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② 과거] 그럴 거면 때려치우란 말이 위로되었고요

기획자, 마케터, 작사가 차이: 커리어가 꼭 하나의 직업이어야 할까?

by 코코넛 노무사




*솔직한 인터뷰와 아직 첫 회사를 다니고 있는 친구들을 위해 회사와 인물명은 닉네임으로 대체합니다*








코코넛: 지금부터는 과거에 대해 얘기해 볼게요.

지금까지 걸어온 차이님의 커리어 패스를 한번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차이: 저는 첫 회사에 체험형 인턴으로 입사해서 삼 년이 조금 안 되게 다니고 조금 더 큰 규모의 케이팝 아티스트 IP 회사로 이직했고요. 거기서 한국어 교재 기획을 삼 년 정도 하고 회사의 조직 개편과 함께 마케팅으로 부서를 옮겨서 최근에는 제품 마케팅과 교재 기획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코코넛: 같이 다녔던 첫 회사에서는 어떤 팀에서 어떤 일을 했었는지도 말씀해주세요.

차이: 첫 회사에서는 사업팀 인턴으로 입사해서, 우연한 기회에 교육 콘텐츠 기획팀이랑 같이 업무를 할 기회가 생겼어요. 기획팀 업무를 병행하다가 그 팀으로 정규직 전환을 했습니다.



코코넛: 조금 더 옛날로 갈게요. 외고 시절부터 대학 전공까지. 외국어 전공을 꽤 오래 했는데 고등학생과 대학생 때 장래 희망은 무엇이었고 취업 준비는 어떻게 했었나요?

차이: 장래 희망은 늘 작가였는데요. 고등학생보다 어릴 때는 그림책 작가 동화 작가였고 고등학교 때는 좀 더 현실적으로 라디오 작가 예능 작가 이런 걸 적었던 것 같고요. 대학교 때는 사실 미술관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사 학년까지 펑펑 놀다가 미술관 인턴을 나가려고 했는데 안 뽑혀서 급하게 취업 프로그램 같은 걸 듣고 인사팀 마케팅 영업 같은 일반적인 문과 직무로 여기저기 지원했어요. 진짜 원하는 게 아니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면접까지 간 곳이 한 군데도 없었고요. 우연히 첫 회사에 대해 알게 돼서 여기는 내가 진짜 하고 싶어 하는 그림책이나 동화 같은 것과 결이 맞는 것 같아 지원해서 합격하고 인턴으로 입사했죠.



코코넛: 교직 이수도 하셨죠. 이건 보험용이었나요? 예전에 이직 준비를 할 때 교육대학원도 준비했던 게 기억이 나서요.

차이: 교직은, 그렇죠. 그때는 보험용이었던 것 같아요. 잘 맞는 직업이겠다고 생각했는데 주변에 진심으로 선생님이 되기를 원하는 친구를 보면서 선생님은 저런 사람이 해야지 내가 하면 안 되겠다고 하고 직업으로서는 꿈을 접었던 것 같아요.



코코넛: 콘텐츠 회사지만 IT회사에 가까웠던 첫 회사에 작가를 꿈꾸고 들어오는 건 흔치가 않은 사례고, 차이님은 특히나 영상도 좋아하지 않는데 영상 사업팀으로 입사하셨잖아요. 첫 회사를 선택했던 진짜 이유가 궁금해요.

차이: 그냥 아이들이 볼 수 콘텐츠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았던 것 같아요. 그림책이랑 영상이랑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고, 순수한 마음에 감동을 주는 무언가가 있는 회사라고 생각했어요. 마침 지원 공고가 나기도 했었고요. 사실 사업팀이 뭐 하는 데인지는 잘 몰랐고요. 운이 좋게 합격했죠.



코코넛: 그게 추가 질문이었는데 반대로 회사가 본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다고 생각해요?

차이: 저는 나중에 팀장님한테 왜 날 뽑았냐 여쭤봤어요. 근데 그냥 묻는 말에 횡설수설 안 하고 대답을 잘해서 뽑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잘 모르는 건 얼버무리지 않고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바로 대답해서 그냥 그런 게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요. 그분이 원체 직설적인 분이시다 보니 그러지 않았을까요?



코코넛: 참고로 차이님은 종이컵님과 팀장이 같았습니다.

