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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같은 주문이 필요해. 뻥이요~

괜찮아, 지구별엔 누구나 처음인걸


거짓말 하나

어젯밤 한숨도 자지 못한 선우는, 벌써 한 시간째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며 시계를 노려보고 있다. 

입안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 물 한 모금 축이고 싶었지만, 물을 가지러 갈 여유 조차 없었다.

정각 9시. 

심장 뛰는 소리가 확성기를 단것처럼 들려 한 손으로 가슴을 겨우 누르고서야 숫자 하나하나를 정성을 다해 꾹꾹 눌렀다.

클릭 몇 번으로 합격여부를 확인할 수 있지만, 오랫동안 준비한 시간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 같아 나름 생각한 아날로그 방식을 택했다. 


언제 들어도 익숙하지 않은 기계음성의 그녀가 또박또박 결과를 말해줍니다. 

' 황선우 님은 이번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 '  



거짓말 둘

미옥이 도서관 문을 나설 때 달궈진 얼굴에 차가운 것이 떨어졌다.

눈이다.

4월인데 눈이라니, 하늘이 미쳤나 보다 하고 피식 웃었지만, 뜻밖의 선물처럼 내리는 눈이 좋은 일을 가져다줄 것 같아 마음이 설렜다. 

마침 메시지 도착을 알리는 소리. 발신자는 최근 호감을 갖고 만나던 사람이다.

 

발그레진 볼과 들뜬 마음에 메시지를 연 순간 ' 미안합니다'라는 단어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미안합니다. 미옥씨. 

미옥씨에게 전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저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거짓말 셋

결혼 5년 차. 진혁이는 최근 쌍둥이 아빠가 되었다.

첫째 딸아이에 이어 둘째는 딸 쌍둥이. 이렇게 세 공주님의 아빠가 되었다. 

한 번에 두 아이를 얻어 기쁨도 두배지만 한편으로는 어깨의 무게도 두배가 되었다.

내년에는 전세 만기로 이사를 가야 하고 첫째 아이 유치원도 가야 한다며 아내의 걱정은 태산이었지만, 올해 대리가 된 진혁이는 성과급도 받고 연봉도 많이 오를 거라며 아내를 안심시켰다. 

얼마 전부터 회사 사정이 좋지 않다는 소문이 돌긴 했지만 진혁은 뜬소문일 거라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기대하던 연봉협상 날. 협상자리에 들어서기 전, 올 한 해 열심히 일한 진혁은 자신의 성과를 머릿속으로 하나하나 정리했다. 이 정도면 남들보다 좀 더 유리하게 협상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크게 심호흡을 하고 회의실로 들어섰다.  

'아... 유대리 어쩌지. 올해 정말 잘해줬는데 말이야.. 

지난번 A 프로젝트가 문제가 생겨서 회사 사정이 많이 좋지 않아. 올해 성과급도 힘들고 대리로 진급했는데,,, 연봉도 동결해야 겨우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거짓말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살다 보면 가끔 거짓말이었으면 싶은 일이 일어난다.

나의 노력과 상관없이 역행하는 현실에 애꿎은 하늘을 원망하고 싶다.

이럴 때, 누군가 '뻥이요~~ ' 하고 호탕하게 웃으며 거짓말이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저런 마법 종이가 있어서 거짓말이었으면 하는 일이 일어났을 때,

'뻥이요~~'라고 큰소리로 말하고 노란 저 종이를 흔들면 상황이 반대로 변했으면 좋겠다.

  

' 황선우 님은 이번 합격자 명단에 있습니다. 축하합니다 '

' 미옥씨 눈이 내리네요. 저에게 미옥 씨는 4월에 내리는 눈처럼 놀라운 선물 같은 존재입니다. ' 

' 유대리 올해 성과급 많이 나오겠네. 아주 잘해줬어. 대리 진급했으니 연봉도 대리급으로 오르고,, 한턱내야겠는걸 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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