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읽다보니

by 여상욱

1월의 아침은 물안개를 피우며 깨어날 때가 많다. 빼빼 마른 달이라고 아침에 잠이라도 푸욱 자라는 배려일까? 그러면서 1월은 영하의 긴 침묵을 이어가는가 보다. 내가 살고 있는 10,20 호씩 모여 있는 강가 마을은 안개에 취해 늦게 일어날 때가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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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그런 날 중의 하루인 것 같다. 안개와 구름이 마음을 맞추었을까. 강물 위까지 구름이 내려와 내가 자고 있는 방의 창 밖 어둠이 가시는 데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오늘따라 제 시간에 날아오던 긴꼬리 까치도 지각하였다. 오후에 진로 지도하는 멘티 중학생 한 명과 법원 견학을 가기로 약속한 날이다. 서둘러 자료 준비를 마무리하고 강가 산책을 나섰다. 초록을 자랑하던 강둑이 어느새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강가에서 걷히는 안개발 밑으로 천둥오리 수십 마리가 햇살 맞을 준비를 하느라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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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은 대지를 읽는 일이라고 한다.

포장된 길이 많지만, 될 수 있으면 맨 흙길을 걸어야 독해가 실감날 것 같다. 돌부리길, 패인 길, 오르막길, 굽은 길 ... 이런 길을 걷다 보면 의외로 삶의 건더기를 건져 올리는 기회가 많아진다. 믿음과 선입견을 멈추거나 버릴 때 있는 대상을 있는그대로 볼 수 있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믿음이나 선입견이라는 색안경을 벗고 실제 세계나 책 속 세계를 생긴 그대로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믿음을 의심하는 순간 생각이 자라난다. 그 생각을 바탕으로 해석을 해야 편협이나 왜곡의 터널을 빠져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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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은 독서라고 했다. 책을 읽고 해석하면 어떤 대상에 의미가 부여된다. 대상을 무엇이라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대지는 자체로 생명체다. 씨앗이 떨어지면 곧 발아하지 않는가? 그래서 대지는 만물의 어머니다. 대지를 읽고 해석하는 것은 어머니를 만나서 그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일이다.


여명을 몰고오는 건 누굴까. 아침과 저녁 노을을 붉히는 건 누구일까. 새 떡잎이 파릇하게 얼굴 내미는 봄은 누가 데리고 오는 것일까. 햇님을 숨겨주는 잿빛 구름은 마음이 고운 걸까. 늦가을 땅에 떨어진 젖은 낙엽이 비유되는 곳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누구의 손길로 달빛을 밝히는 걸까. 무지개를 보여주기 위해 꼭 사나운 소나기를 몰고 와야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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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섶의 풀잎을 덮고 있던 서리가 녹으며 촉촉해진 길 가를 걸으면 오만 가지 생각이 난다. 인간 병균에 침범당한 땅 덩어리 살갗이 상해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물어볼 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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