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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meralda Oct 05. 2020

020 우리의 글은 어찌보면 처절한 난중일기입니다.

남과 싸우고 자신과 싸우고, 써야만 하는 일들은 넘쳐납니다

 행복은 단순하게 행복해할 때 온전해지는 건데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며 민망해한다니, 언니는 어떨 때는 눈치를 얄밉다 싶을 정도로 안 보다가도 이상할 때 남 눈치 본다니까요. 이런 데서도 멀티를 잘하는 이상한 사람이야..


오늘의 추천곡은 송창식 - 밤눈 입니다.


 저는 오늘 우연찮게 촬영장에서 교수님을 만나게 됐어요. 제가 학교에서 제일 좋아했던 교수님이었는데, 오래간만에 교수님을 만나서 그분의 노래를 듣고 얘기도 나누고 왔어요. 처음으로 저한테 곡 쓰는 법을 알려주신 교수님인데 곡 쓰는 기술 말고도 사람의 됨됨이를 많이 배웠던 시간이었어요. 교수님은 하얀 얼굴에 뿔테 안경을 끼셨고, 말할 때 목소리와는 다르게 이따금씩 저희 앞에서 노래하실 때에는 영락없는 소년의 음색이셨어죠. 늘 기타를 잡는 게 익숙하신 분이었는데, 그때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학생들한테 일기를 써오라고 하셨던 거예요. 일상의 일들이 모이면 노래가 될 거라고. 그때에는 그게 뭐 대단한 말인가 싶었거든요? 근데 제가 졸업하고 나서 필드에서 내 곡을 점차 써나가기 시작할 때에는 내가 나의 일상을 글로 적고, 보고, 맨드랍게 고쳐나가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내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노래는 창작물이라 얼마든지 과장될 수 있고 꾸며질 수 있고 때로는 심하게 의도에 따라 왜곡될 수도 있는데 내가 누군지, 어떤 것을 느끼고 좋아하는지를 잘 모르는 경우에는 그것이 심해진다고 지금은 생각하게 되었어요. 내가 오늘 한 일과 그에 대한 감정을 써보는 습관. 교수님의 수업 이후로 일기를 꾸준히 쓰려고 했던 게 지금의 음악관을 만들었던 것 같아요. 건강한 일상에서 오는 건강한 감정들은 건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사실도 어쩌면 그때 배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던 것은, 5년 만에 교수님을 만나 직접 기타 치고 노래하시는 모습을 보는데 갑작스럽게 제 눈에서 눈물이 와르르 떨어졌어요. '내가 왜 이러지' 당황스러울 정도로 복받쳐 올라서 확 울어버렸어요. 나중에 그걸 본 사람들과 교수님이 왜 울었냐고 물어보았고 저도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건 그냥 교수님의 변치 않으신 모습에 감사해서 그랬던 것이라 짐작이 됐어요. 무슨 말이냐면요 학교를 졸업하고 난 이후에 필드에서 앨범을 내고 활동하며 부딪쳐나간 세상은 너무 처음부터 막다른 벽이었고, 어리숙한 저에게 일부러 화를 내며 제 마음을 짓누르는 사람들도 만났어요. 노래를 잘하는 것만으로 앨범을 내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음악 작업 이후의 믹싱이나 유통사와의 소통이나 마케팅 회의 같은 사무작업들에서 빚어지는 실수들과 마찰들에 당황스러웠어요. 무엇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고 얼마큼 무시해도 되는 것인지의 정도를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하더라고요. 가까이서 본 음악은 순수예술이 아닌 순수 상업에 가까웠고, 함께 시작했던 사람들도 어느덧 많이 변질되고 자본에 따라갈 수 밖에 없는 모습들을 보며 나 또한 그렇게 되고 있음에 이따금씩 우울하기도 해요. 그런데 오늘 제 앞에서 노래하시던 교수님은 그냥 순수하게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 5년 전 나에게 작곡하는 법에 앞서 일기를 쓰자고 말해 준 사람의 모습 그대로 신 거예요. 그게 되게 감사하고 행복했어요. 순수한 음악을 다시 열망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것처럼 든든하고 힘이 생겨났어요. 그렇게 뭉클해진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나를 20살 때로 데리고 가서 그 강의실에 앉혀놨어요. 변하지 않는 것을 보면 왜 이리 눈물이 나는지. 눈물이 나면서 그 강의실 나무 의자 냄새가 순간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네요.


 오늘 황급히 눈물을 훔치며 부끄러워했지만 저는 눈물을 많이 흘리는 어른이 되고 싶어요. 자주 감동하고, 자주 감사해하고, 너무 운다 싶을 정도로 눈물 감수성이 헤픈 어른이 돼서 눈물이 마를 정도로 마음이 닫혀 있는 우리 같은 청년들에게 변하지 않는 순수함을 가진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철이 없는 것과는 다른 거 알죠? 자기 세계에 갇혀서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고 눈치 없이 고집부리는 철없는 인간은 절대 사양이에요. 그냥 툭치면 우는 인간이 되자 


