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두② 과거] 눈 떠보니 이번 생에는 마케터가 되었다

시민단체 마케터 완두: 커리어 전환은 언제 도망이 아닌 선택이 될까?

by 코코넛 노무사

*솔직한 인터뷰와 아직 첫 회사를 다니고 있는 친구들을 위해 회사와 인물명은 닉네임으로 대체합니다*







코코넛: 이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볼게요. 지금까지 걸어온 커리어패스를 한 번 정리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완두: 커리어패스. 진짜 혼돈의 커리어패스네요.

마케팅 직무는 특히나 “난 마케터가 되겠어!” 이런 사람들이 많잖아요. 대학생 때부터 광고동아리하고. 근데 저는 그런 케이스는 아니고, 오히려 ‘눈 떠보니 이번 생에는 마케터가 됐다.’ 이런 느낌이 없지 않아 있어요. 되고 나니 성향상 맞는 부분도 있지만요. 결과적으로는 그래요.

같이 다닌 첫 회사에서 짧게 인턴을 했었고, 그다음에는 다른 콘텐츠 제작사의 제작팀에서 동요도 만들고 이런 제작 일을 반년 정도 했어요. 첫 회사로 다시 돌아갈 기회가 생겼을 때는 직무에도 어느 정도 선택권이 있었어요. 그래서 팝업 기획이나 이벤트 운영처럼 마케팅 영역이지만 정확히 마케터가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없는, 당시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일들을 했어요. 그다음에는 팀이 바뀌어서 라이브 방송과 디지털 마케팅 일을 했고, 관련 일을 조금 더 배우고 싶어서 대기업 마케팅팀으로 이직했어요. 아예 마케팅팀으로 이직한 거라 원하는 걸 어느 정도 배울 수 있었어요. 회사에 어쨌든 마케터로서 오래 일한 분들이 많았으니까요. 이때는 구독 서비스 마케팅을 하다 지금 다니는 회사 후원팀으로 이직했어요.






코코넛: 첫 회사에서 팀이 한 번 엎어졌잖아요. 리더가 퇴사한 적도 있었고, 팀과 직무 이동이 많았어요. 이를 대처하는 본인만의 생존 방식이 있었나요?

완두: 그때 진짜 슬펐어요. 왜냐하면 제가 그 팀장님을 정말 좋아했었거든요. 사실 저는 팀장 운은 좋은 편이었어요. 그래서 다들 개인 사정으로 퇴사하는 걸 알았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왜 내가 가는 팀마다 왜 팀장님이 퇴사하는 거지? 혹시 내가 팀장님을 퇴사하게 만드는 원인인가?”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어쨌든 팀장 운이 좋아서 모두 저한테 기회를 많이 주려고 하셨어요. 그때 팀장님들이 지금 저랑 비슷한 나이였는데 그렇게 한 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뭘 해보고 싶은지도 항상 물어보고, 제가 아주 조그마한 일도 잘 해내면, “완두님은 이런 걸 잘하는 편이니, 이쪽으로 더 해보라.”라고 지원해 주셨어요. 그러면 전 자신감에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사실 첫 회사에서는 제 스스로 팀을 이동한 적은 없었고, 타의로 팀이 계속 바뀌었어요. 팀장님이 퇴사하면서 팀 전체가 붕 뜨고, 새 리더도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그런 분위기인 적도 있었고요. 그때 라이브 방송이 막 뜨고 있었는데 관련 인력도 없어서 그냥 제가 맡겠다고 하니 바로 라이브 방송 업무에 배치됐었어요. 그전까지는 내내 수동적으로만 일하다가 처음으로 무언가를 해보겠다고 말했던 건데 바로 들어주신 거예요. 그다음부터는 해보고 싶은 게 생기면 먼저 그냥 말하게 됐어요. 이 정도가 제 생존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계속 팀이 개편되니까 여기서 퇴사하면 이룬 것 없이 고생만 하다 나간다는 생각에 아쉬웠어요. 억울해서 버티다 마지막 팀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세팅이 되었을 때 이직을 결정했어요. 힘들 때는 그냥 이걸 빨리 타개하겠다는 생각만 하다 오히려 등 따습고 배부르게 되니 다음 스텝을 생각하게 된 것 같기도 해요. 마지막 팀이 가장 별로거나 이런 게 절대 아니었고 제가 더 배우고 싶은 게 생겨서 결정한 거였지만, 아직도 마지막 팀에 조금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코코넛: 지금까지 많은 프로젝트를 해봤을 텐데요. 이력서에 경력이나 프로젝트 한 가지만을 적는다면 어떤 걸 선택할 거예요?