차이: 팀장님 얘기 많이 나왔나요?



코코넛: 아뇨. 종이컵님은 팀장님을 보면서 이런 사람이 리더 역할을 하는 구나라고 그때 생각을 하고 본인은 그게 절대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하더라고요. 의사결정을 하는 방법이 자기랑은 너무 달랐다고⋯⋯. 그때 전환형이 아니라 체험형 인턴으로 입사해서 원래대로였다면 몇 개월 후에 계약이 종료되는 거였잖아요. 다른 팀으로 정규직 전환이 됐었는데, 혹시 이것 때문에 커리어 패스를 다시 설정해야 했나요? 보통 첫 회사에서 경험을 쌓고 대기업으로 넘어간다든가 이런 걸 많이들 염두에 뒀었는데.

차이: 저는 너무 만족하면서 다녔기 때문에 이직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그때도 체험형 인턴이 끝나면 어떡하냐는 고민은 했는데 마침 기획팀에 기회가 보여서 그쪽으로 어필을 많이 했어요. 그때 기획팀 업무를 병행하게 된 게 타이밍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또 기획팀 분들과 결이 잘 맞아서 그분들한테 여기 자리 없냐고 만날 때마다 물어본 덕에 그쪽 팀으로 갈 수 있었죠. 오히려 사업팀이 제가 생각한 커리어 패스랑은 거리가 있었던 것 같고 기획팀이 좀 더 저한테 잘 맞아서 그쪽을 찾아갔던 것 같아요.



코코넛: 없는 자리도 만들어낸 노하우는 무엇인가요?

차이: 일단 직무가 굉장히 저랑 잘 맞는다는 걸 많이 어필했어요. 협업도 어쩌면 그냥 지나갈 작은 기회였는데 그때 되게 열심히 적극적으로 해서 전환 기회가 됐다고 생각해요. 그때 기획팀에서 어떤 문서를 우리 팀 인턴들한테 보여주고 피드백을 달라고 했었는데 저랑 다른 인턴분이랑 두 명이 같이 작업을 했었어요. 근데 이걸 의도적으로 한 건 아니었지만 기존에 달린 피드백들이 있어서 제가 그것들의 말투나 뉘앙스를 일단 훑어봤어요. 그거에 맞는 기준이랑 비슷한 말투로 내용을 적었던 걸 기획팀에서는 좋게 보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랑 좀 더 하고 싶다고 말해 주셔서 같이 협업할 수 있게 된 거라서요. ‘그런 작은 일도 열심히 하자.’ 그런 것 같아요. 꼰대 같네요.



코코넛: 아닙니다. 아직 우리 입사 초반에 채용 홍보 콘텐츠 찍을 때 말했던 세 가지 목표 기억해요?

차이: 저 기억이 안 나요.







코코넛: 하나가 그림책 만들기. 다른 하나가 이모티콘 만들기. 그리고 하나가 더 있었어요. (라디오 작가 되기)

차이: 마지막 하나가 뭐였죠? 보고 와야 했는데 기억이 안 난다고 하고 그냥 와버렸어요.



코코넛: 기억 안 난다고 써도 돼요?

차이: 네.



코코넛: 어쨌든 결론은 차이님은 입사 일 년 만에 세 가지 목표를 다 이뤘었어요. 그때 기분이 어땠었나요?

차이: 하나하나 너무 좋았던 건 기억나요. 이모티콘 만들기가 있었구나. 일단은 아마 그중에 제일 큰 게 그림책이었을 것 같은데. 제 이름으로만 낸 건 아니지만 초판 특전으로 제 이름이 들어간 책이 나왔고 너무 뿌듯하고 정말 기분이 좋았죠. 그때는 약간 감동이었죠.



코코넛: 아까 제일 인상 깊었던 프로젝트도 그림책이라고 하고 지금도 되게 좋았다고 했잖아요. 이후에도 그만큼 좋았던 일이 있어요? 회사 다니면서 지금까지. 연봉 협상 이런 거 말고요.

차이: 연봉 협상 빼고라⋯⋯, 휴직? 그때만큼 뿌듯하고 그때만큼 좋았던 일은 없는 것 같아요.



