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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한 빈수레가 지나간다, 우리처럼

괜찮아, 지구별엔 누구나 처음인걸


살짝 열린 창문 사이로 요란한 소리가 들려온다


덜컹덜컹 덜컹덜컹..  

제법 방음이 괜찮다고 생각한 창문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함을 째려보며 열린 문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빈수레가 지나간다. 


저렇게 생긴 수레도 오랜만에 보네라는 생각도 잠시, 골목의 정적을 깨는 소리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골목길 이건만, 수레가 내는 소리는 흡사 자갈밭을 지나는 듯 경망스럽다.


널빤지 몇 개와 얇은 고무 타이어 바퀴로 만들어진 수레는, 골목 노면에 박힌 작은 돌멩이 하나하나를 몽땅 느끼려는 듯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지나갔다.

조금 튀어나온 돌 하나만 잘못 걸리면, 만화영화처럼 순식간에 분해되어 땅 위로 나뒹굴 것 같았다. 


뭐라도 담아 무게를 주면 좋으련만, 텅 빈 수레는 우둘투둘한 땅을 리듬 삼아 어깨춤을 추는 듯 요란하게 지나갔다.


골목길이 아닌 매끈한 대리석 바닥이라면 그나마 덜할까 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그러나 어떤 바닥이든 텅 빈 소리를 감추기는 어려울 것이다.



수레를 보다가 문득 우리 모습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삶이라는 수레바퀴를 돌다 보면 처음 가득 차 있던 에너지와 열정은 점점 소진되고, 정해진 패턴에 익숙하다 보면 머리와 가슴은 비어간 채 가고 싶지 않은 길을 걸을 테니까.


그러다 문득 뜻하지 않는 곳에서 구멍이 숭숭 뚫린 채 방향을 잃은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담으려 주먹을 움켜줘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 알갱이처럼, 어느 틈에 내 안에 있던 소중한 것들이 빠져나가 있는 것을 알아차릴지도 모른다.  


알아차릴 수 있다면, 그래도 다행이다

누군가는 삶의 끝이 목전에 닥치는 순간에도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니까.


그래서, 다행이다. 

내 수레를 가늠하고, 하나씩 채우려는 내 노력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렇게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모으다 보면, 덜컹거리는 소리도 조금씩 잦아들고 어떤 노면을 만나도 텅 빈 요란함을 떨지는 않고 묵묵히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캘리그래피 by 정혜연

Copyright 2020. 정혜연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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