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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게 띄우는 편지.

캘리그래피 프리즘



며칠 전까지만 해도 손톱 같은 초승달이었는데, 하루가 다르게 두둥실 달이 차오르는 듯하더니 며칠 전에는 누가 봐도 완벽한 보름달이 되었다.

아. 유난히 밝은 보름달이구나 하고 혼자서 유난을 떨었다. 




둥근 보름달이 뜨면 옛사람들은 장독대에 정화수 한 그릇 떠 놓고 소원을 빌었다지.

나도 보름달을 만나면 늘 두 손을 마주 잡고 달을 벗 삼아 주저리주저리 떠든다.

 

그 조상의 핏줄이 어디 가겠나.



어느 날은 희망사항을 노랫가락처럼 늘어놓기도 하고, 간절한 소망이 있는 날이면 제발 이것만은 꼭 들어주십사 하고 주문 외우듯 읊조리고, 어떤 날은 가족들의 건강을 하나씩 챙기며 누구 하나 빠진 사람 없는지 머릿속 속으로 세어보기도 한다.


환한 달을 만나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바람은 떠들다 보면 요 며칠의 반성이 되기도 하고, 노력만큼 되지 않는다고 투정을 하다가, 다시 힘내 보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지다가 달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멍 때리기를 할 때도 있다.


이렇게 앞뒤도 없고, 제멋대로인 바람이지만, 한바탕 떠들고 나면 마음이 개운한 것이 고민상담을 받은 듯 마음이 가벼워진다. 

정확히 표현하면, 혼자 떠 뜰고 혼자 해결책을 제시하고 혼자 위로하고 혼자 다짐하니, 달을 빙자한 셀프 상담인 셈이다. 





그날도 자기 전에 블라인드를 닫으려다, 둥근달을 보고 습관처럼 두 손을 마주 잡았다.

평소 같으면 1절 2절에 걸쳐 세밀하고 디테일하게 바라는 것을 콕 집어서 떠들었을 테지만, 웬일인지 레퍼토리처럼 주절거리던 것들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티 없이 맑아 보이는 달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확진, 격리, 공포, 비난, 심판. 

낯선 단어들이 가득한 이 땅과 상관없이 하늘 위에 초연히 떠 있어서 좋았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한낮의 아우성을 달래듯 조용히 보듬어주는 듯했다. 

온화한 달빛에 무심한 것들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이번 일이 잘 성사될 수 있게 해 달라고, 어디 아프지 않게 해 달라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 달라고.

그동안 빌었던 수많은 바람은 모두 작은 먼지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한참 동안 마주한 달에게,

그저,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빌었다. 





캘리그래피 by 정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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