에서 도마초등학교까지 가는 길에는 꽤 많은 장소를 지나치게 된다.

배재대학교 정문길을 내려와서 왼쪽으로 꺾어 걸어가다 보면, 오른쪽 지하에는 홀 가운데 피아노가 있던 <데이지>라는 고급 경양식집이 있었다.

(그냥 어두운 돈가스집이었을 지도..)


어느 토요일인가, 동생 손을 꼭 잡고 돈가스를 먹으러 갔는데, 그때 인기드라마였던 <야망의 세월>에서 골성찬역의  고 김성찬 님을 봤다.


고 김성찬배우님


대전에 사는 10살 꼬마에게는 상당히 흥분이 되는 일이었다.

김성찬 님을 보자마자 거리가 떠나가도록


“골성찬이다! 골성찬이다!”


하고 소리를 질렀다.

김성찬 님은 멋쩍게 웃으시고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태어나서 처음 본 연예인이었다.




그 길로 조금만 더 가면 오른쪽에 엄청난 각도의 내리막길이 있다. 그 시절 체감상 30도 이상이었다.

(지금 로드뷰를 보니 그 정도는 아니다.)

 그냥 내려가다가 앞으로 고꾸라질까 봐 뒷걸음질을 하며 내려갔던 기억도 있다.

조심히 10~20미터쯤 내려가면 도마동 국민학생들의 핫플레이스 <보물섬>이 있었다.

보물섬은 그냥 그 시절 꽤 큰 문구점 겸 완구점 겸. 불량식품판매점 정도였다.

국민학교 교실


학교 가기 전 항상 그곳에 들러서 친구들을 만났다.

보물섬에서 학교로 올라가는 길은 항상 주변을 살피며 조심해야 했다.

근처의 중학교 형들이 우유값을 내는 날이거나, 학원비를 내는 날이면, 귀신같이 알고 돈을 뺏으러 왔기 때문이다.

강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던 80년대.

주변 중학교에서 싸움 잘한다는 형 이름 하나 정도는 외우고 다녀야 했던 그 시절.

그때 세상은 쉽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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