완두: 이 질문 보고 생각을 좀 해봤는데, 이전 회사에서 라이브 방송도 런칭했었고, 구독자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면서 오프라인 모임도 진행해 봤거든요. 구독자들 만족도가 굉장히 좋아서 처음에는 이런 경력을 넣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전 콘텐츠 업계에서 했던 프로젝트보다는 지금 회사에서 하는 프로젝트를 넣을 것 같아요. 당장은 이직 생각이 없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계속 환경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서요.



코코넛: 이 질문은 지난번 종이컵님이 안 물어봐서 아쉬웠다길래 넣었어요. 대학 때 가장 좋아했던 활동이 뭔가요? 그리고 그게 커리어와 어떻게 연결이 되었나요?

완두: 저는 싱가포르 교환학생 시절이 인생의 고점이었어요. 원래도 교육 분야에 관심이 있었지만, 그때 포토 저널리즘 수업 과제로 학교 밖 청소년을 취재했거든요. 그때 싱가포르에서 유명한 홈스쿨링 그룹의 사진 작업을 했어요. 그때는 제가 일을 잘해서 작업이 잘된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오히려 그분들이 저를 여행까지 함께 데려가면서 굉장히 나이스하게 저를 많이 도와줬어요. 그때 일반적인 교과목이 아닌 아이들이 각자 잘하거나 흥미 있는 활동에 집중하는 것을 보면서 제도권 바깥의 교육에 대해 경험했고, 재미도 느꼈던 것 같아요. 이 과제뿐만 아니라 당시 수업 자체가 굉장히 재밌었어요. 교환학생으로 파견되면 겉핥기식으로만 수업을 들을 수도 있는데 저는 그 수업을 들으면서 행사 취재도 나가고, 길거리 인터뷰도 많이 할 수 있었어요. 아무튼 대학생 때는 이게 제일 기억에 남아요.



코코넛: 이때 경험이 커리어하고도 연결되는 면이 있네요. 스스로 재미를 느끼는 일을 커리어로 선택한다고 했으니까요. 그럼 즐거웠던 시절을 지나 취업준비하던 시절로 가볼까요? 진로 관련해서 받았던 조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나요?

완두: 조언까지는 아니고, 대학생 때는 미디어나 영화 제작하는 사람들이 멋져 보였거든요. 경험이 많이 없으니까 먼저 어떤 일을 하는 사람 보고 나도 저렇게 일해 봐야지 이런 마음이 컸었어요. 그때 들었던 영상 제작 프로그램 선생님이 어릴 때 해외에서 영화도 배우고 미디어 회사 경영하면서 멘토링 프로그램도 운영하던 분이었어요. 제가 잘 모르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분을 보면서 나도 빨리 일을 시작해서 많이 부딪쳐 보고 경험해 보겠다. 이런 약간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어요. 그때 수업 이후로 영화랑 콘텐츠에 관심이 생기면서 영화제에서 일해 보겠다고 결심하고 스텝도 했었어요.



코코넛: 그럼 질문을 조금 바꿀게요. 과거 취준생 시절 완두님에게 조언 한마디할 수 있으면 뭐라고 할 거예요?

완두: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라. 왜냐하면 그때 전 경제적 독립도 빨리하고 싶어 했고, 어떻게 보면 메타인지가 되게 빨리 된 거겠지만 너무 되는 것만 하고 살았어요. 지금 가진 능력치를 사용해서 빨리 커리어를 시작하고 돈을 벌겠다는 데에 초점을 맞춰서 당장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만 했거든요. 무언가를 새로 배우거나 몇 년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일은 선택지에서 아예 배제해 버렸었어요. 그런 것들이 쌓여서 길이 새롭게 만들어질 수도 있는 거였는데.

그리고 그때는 무조건 안정적인 정규직만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까 영상 제작 프로그램 선생님이 계약직 자리를 제안했을 때에도, 정말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지만 결국 잡지 않았어요. 당시 저한테는 안정적인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 그런 선택을 했었는데, 결국 제가 이직을 되게 여러 번 했잖아요. 그래서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면 괜찮으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된다고 말할 것 같아요. 너무 횡설수설했나요?



