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 마케터, 작사가 차이: 커리어가 꼭 하나의 직업이어야 할까?
<다들 잘 살고 있다는 말의 뜻>
세 번째 인터뷰
기획자, 마케터 그리고 작사가 차이
커리어가 꼭 하나의 직업이어야 할까?
N잡러 / 번아웃 / 자아실현
작사가가 되고 싶다고 밝힌 차이는
인터뷰 두 달 뒤 작사가로 데뷔했다.
첫 회사에 들어갈 때 세운 세 가지 목표도
단 일 년 만에 모두 이루어냈다.
겉으로 보면 완벽한 성장 서사다.
그러나 차이의 1만 시간은 균형을 잃고
다시 세우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단정한 성공 너머 진짜 차이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솔직한 인터뷰와 아직 첫 회사를 다니고 있는 친구들을 위해 회사와 인물명은 닉네임으로 대체합니다*
코코넛: 차이님 모셨습니다.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차이: 안녕하세요. 저는 IT회사 계열사에서 교재 기획자 겸 제품 마케터로 일하고 있는 차이입니다.
코코넛: 자기소개를 조금 바꿔 볼게요. 졸업한 학교, 지금 다니는 회사, 정확하게 하고 있는 일을 빼고 차이님을 소개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차이: 저는 채식을 하고, 운동을 좋아하며 사랑이 많은 차이입니다.
코코넛: 사랑이 많아요. 본인이 하는 일을 소개하면 가장 많이 받는 오해가 뭐예요?
차이: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회사에서 교재를 기획하고 마케팅을 하다 보니 한 번에 소개가 안 돼요. IT회사 계열사라고 하면 서비스 마케팅을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책을 만든다고 말하면 출판사냐고 묻는 경우가 많거든요. 제 직업 자체가 한 번에 소개하기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코코넛: IT 회사에서 책을 만든다는 게 흔히 볼 수 있는 조합은 아닌데요. 여기서 비롯되는 회사만의 특별한 일하는 방식이나 조직 문화가 있나요?
차이: 직접 다녀본 건 아니지만 출판사 쪽은 굉장히 문화가 보수적이라고 들었어요. 그런데 지금 회사는 조직 문화가 굉장히 수평적이고, 요즘에는 흔하지만 서로 님으로 지칭하는 문화가 있어요. 일반적으로 재택근무를 하고, 제가 무슨 의견을 내더라도 팀장님이 중요하게 고려할 정도로 서로 토론하면서 발전해 나가는 방식으로 일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출판하는 팀치고는 매우 자유롭고 개방적인 편이 아닌가 합니다.
IT회사로서 우리 팀이 특별한 건 일단 제품을 만든다는 점이 좀 다르게 보일 것 같고요. 어떻게 보면 출판업이고 우리가 팀 내에서 기획부터 공장 컨택과 제작까지 모든 것을 담당하고 있어서 이 과정을 다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특별해요. 또 이거는 그냥 출판사라고 했을 때는 설명이 안 되는 점인데 저희가 케이팝 아이돌 IP를 사용해서 책을 제작해요. 좀 흔치 않은 구조라 이것 자체도 IT 회사에서 보기에는 좀 특이한 일이 아닐지 생각합니다.
코코넛: 처음부터 책 만드는 사람은 아니었죠. 지금 일을 시작하면서 생긴 쪼나 습관이 있나요?
차이: 첫 직장에서보다 조금 더 무거운 제품을 기획하게 되어서요. 이전에는 조금 더 가벼운 콘텐츠나 제품류를 만들었다면 지금은 교재를 기획하는 일을 하다 보니 어디에서나 교정을 보는 습관이 생겼어요. 전에 새로 생긴 테마파크에 놀러 갔을 때 거기에 초가집부터 양옥, 현대식 건축물 이렇게 세 가지의 집이 있고 각각 설명이 적혀 있었거든요. 근데 어미가 다 다른 거죠. 초가집 같은 경우에는 ‘오래전에 살던 초가집이다.’라고 적혀 있는데 양옥에는 ‘이층의 목조 건물입니다.’라고 쓰여 있어서 이런 것에도 ‘어라?’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게 저의 쪼인 것 같습니다.
코코넛: 저는 지금 이 얘기만 들어도 되게 스트레스받는데. 차이님은 일하면서 어떨 때 가장 스트레스를 받아요?
차이: 최근 들어서는 제가 생각한 의견과 다른 분들이 생각한 의견이 다르고, 특히 저 혼자만 의견이 다를 때 그때 좀 스트레스받는 것 같아요.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저 사람들은 왜 이렇게 생각하지 않지?’ 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가 있어요. 또 재택으로 일하다 보니 다른 입장이 단박에 이해가 안 되어서 스트레스받았던 것 같아요. 요새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회사가 원하는 대로 하려고 합니다.
휴직하러 가기 전엔 이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되게 많이 받다가 다녀와서는 그냥 ‘돈 버는 곳인데, 내 것도 아닌데’하는 생각으로 다니고 있기 때문에 괜찮아요.
코코넛: 균형을 위해 긍정적인 이야기도 해 볼게요. 지금까지 일하면서 쌓은 포트폴리오 중에서 가장 애착 가는 프로젝트가 무엇인가요?
차이: 오래된 이야기인데 첫 회사에서 만들었던 그림책이 가장 애착이 가요. 제가 책을 좋아해서 조금 더 출판사에 가까운 회사로 이직했지만, 사실은 어떤 교재나 성인용 책보다도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때 제일 재미있게 작업을 했어요. 그때는 특히나 스토리부터 디자인 기획까지 다 제가 담당하고, 열정을 쏟아부어서 더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코코넛: 몇 년 차 때 했던 일이었죠?
