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보름달처럼 풍요로운 추석

캘리그래피 프리즘


노란 계란옷을 둘러쓰고 가지런히 놓인 전들, 올망졸망한 손으로 빚은 제각각 모양의 송편들,

채소란 채소는 모조리 집합한 듯한 나물 반찬들, 벽돌 쌓듯 빼곡히 쌓아 올려진 생선찜 

알록달록 색색이 향연을 펼치는 과일들과 반짝반짝 윤이 나는 밤과 대추. 

그리고 그 안의 사람들.


비록, 어제까지 보고서 때문에 뒷목이 당기고, 끝내지 못한 업무 때문에 머리가 복잡하고,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공부에 마음이 불안하고, 해결되지 않는 삶의 무게로 고개가 처져 있어도,

보름달 마냥 집안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불빛과 우리를 반겨주는 반가운 얼굴을 보면,

양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곰 두 마리가 사라지고, 굳었던 얼굴은 풀어지고 슬그머니 입꼬리가 올라간다.



매일 만난 듯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맛있는 음식 그릇을 우리 앞으로 옮겨주는 작은 손길에서,

무심한 듯하나 온기가 넘치는 소소함 속에서

우리는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따뜻함과 에너지를 충전한다.


돌아가면 우리를 기다리는 현실은 여전히 잠시 멈춤으로 변함이 없지만,

다시 그 자리에 선 우리는 분명 어제보다 더 큰 힘과 용기로 충전이 되어 있을 테지.


가족, 고향의 힘이란 그런 것. 

세류에 휩쓸려 흔들리던 발을 다시 단단히 고정시켜주고, 잃었던 나를 다시 찾을 수 있게 해 준다.



( 올해는 그 온기를 온전히 누리기는 힘들겠지만 모두 건강하게 한가위 보내셔요 )


캘리그래피 by 정혜연 

작가의 이전글 빨간 인연의 끈을 잡고 있는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