코코넛: 아뇨. 저도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요. 덩달아 생각이 많아지네요.

완두: 코코넛님은 어쨌든 과감하게 본인에게 시간 투자를 했었잖아요. 코코넛님이 저를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다고 한 것처럼 저도 코코넛님을 보면서 저렇게 시간 투자를 하는 것도 용기라고 생각했었어요. 서로를 비슷하게 생각한 게 신기하네요.



코코넛: 그러게요. 완두님은 안정과 재미 두 가지 사이에서 고민하는 편 같아요. 여러 번 이직하면서 직장을 고르는 기준이 어떻게 변화되었나요?

완두: 지금은 재미를 선택하는 편이기는 한데, 그래도 제 성향 자체가 안정이라는 토대 위에서 재미를 추구해서요. 둘 중 하나를 완전히 버리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디졸브처럼 두 요소의 비율이 달라져요.



코코넛: 일을 대하는 태도는 어떻게 달라졌나요?

완두: 첫 회사에서 일할 때 “완두님은 시키는 건 정말 잘하는데 주도적인 면이 부족하다.”라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어요. 사회 초년생 때 들었던 말이 참 오래가는 것 같아요. 당시 저를 돌아보면 맞는 말이지만 처음인데 어떻게 더 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해요. 어쨌든 지금은 연차가 높아졌으니까 너무 제 일만 하지 않으려고 하고, 돌아가는 상황이나 다른 팀원들이 어떻게 일하는 지도 보면서 시야를 넓게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아까 말한 것처럼 지금까지는 제가 계속 도움을 받고 인풋만을 받는 느낌인데, 앞으로는 리더십이나 타인의 커리어 개발 측면에서 제가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해보고 싶기도 해요. 아직 그랬던 적이 없어서요.



코코넛: 복합적이겠지만, 이직 타이밍을 결정하는 공통의 레드 플래그가 있었나요?

완두: 건강이 안 좋아졌을 때요. 제 건강 악화는 보통 스트레스 누적으로 인한 경우가 가장 커요. 이직이란 게 말씀한 것처럼 되게 복합적인 이유로 결정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정말 이제는 회사를 옮겨야겠다 아니면 일을 그만 둬야겠다. 이런 때는 몸에서 신호를 줬을 때였어요. 그래서 사실 직전 회사는 이직이 아니라 생 퇴사를 했어요. 그 전까지는 공백 없이 바로 이직해서 계속 지친 상태로 일을 해와서 다음 이직 때는 꼭 쉬어야지 막연히 생각했어요. 그 기회가 계속 오지 않다가 퇴사 직전에 몸이 많이 안 좋아지면서 몸 회복도 할 겸, 관심 있었던 일도 해볼 겸 겸사겸사 한 사 개월 정도 푹 쉬면서 프리터족처럼 살았어요.



코코넛: 이번에 건강이 다시 악화했던건 몰랐어요. 첫 회사 다닐 때도 건강이 안 좋아졌던 적이 있었잖아요. 그때 경험 이후로 생활 습관이나 일하는 방식에는 어떻게 변화를 주었나요?

완두: 시간 좀 지나면 다시 해이해지겠지만, 아프고 나서부터는 새벽까지 일하는 건 안 해야겠다. 지금 자고 내일 해도 어떻게든 된다는 마음가짐이 생겼어요.

퇴사하면 일했던 게 전생처럼 느껴지잖아요. 엄청 몰입해서 일할 때는 당연히 즐겁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받아 가면서 할 일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번에 퇴사하고 쉼을 경험한 뒤에는 일할 때 의식적으로 밸런스를 맞추려고 하고 있어요.



코코넛: 총 두 번의 재조정 과정을 거친 거네요. 만약 1만 시간의 커리어를 경험하기 전 과거의 완두님에게 지금까지 일어난 일 한 가지를 스포할 수 있다면 어떤 걸 할 건가요?

완두: 그런데 스포하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원래도 엄청 장기적인 목표는 잘 안 세우고 그때그때 일이 년 내에 무엇을 해보고 싶은지를 생각하는 편이라서요. 차라리 그냥 겪으면서 알아서 살아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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