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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jay Feb 11. 2021

맛없는 천연 발효 빵 이야기

밥 빵

세상에 이렇게 먹음직하고 보암직한 빵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유럽식 전통 발효 빵은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빵의 본고장 유럽에선 수 천 년간 이어온 주식이니 그 모양과 종류를 감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무엇보다 동그랗게 배를 가르고 부풀어 올라 먹음직한 갈색을 뽐내고 있는 갓 나온 빵을 보고 있노라면 침샘의 폭발을 막을 수 없다.


그런데 반전은 이 천연 발효빵을 처음 먹어 본 한국 사람들의 반응이다. 열에 일곱여덟은 알 수 없는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상상했던 맛이 아니기 때문이다. 살살 찢어지는 부드러운 결도 버터의 고소함과 달콤함도 없다. 질기고 거칠고, 시큼하기까지 하다. 그러니 첫 만남에 당황스러운 것은 당연하다.


한국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먹고 자란 빵에 길들여 있다. 예상했고 기대했던 그 빵 맛이 아니기에 실망을 한다. 아마 나의 첫 빵도 단팥빵이나 소보루빵이었을 거다. 나에게 빵은 항상 달았다. 어렸을 적, 가운데 쨈이 잔뜩 들어간 일명 맘모스 빵을 먹었을 때의 황홀함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얼마나 좋아했던지 초등학생 때 크리스마스 선물로 이 빵을 받기도 했다. 요즘엔 쨈과 함께 크림과 갖가지 견과류가 들어간 맘모스 빵도 있다. 가히 중년들의 치명적인 디저트 빵의 최고봉이 아닐까 싶다. 맛도 맛이지만 당뇨와 고지혈 등의 성인병에도 치명적이다. 성인이 되고 한참이 돼서야 알았지만,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빵들이 일본식 빵이라고 한다. 모방을 통해 더 발전된 형태의 음식 문화를 만드는 일본이다. 쌀밥을 먹는 문화에서 그들만의 빵 문화를 만들어 낸 것만도 정말 대단하다. 얼마 전에 피자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이들은 일본이 최고인 피자도 만들어 냈다.


각설하고, 난 유럽은 아니지만 10년을 해외에 살면서 한국의 일본식 빵을 자주 먹지 못했다. ‘난(Nan)’이라고 부르는 화덕에 구운 납작 빵이나, 짜파티(Chapati), 로띠(Roti), 아빰(Appam) 같은 쌀밥을 대체하는 주식용 빵을 자주 먹었다. 어느 순간부터 빵이 달지 않은 것에 익숙해졌다. 오히려 잠깐 한국에 들어와 프랜차이즈의 빵을 먹을 때면 첫맛은 자극적이고 맛있지만, 속도 불편하고 하나를 다 먹기도 힘들었다. 내 위장과 입맛이 달고 기름진 빵을 거부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아내는 ‘경력 단절 여성(경단녀)’이라는 용어를 처음 들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경력도 없고, 경제적 가치도 없는 사람을 저 평가 아니 평가 불가로 취급했다. 아내는 상처를 받고, 역 문화 충격으로 한 동안 힘들어했다. 그러다가 좋은 기회에 천연 발효 빵을 배우게 되었다. 발효되어 부풀어 오른 반죽을 주무를 때마다 무척 행복해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빵 덩이를 가져올 때면 난 진심으로 맛있게 먹었다. 먹어준 것이 아니라 정말 그리웠던 달지 않은 빵이었다. 끼니를 대신해서 먹기도 좋았고, 여러 가지 요리와도 잘 어울렸다. 정제 탄수화물처럼 급격하게 당이 오르지도 않았다. 발효 종에 따라 빵마다 향과 맛이 달랐다. 재료를 다르게 쓸 때마다 달라지는 질감의 차이도 흥미로웠다. 커피의 세계에 처음 들어오면 경험하는 신세계, 바로 그런 류의 것이었다.


우리집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천연 발효종. 기특한 우리 집 귀한 자식이다.

난 아내가 만드는 빵의 제 일 고객이다. 어떨 때는 싸구려 오븐 때문에 온도 조절이 안돼서 빵이 타거나, 속이 덜 익기도 한다. 그래도 난 맛있다. 난 그렇게 까다로운 미식가는 아니다. 어느 정도 수준만 되고 심리적인 동의가 되면 쉬운 사람이다. 아내가 최근에 공기 중의 미생물로 우리 집에서 직접 발효종을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 이 놈은 아기같이 계속 먹이를 주고, 온도와 습도를 맞춰줘야 살아 있는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빵을 만들어서 사용해 줘야 한다. 안 그러면 발효종에게 우리 집을 점령당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내가 매주 빵을 만든다.


난 그런 아내를 응원하기 위해 아내의 천연 발효 빵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팽 오 누아 세이글(Pain ou noix seigle) : 호두호밀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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