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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봄 Oct 31. 2020

10. 몸치의 요가 수련기

운동의 즐거움

나는 중학교까지 병치레가 잦았다. 감기를 달고 살았다. 허연 콧물 자국이 볼과 옷소매에 선명했다. 자주 가던 소아과는 회색 벽돌 2층 가정집이었는데, 근처를 지나기만 해도 무서웠다. 병원에 가면 입구부터 막무가내로 울어 젖혔다. 소독약 냄새는 실험실을 연상케 하고 청진기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배와 등에 차가운 물체가 닿으면 놀랐다. 의사 할아버지는 내가 울 때면  엄포를 놓았고, 주눅 들었다. 계속된 감기로 축농증이 심해졌다. 이비인후과는 공포를 조장하는 또 다른 장소였다. 긴 바늘 모양의 기구가 얼굴로 다가왔고 위협하는 것 같았다. 물총 같은 액체가 코 안으로 들어올 때면 정신이 혼미했다.


신체는 허약하고 체력은 약했다. 술래잡기를 해도 친구를 잡지 못해 숨을 헐떡였다. 운동을 싫어했다. 더욱이 몸치여서 스포츠를 어려워했다. 약점은 구기종목에서 두드러졌다.  축구에서 공을 차면 발목이 다치고, 농구에서 공을 만지면 팔목이 나갔다. 상대적으로 운동 신경이 덜 필요한, 달리기를 좋아했다. 100m 달리기는 순발력과 허벅지 근육만 있으면 충분했다. 그런데 장거리 달리기는 유독 숨이 찼다. 새가슴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호흡곤란 증상은 숙명이었다. 선천성을 탓하며 내 관심은 운동에서 멀어졌다.



취업을 하자 스트레스를 받고 피곤이 쌓였다. 20대엔 주로 술로 풀었다. 문제는 다음날 발생했다. 스트레스는 풀리지만, 피곤은 가중했다. 피로한 날엔 아침부터 꾸벅댔다. 점심을 거르고 책상에 엎드려 꿈나라로 향했다. 저녁땐 언제 그랬냐는 듯 쌩쌩해지고 다시 술잔을 채웠다. 악순환이 반복됐다. 체중은 나날이 늘고 둔해진 몸은 움직이길 거부했다. 주위 사람은 운동을 권유했지만, 손사래를 쳤다. 당시 자세도 불량했다. 습관적으로 의자에 눕듯 앉았다. 그렇게 30대 중반으로 접어들었다. 어느 가을 주말 무리하게 스크린 골프를 치고 허리를 다쳤다. 아픔은 다리가 저릴 정도로 심했다.


병명은 만성 디스크 협착증이었다. 통증은 지속성을 기준으로 급성과 만성으로 나눌 수 있다. 급성 질환은 약물이나 수술을 통해 조기에 치료한다. 반면 만성은 6개월 혹은 1년 이상 계속되는 질환을 말하는데, 증세가 완만히 나타나고 장기간 지속한다. 허리 디스크는 신경 계통 질환이다. 내 경우 삐딱한 자세와 갑작스러운 운동으로 디스크가 신경을 눌렀다. 보름 정도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다. 바닥에 앉는 것은 고사하고 세수도 힘들었다.


우리는 건강을 잃고 나서 후회한다. 나도 같았다. 아프면 물리치료를 받고 누워 있었다. 장시간 운전을 하면 허리를 펼 수 없었다. 만성화된 질병 앞에서 무력했다. 고통이 일상을 지배했다. 무거운 물건을 들라치면, 아프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병은 내 몸의 제어권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통제력을 돌려받고 싶었다. 신체의 아픔은 나를 성장시켰다.


내가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의사는 디스크가 있는 사람에게 운동을 추천하지 않았다. 그래서 걷기로 시작했다. 도보로 출근하고, 점심 식사를 마치고 여의도 공원을 산책했다. 걷기는 힘들었지만 다음 날까지 피로가 쌓이진 않았다. 봄철엔 바람에 흐드러진 벚꽃 잎을 맞으며 윤중로를 걷고, 여름엔 매미들의 쩌렁대는 울음소리가 길동무가 됐다. 가을엔 노랑 은행잎과 갈색과 붉은 널찍한 플라타너스 낙엽은 바스락 거렸고, 겨울엔 눈 쌓인 거리를 걸을 때 뽀드득 나는 소리가 추위를 잊게 했다. 걷기에 익숙해지고 운동에 욕심이 났다.


나는 뭘 해도 자주 싫증 냈다. 학원을 다녀도 3개월 이상을 지속하지 못했는데,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헬스를 6개월 끊고 한 달 만에 포기했다. 테니스도 배웠지만 두 달을 넘기지 못했다. 운동신경이 없으니, 배우는 것도 더뎠다. 대부분 기본자세만 익히고 포기했다. 여러 운동 사이에서 방황했다. 다시 운동하는 것을 내팽개치고 싶었지만 통증은 나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정적이지만 부드러운 움직임이 있는 운동을 선호한다. 예를 들면 요가다. 처음엔 겉보기에 쉬워 보이고 에너지 소모도 많을 거 같지 않아서 시작했다. 그런데 첫 수업시간 땀이 비 오듯 흘렀다. 평소 쓰지 않던 근육이기도 했거니와 뭉친 근육이 풀리면서 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마지막은 누워서 5분간 명상 시간을 가졌는데, 땀이 천천히 식으며 머리가 맑아졌다. 짧은 시간 동안 몸과 호흡에 집중할 수 있었다.


효과는 운동을 6개월 정도 유지하자 나타났다. 허리 통증은 줄었고, 삐뚤어진 자세는 교정돼갔다. 스트레스도 완화돼 얼굴 표정이 밝아졌다. 요가를 통해 내게 맞는 운동이 있다는 것과 운동의 즐거움을 알았다. 최근엔 몸이 먼저 말을 건다. 목이 뻐근하고 어깨가 굳으면 운동을 하라는 신호다. 간단한 스트레칭이라도 하고 나면 하루를 가볍게 시작할 수 있다.


만성 질병과 운동은 장기간 몸에 발생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전자는 긴 기간 내 몸에 고통이 축적되는 과정이고, 후자는 내 몸을 알아가며 즐거움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한편으로 둘은 고통과 즐거움으로 반대되기도 한다. 어쩌면 운동은 고통과 즐거움이 교차하며 내 육체를 알아가는 과정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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