코코넛: 제 기억 속 차이님은 첫 회사를 굉장히 모범적으로 다녔었어요. 없는 자리도 만들어내고, 평가도 좋았고, 보상도 비교적 잘 받았고요. 여기에 자아실현까지 했으니까 첫 회사의 기억이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왜 이직했나요?

차이: 빌드업이 너무 현란한데요? 첫 회사 너무 좋았죠. 저도 만족하면서 다녔고요. 이직하게 된 계기는 좀 뭐랄까, 그때는 심심했어요. 자아실현을 너무 하면서 다녀서 그런지 이제 내가 발전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오니까 더 정체되는 것 같았고요. 이런 게 원래 회사 생활일 수도 있지만 그걸 잘 받아들이지 못해서 회사 밖에서라도 발전해 보자고 대학원도 좀 찾아봤어요. 지금 회사는 추천받고 새로운 도전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이력서를 냈죠.



코코넛: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직을 준비하는 본인한테 무슨 말을 해주고 싶나요?

차이: 그냥 흘러가다 보면 될 거다. 이게 맞는지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은데 지나고 보니까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 원하는 걸 따라가는 게 맞다. 그냥 걱정할 거 없다. 그렇게 말해 주면 좋겠네요.



코코넛: 첫 회사 다니던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하나만 공개해 주세요.

차이: 업무 외의 것도 상관없죠? 대게 비빔밥 해 먹었던 거요. 그게 왜 이렇게 재밌었지? 그때 킹크랩 철이라고 친했던 열 명이 퇴근하고 다 같이 가락시장에 가서 킹크랩을 신나게 먹었어요. 그러고 많이 시켜서 게살이 남은 거죠. 남은 게살을 포장해 가면서 우리 내일 이걸로 점심에 회사 라운지에서 비빔밥 해 먹자라는 의견이 나왔어요., 제가 양푼을 챙겨가고 다들 밥과 반찬들 챙겨오고⋯⋯, 아직도 기억나는 게 꾹꾹이가 마요네즈를 챙겨 왔는데 마요네즈가 들어간 게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합니다. 고추장과 마요네즈. 게살 비빔밥에는 마요네즈를 넣으세요.



코코넛: 이직한 뒤에 실제로 가장 만족했던 점과 적응하기 힘들었던 점이 뭘까요?

차이: 만족했던 점은 그런 거 같아요. 내가 만든 제품에 바로바로 반응이 오는 걸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거요. 전 회사 같은 경우는 주 소비자층이 비교적 작으니까, 리뷰가 달릴 일이 많이 없었어요. 여기는 팬들이 이게 어떻게 좋다 어떻게 공부한다. 어떤 점이 저번보다 좋아졌다가 바로바로 반응이 오니까 그런 걸 보는 게 되게 뿌듯하고 좋았어요. 팀이 주력 사업을 맡은 수익 부서라는 점도 좋았어요. 거기에 대해서 기대도 있고 압박도 있지만 어쨌든 그만큼의 지원이 따르고 그만큼의 보상이 따르는 게 만족스러운 점 중의 하나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힘들었던 점은 첫 회사에 비해 업무 강도가 많이 높아져서 초반에 적응하기가 좀 힘들었죠.



코코넛: 이 부분은 어떻게 극복했어요?

차이: 그냥 했죠 뭐. 그냥 주말에 출근하고 평일에 늦게 가고, 전공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공부도 계속해야 했고요. 근데 그런 거는 애초에 면접 때부터 각오하고 있다고 말하고 이직한 거였어요. 초반에 한 반년 정도? 바쁘게 힘들게 하고 나니까 그 뒤로는 좀 편해졌던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알게 되고 보이게 되고 좀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되고.



코코넛: 사회초년생 시절 첫 회사에서부터 지금까지 가장 본인에게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는 피드백이 무엇인가요?

차이: 지금 회사에서 마케팅으로 직무를 옮기고 좀 지나서 팀장님한테 왜 저한테 제안했냐고 물었어요. 그때 팀장님이 하셨던 말씀이 있는데, 제가 업무를 체계화하고 구조화하고 정리하는 걸 잘해서 우리가 마케팅을 이제 시작하는 단계다 보니 그런 걸 기대하고 제안을 했다고 말씀해 주셨거든요.

