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 평화 릴레이 달리기 107km 답사 러닝
"안식월에 뭐 하실 생각이세요?”
10월 3일 국제평화마라톤 대회가 끝나고 같이 저녁 먹는 자리에서 받은 질문이었다. 힘들게 안식월을 얻어내긴 했지만 딱히 별다른 계획이 있던 건 아니었다. 어디를 혼자 훌쩍 간들 가사와 일을 혼자 감당할 아내를 두고 마음 편하게 시간을 보낼 낯짝도 없었다. 거기에 셋째의 이우고 입시 스케줄도 있어서 발이 묶였다.
“글쎄요? 사실 별 계획이 없어요...”
“그럼, 이평달 답사 러닝 하면 되겠네~”
농담으로 던지신 말이었다. 이우학교 앞에서 파주의 임진각 평화누리공원까지 대략 107km의 거리를 어찌 한 사람이 달려서 갈 수 있겠는가! 근데 왜 내 마음에 이게 하고 싶어 졌을까? 안식월이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에 30km 정도 달리고 쉬고 또 달리고 그러면 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발동이 걸려 버렸다. 쇠뿔도 단숨에 빼랬다고, 일주일 만에 다 해버리자는 생각이 들어 ‘이우RUN’ 운영진들에게 포부를 밝혔다. 하루 뛰고, 하루 쉬고, 7일 만에 107km를 따 뛰어보겠노라고!! 운영진 톡방이 시끌 시끌 해졌다. 의사인 제이제이가 ‘근육손상지표’ 논문까지 올려주며 그러다가 큰 일 난다고 만류했다. 결정적으로 ‘말려도 말려질 분 아니라는 거 아니까…’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이 먹을수록 웬만한 거는 말리면 말려지는 사람이 돼야 할 텐데... 그래서 하루 뛰고 삼사일 정도는 쉬기로 하고 답사 러닝 일정을 확정했다.
‘이평달’, 이우 평화 릴레이 달리기의 줄임말이다. 이우학교에서 러닝 크루를 만들고 학부모, 학생들과 함께 몇 번의 마라톤 대회를 참가하면서 의문이 생겼다. 왜 마라톤 대회의 이름마다 ‘평화’를 갖다 붙이는 걸까? 과장 좀 하면, 마라톤 대회의 절반 정도는 무슨 평화 마라톤일 정도다. 그리고 깨달았다. 수천수만 명의 사람들이 넓은 광장에 모여 도로와 공원을 점유하고 수십 킬로씩을 안전하게 마음껏 달릴 수 있는 것은 평화가 전제되지 않은 나라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레바논, 미얀마와 같이 전쟁의 공포가 일상인 나라에서 평화롭게 광장에 모여 도로를 달리면서 즐거움과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까? 그런데 전쟁이 끝나지 않은 나라인 한국에서는 이 마라톤을 평화롭게 즐길 수 있다는 아이러니가 존재했다. 이 나라의 평화를 위해 수많은 희생과 수고가 있기 때문이다. 달리기를 하고, 마라톤 대회를 참가하면서 우리가 단순히 개인의 건강과 목표 성취에만 함몰되지 않고 평화의 가치를 반드시 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러닝크루니까 말보단 평화를 상징하는 곳까지 달려가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크루원들에게 UN이 정한 세계 평화의 날인 9월 21일에 이우학교 앞에서부터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까지 약 107km를 9.21km 또는 그 절반인 4.605km로 나눠서 릴레이로 완주하고 평화누리공원에 모여 평화의 의미를 선언하자고 제안했다. 이 제안에 많은 이우RUN 크루원들이 공감해 주었다. 그 공감이 107km 답사 러닝을 시도할 수 있는 동력이 됐다.
인터넷 포털의 지도를 보며 4번에 걸쳐 진행될 107km 답사런의 경로를 짰다. 예상치 못한 난관이 있었다. 파주 대부분 지역이 군사 지역인지 지도 스카이뷰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았다. 지도에는 길이 없는데, 길 찾기로는 갈 수 있다고 표시됐다. 직접 가봐야 아는 길들이었다. 답사런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외로운 107km 달리기가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