 (이 글부터는 며칠 후의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글을 마치고 발행만을 미뤄두고 있었는데, 어제 또 재밌는 에피소드가 생겨서 다시 수정 버튼을 눌렀네요. 어젯밤 잘 모르는 사람들이랑 어쩌다 술자리를 갖게 돼서 밤이 깊도록 수다를 떨게 됐어요. 그런데 갑자기 그 자리에서 제 지인의 험담이 시작된 거예요. "아, 나 그 사람 너무 싫어" 하면서 시작된 지인에 대한 후토크에 불이 붙었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나도 나도"를 연발했고, 저는 제가 너무 좋아하는 그 사람을 누군가는 싫어하기도 한다는 사실 자체에 충격을 받으면서도 이런 감정을 티 내지 않으려고 애써야 했어요. 그 사람과 제가 친한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어요. 제가 있어서 말하지 말까 했었는데 그래도 꺼낸다며 그분의 꼰대 기질에 대한 불만을 한 사람씩 표현하기 시작했어요. 그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던 저는 "괜찮아요~" 한마디 던지고 쭈그려서 그들의 열띈 험담 배틀을 민망하게 참관했어요. 제가 좋게 봤던 부분이 그들에게는 당연히 싫어할만한 부분이 되기도 했고, 제가 닮고 싶던 부분이 그들에게는 놀림거리가 되는 모습들을 보며 젤리가 뇌로 침투해서 뇌 속이 점점 부풀어 오르는 것만 같았어요(안은영 탓이에요).

 

 초등학교 때 저는 희주와 친했어요. 학기 중간에 전학 온 희주는 저처럼 오동통한 몸매의 소유자였고, 통통족들은 통통족을 알아보는 법. 얼마 안돼서 그 친구와 학교 끝나고 성지 분식에 가서 떡볶이를 사 먹었죠. 비 오는 날에도 빗속을 맨몸으로 뚫고 축축하게 젖은 상태로 성지 분식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아주머니가 주시는 따뜻한 어묵 국물을 홀짝이며 떡볶이 2인분을 주문했어요. 돈이 조금 더 있는 날은 맞은편에 있는 닭강정도 2차로 해치우고 배가 남산만 해져서 나란히 집으로 향했어요. 집에 가는 길에 테이의 '같은 베개'를 같이 부르면서 갔는데, 그때 그 애는 노래를 잘했고 무척 좋아했어요. 희주랑 있으면 재밌고 편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반 친구가 제게 와서 "너 희주랑 왜 같이 다녀~" 은밀히 속삭이면서 오는 거예요. 무슨 일인지 들어보니까 그 애가 거짓말을 밥먹듯한다고 언젠가부터 싫어하는 무리가 생겼던 모양이었어요. 아버지가 재벌이라 어마어마한 부잣집 딸내미라느니, 리무진을 타고 다닌댔는데 사실 그 리무진의 행방이 묘연하다느니, 책가방이 비싼 브랜드라고 하는데 실은 그것 하나뿐이었다는 허풍 천지인 모순들이 많다고 했어요. 사실 여부도 알지 못했는데 저는 그때부터 희주가 가까이 오면 멀리 달아났어요. 같이 수련회 때 장기자랑으로 같은 베개를 부르자는 제안에도 고구마를 한 움큼 먹은 듯 대답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수련회 때 희주는 혼자 같은 베개를 불렀고, 저는 그 모습을 보며 뒷담 화하는 애들 사이에 속해 같이 비웃었어요. 그 이후에 희주와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안 나요. 그렇게 그냥 자연스레 멀어진 건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 어릴 적 개념 없이 저지른 이런 사건들이 아직도 제 마음을 불쑥 뒤집어놓곤 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스물 여섯에도 짙게 후회하고 있어요.


 밤이 깊어 술잔들이 기울어지는 모습을 따라 달도 고꾸라지고 저는 술 대신 오늘 들은 교수님에 대한 이야기들을 바닥에 흘려버리기로 했어요. 여전히 저에게는 존경스러운 교수님이고, 따뜻하시고 열정이 많으신 분이라는 사실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끼어들게 하지 않고 싶었어요. 험담의 대상이 되든 험담의 주최자가 되든 뒤에서 얘기하는 누군가의 단점은 그날 기분을 시꺼멓게 만들어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는 못했지만 10여 년 전 모희주에게 가장 큰 상처가 되기를 자처했던 바보 같은 초등학생으로 다시 회귀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저는 "전혀 기분 나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보는 교수님 얘기가 흥미로워요. 전 그래도 교수님이 좋거든요"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넌씨눈을 시전 해버렸어요. 가뜩이나 혼자 컵에 물 따라먹어서 분위기 안 맞추는 어린애가 뱉은 말에 분위기는 갑자기 싸해졌지만 적어도 그 사람들이 지금 옳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쯤은 상기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거든요. 저를 순수한 캐릭터라고 좋아해 주고 챙겨주시는 고마운 사람들이었어요. 그냥 그 사람들이 다른 곳에서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누구나 주관적인 견해가 있고, 그 견해는 사실성이 없는 채로 몸 밖으로 내뱉어질 때 힘이 생겨요. 무리 안에서 그것이 이루어질 때는 개인이 가진 것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이 있고요. 그렇게 여론이 만들어져요. 이것이 그냥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섭리라면,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무리가 아닌 개인을 바라보는 시각을 키워야 하는 것 같아요. 얼마든지 한 개인이 무리의 주장을 반론할 수 있고, 뒤집어엎을 수도 있고, 박차고 나올 수 있으며 중요한 것은 다른 개인들은 그것을 존중해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어요. 그것은 자연스럽게 터득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악으로부터 구별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만이 그렇게 되는 것이죠. 저도 물론 어떤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고립되는 것이 늘 두렵고, 사람들과 다른 의견을 주장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서툰 인간이지만 구별된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는 의지는 점점 강렬해져요. 어젯밤 사소하게나마 저를 혼란스럽게 했던 그 일로 그 의지에 확신이 생긴 것도 같아요. 넌씨눈인 제가 눈밖에 나서 그 모임에 다시 초대받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아요. 언니 오늘 우리의 일상은 늘 싸움 투성이라 꼭 써야만 해요. 삶의 모든 싸움의 흔적들 적어서 남겨놔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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