제가 남들보다 매뉴얼과 가이드라인을 짜는 걸 좋아하고 잘 한다는 건 어렴풋이 느꼈는데 그때 처음으로 이게 저는 몰랐던 저의 강점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었어요. 처음 이직 준비할 때는 스스로의 강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역량이었는데, 혼자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면서 ‘이런 부분이 나한테 있었네, 도움이 되네.’라고 한 번 깨달았어요. 그리고 이번에 마케팅으로 옮기면서 그 경험이 다시 한번 이게 제 강점이 맞다고 확신하게 되었어요.



코코넛: 저는 이미 답을 알고 물어보는 거지만, 일하면서 권태기가 온 적이 있었나요? 어떻게 극복했고, 이후에는 무엇이 달라졌나요?

차이: 권태기가 작년에 햇수로 육 년 차 됐을 때 아주 세게 왔어요. 번아웃이라고 하죠. 사실 전 제가 번아웃인 줄 몰랐어요. 남들이 번아웃 아니냐고 해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알게 모르게 되게 예민해졌었고, 특히나 업무적으로 누가 한마디만 해도 늘 날카롭게 대했거든요. 그런 시기가 있어요. 회사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받아서 혼자 눈물이 안 멈춰서 밤에 엉엉 운 적도 있었고, 그때 때려치워도 되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사실 달래주던 엄마가 그럴 거면 때려치우라고 한 말이 좀 위로가 되었고요. 그 결심을 하니까 못 할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 전 같으면 회사에 휴직 같은 복지가 있어도 쓸 생각을 못했는데 그때를 계기로 마음을 정리하면서 쉬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무급휴직 제도로 삼 개월간 쉬고 복직을 한 지가 한 또 삼 개월 좀 안 됐어요.

쉼으로 많이 없어졌어요. 쉴 때 좋았던 점이 크게 두 가지예요. 첫 번째가 업무를 해야 하는 시간에 업무를 하지 않았던 것, 두 번째가 업무를 안 하는 시간에는 내일의 업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어요. 저는 후자가 되게 크게 와닿았는데 그때 한 일 년 정도가 제가 마케팅 업무에 적응하는 기간이었거든요. 그래서 새 업무랑 새 상사에 적응 못 하고 계속 삐그덕대다가 쉬면서 보니 내가 일할 때뿐만이 아니라 일하지 않을 때도 계속 스스로 스트레스받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거죠. 그래서 돌아가면 일하지 않는 시간만이라도 제대로 쉬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러고 나니 마음에도 여유가 생기고 전보다 훨씬 부드럽게 사람들을 대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일을 할 때도 그렇고 그러지 않을 때도 좀 긍정적인 면이 많이 다시 생긴 것 같고요.



코코넛: 처음 이직하면서 제일 기대한 게 도전이랑 자아실현이었잖아요. 지금도 일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게 그 두 가지 인가요?

차이: 둘 다 버린 것 같네요.



코코넛: 지금은 무엇을 추구하나요?

차이: 워라밸. 지금은 일은 일로서 잘하고 삶은 삶대로 꾸려 나가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코코넛: 그 이야기는 뒤에서 조금 더 얘기를 해볼게요. 지난 칠 년을 돌이켜 봤을 때 놓쳐서 아쉬운 기회나 후회하는 선택이 있나요?

차이: 아니요. 없어요. 커리어적으로는 진짜 전혀요. 항상 최선이었다고 생각하고, 그때 놓친 기회들은 뭐 지금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그때 놓친 기회를 잡았다고 한들 지금만큼 만족할지는 모르겠네요.



코코넛: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1만 시간 전 사회 초년생 당신에게 돌아가서 여태까지 있었던 많은 일들 중 한 가지만을 스포를 해 준다면?

차이: 이것도 좀 고민했는데, 사실 요 답이 아까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둬라.”라는 말일 것 같아요.

뭔가 있었던 일을 한 가지를 말해주기엔 그때 제가 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고 흘러가는 대로 둬라. 그러면 또다시 여기 와 있지 않을까?



코코넛: 스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로 할까요?

차이: 네. 걔랑 헤어져라. 이런 거 되나요?



코코넛: 하세요. 그리고 동의하는 바예요. 걔랑 헤어져라가 아니라 ‘헤어졌다’가 아닐까요? 스포니까.

차이: 그러네요. 너 걔랑 헤어졌다.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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