차이: 햇수로 이 년 차 때였던 것 같아요. 정규직 되고 나서요.
코코넛: 이번에는 조금 더 개인적인 질문을 할게요. 자타공인 취미 부자시죠. 최근 사내 동아리도 새로 시작한 걸로 아는데, 애착 가는 취미 몇 가지만 소개해 주세요.
차이: 가장 오래 하고 있는 운동이 아무래도 가장 애착이 가요. 제가 주짓수를 칠 년째 하고 있고, 그리고 요가도 벌써 오 년이 됐더라고요. 저는 제가 무언가를 이렇게 꾸준히 하는 사람인지도 몰랐는데 이런 것들이 생기면서 저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주짓수 정말 재밌어요. 그리고 운동 외에는 요새 작사를 배우고 있는데 이것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집중할 수 있어서 틈틈이 열심히 하는 중입니다.
코코넛: 완두님이 차이님께 이 질문을 해달라고 했는데 작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뭔가요? 품이 많이 가는 취미인 것 같아서요.
차이: 그렇죠. 돈도 들고 시간도 드는 부업이에요. 사실 작사에는 꽤 오래전부터 관심이 있었어요. 고등학교 때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를 친구들 앞에서 부르기도 했는데, 이걸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지 전혀 몰랐어요. 굳이 길을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언젠가 데뷔할 수 있을까?’ 막연한 마음만 갖고 있었죠. 그러다 아는 분이 학원을 소개해 주셔서 작사가라는 직업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됐습니다. 작사가라는 일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직업인 줄은 몰랐어요.
코코넛: IT 회사가 사내 문화와 복지로도 잘 알려졌지만, 동시에 높은 업무 강도로도 유명하잖아요. 재택근무를 하다 보면 일과 삶의 경계가 흐려지기도 하고요. 지금 다니는 회사가 바쁜 편이고, 말씀하신 취미도 체력 소모가 큰 편인데. 혹시 본인만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차이: 일이 너무 힘들고 집중이 안 되면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일한다거나 분위기를 바꿔서 스스로 기분 전환을 해보려고 해요. 가끔은 팀원들에게 미리 공유하고 제주도 같은 곳에서 며칠간 원격근무를 하며 활기를 찾기도 합니다. 운동 같은 경우는 많이 다치죠. 특히 제가 유리 몸뚱어리라 자잘하게 많이 다치는 편인데 안 다치는 법은 아직 잘 모르겠고 터득하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아요. 예전처럼 ‘이 정도는 괜찮겠지.’하고 무리하는 대신 이제는 조금만 다쳐도 일주일 정도는 충분히 쉬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고 있어요.
코코넛: 업무가 바쁠 때 억지로 운동하다 보면 다칠 위험이 커지고, 반대로 운동에만 몰두하면 일에 소홀해질 수도 있죠. 이 부분은 어떻게 조율하나요?
차이: 오히려 둘을 같이 해서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것 같아요. 일에서 너무 스트레스받으면 운동을 해서 생각을 비우고 집중할 시간을 가져요. 반대로 운동을 하다가 몸이 힘들어지면 내일 일하는 데 지장이 있을 걸 아니까 운동을 좀 적당히 하거나 쉬어요.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운동으로 해소하고 육체적인 스트레스는 일할 걸 생각하면서 또 조심하는 식으로 균형을 맞춰가고 있어요.
코코넛: 작가나 출판업계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고 싶어도 경제적인 이유로 선뜻 발을 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차이님은 원하는 일을 하면서도 경제적 안정까지 놓치지 않았잖아요. 비슷한 고민을 가진 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으신가요?
차이: 그렇죠. 어쨌든 대기업 계열사이다 보니 다른 출판사보다는 연봉을 많이 받는 편이 아닐까 싶어요. 하지만 저는 꼭 출판업계뿐만 아니라 어떤 업계든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그림책을 하고 싶어서 첫 회사에 들어가 그림책을 만들었고, 이후에는 책 자체를 좋아하게 돼서 지금 회사로 오게 됐습니다. 운 좋게 합격해서 잘 다니고 있는데, 만약 경제적인 조건만 보고 선택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 같아요. 결국 제가 원하는 바를 따르다 보니 만족할 만한 자리에 오게 된 것 같습니다.
코코넛: 사회에서 1만 시간을 보낸 시점에서 지금 일과 삶에서 어느 단계에 있다고 생각하나요?
차이: 좀 이르지만 안정기라고 생각합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내가 내년에 어디서 뭘 하고 있겠느냐고 생각하면 정말 막연했거든요. 이 회사가 계속 있을지, 내가 이 회사에 계속 다닐지,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모든 게 다 불확실해서 ‘그냥 현재만 살자.’는 마인드였어요. 요새는 그냥 이대로 한 일 년은 더 있을 것 같아요.
코코넛: 독자 여러분, 참고로 지금은 9월입니다.
차이: 내년 얼마 안 남긴 했죠. 그래도 전보다 미래가 비교적 그려지고 커리어적인 측면에서는 내년에 뭐 할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회사나 환경이 바뀌어도 내년에 나는 또 나의 일을 하고 있겠거니 싶어서 마음이 덜 불안한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안정기지만 앞으로 또 어떤 격동의 시기가 있을지도 모르죠.
코코넛: 지금 삶에 어느 정도로 만족하세요?
차이: 0부터 10까지라고 하면 저는 지금 9 정도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코코넛: 언제부터 그렇게 느꼈나요? 휴직 이후로?
차이: 그런 것 같아요. 휴직 이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