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러문② 현재] 크리스마스 이브의 크레페 지옥

브랜드 마케터 세일러문: 선택을 바꾸지 않은 시간은 어디로 갈까?

by 코코넛 노무사




*솔직한 인터뷰와 아직 첫 회사를 다니고 있는 친구들을 위해 회사와 인물명은 닉네임으로 대체합니다*









코코넛: 이제 과거로 넘어갈게요. 세일러문님의 싱글, 사회 초년생 시절. 지금까지 걸어온 커리어 패스를 설명해 주면 좋겠어요. 전에 인턴을 했었으면 그것부터 얘기해도 되고 아르바이트부터 해도 되고.

세일러문: 내 첫 사회생활은 고3 수능 끝나고 백화점 지하 크레페 가게에서 친구들이랑 같이 한 알바였어. 크리스마스이브였는데 백화점 사람이 진짜 많잖아. 그리고 그때는 크레페가 인기 메뉴였거든. 첫 출근이 12월 23일이었는데, 하루 일해보고 바로 그만둘까 했는데 연말연시의 극한을 한 번 맛보고 나니까 그다음은 할 만하다 싶더라고. 그렇게 사회의 맛을 처음 봤지. 대학교 다닐 때는 서점 옆 액세서리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했어. 그때 돈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고 돈 버는 게 얼마나 힘든지 배웠어. 사람 눈치도 봐야 하고, 매니저들 사이 기싸움도 그때 처음 겪었는데 그냥 “몰라요.” 하면서 생각 없는 척 다닌 것 같아.

졸업을 앞두고는 진짜로 ‘내가 뭘 해야 하지? 뭘 잘하지? 뭘 좋아하지?’ 이런 남들은 대학 진학할 때 생각하는 그런 것들을 나는 완전히 닥치고 나서 생각했어. 중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한테 하소연했는데 친구가 “그런 건 원래 대학 가기 전에 하는 거야” 하면서 그런 거를 왜 생각을 안 했냐는 식으로 나한테 얘기를 한 거야. 거기서 자극 받아서 페이스북에서 운영하던 맛집 소개 채널을 포트폴리오 삼아 기업에서 운영하는 대학생 대외 활동을 여러 개 했어. 그때 내가 마케팅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어.

아, 휴학하고 화장품 회사에서 인턴도 했었다. 그때 페이스북 광고가 한창 유행일 때라 비포·애프터 같이 지금 하면 큰일 날 법한 연출도 해보고 사진·영상도 직접 찍고 광고 운영도 해봤어. 그거 하면서 자연스레 마케팅 일을 접했던 것 같아.

졸업하고 인디밴드에 빠져서 소극장 공연을 보다가 막연하게 ‘나도 이런 공연을 기획해 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어 공연기획자 스쿨을 들었어. 수업 듣고 기획안을 냈는데 선정돼서 실제로 밴드 멤버들 이야기 듣고 노래도 같이 듣고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을 무대에 올렸어. 이런 여러 가지 경력을 기반으로 첫 회사에 오게 된 것 같아.







코코넛: 되게 꽉 채워서 대학 생활을 했다.

세일러문: 아니야. 3학년 때까지는 엄청나게 놀았어. 그냥 생각 없이 놀다가 이제 발등에 불 떨어져서 한 거지.



코코넛: 전공은 뭐였어?

세일러문: 이것도 또 신기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원래는 컴퓨터 공학과로 입학했어. 근데 너무 안 맞는 거야. 그때 막 프로그래밍이 뜬다. 해서 했는데 나는 아무리 해도 컴퓨터랑 대화하고 명령어를 입력하고 이런 게 와닿지 않는 거야. 그래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학과로 전과했어.



코코넛: 몰랐어. 너 진짜 자기 얘기 안 하는 거 맞구나.

세일러문: 전과하고, 이제 그걸로 졸업을 한 거죠. 근데 그게 잘 맞았던 거지.



코코넛: 그러게. 너무 잘 내린 선택이었네. 여러 이력을 얘기해 줬는데, 회사에서 해 본 프로젝트 포함, 커리어와 관련해서 가장 큰 기회가 뭐였다고 생각해?

세일러문: 제일 큰 기회. 아까 공연 기획한 포트폴리오로 첫 회사 입사하게 됐다고 했잖아. 그때 팀에서 회사가 오프라인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행사를 해 보려고 했었나 봐. 그래서 오프라인 마케팅 경험이 있는 사람을 꼭 뽑으려고 했었고, 내가 입사하게 됐어. 그리고 그 컨퍼런스를 그때 내가 완전 신입이었는데 그냥 책임자로 해서 하게 된 거야. 근데 예산은 없대. 그래서 내가 스타트업 공유 공간에 지원 가능한지 연락했는데 운 좋게 해준다고 해서 거기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 생각도 하고 그게 어영부영 됐어. 약간 신입의 당돌함으로 했었던 프로젝트였던 것 같아. 어떻게 했는지 싶어. 그때 생각하면.



코코넛: 세상에. 그거 네가 한 거였어? 큰 행사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런 비하인드가 있었다니.

세일러문: 그때 나 신입인데 연사는 다 팀 리더였잖아. 신입이 그 사람들한테 원고 달라고 하는 게 얼마나 힘들어. 그 사람들 일정도 잘 안 지켰단 말이야. 그게 가장 어려웠는데 그때 의사소통 방식도 가장 많이 배웠던 것 같아.



코코넛: 옛날에 싸이월드나 페이스북도 했었어? 초보 인플루언서 시절 올렸던 사진이나 게시물들을 지금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

세일러문: 페이스북은 맛집 소개를 주로 했었고, 싸이월드는 그냥 일상 사진을 올렸던 것 같아. 근데 옛날이 더 뭔가 정성스럽고, 더 공을 들였던 것 같아. 지금은 약간 좀 약아져서 AI한테 도움도 받고, 사진도 어떻게 찍으면 되는지 알고 이러니까 빨리빨리 하는데. 그때는 되게 공들여서 되게 했던 것 같아.



코코넛: 그때 쓴 게시물 볼 때 기분은 어때?

세일러문: 기분? 오글거려. 오글거리는데 한편으로는 좀 기특하기도 해. 예전 것들을 막 읽고 이러면서 또 열심히 해야겠다. 또 이런 마음도 들고.



코코넛: 마케터 전에는 어떤 직업을 갖고 싶었어?

세일러문: 원래는 선생님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대학교 때 교직 이수도 했었다. 프로그래밍으로. 그때 선생님들 많이 뽑던 시절이라 친구 중에 선생님이 많아. 중학교 정보 선생님 이런 거. 근데 난 진짜 C언어 프로그래밍이 너무 안 맞는 거야. 그래서 나는 그냥 교직 이수한 사람이 됐어. 난 C언어 못 해.



코코넛: 나도 내 전공 잘 몰라. 마케팅 포지션은 거의 모든 회사가 뽑고 신입을 좋아하는 편이라 선택지가 많았을 텐데. 첫 회사를 선택한 이유가 혹시 따로 있었어?

세일러문: 이거 있어. 회사 홈페이지. 홈페이지에서 그 회사의 분위기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었어. 취업 준비할 때 회사 홈페이지 들어가 보고 하잖아. 근데 첫 회사 홈페이지는 되게 재밌어 보이고 알록달록해서 일반 기업들의 딱딱한 느낌이랑은 확실히 달랐단 말이야. 그래서 내 시선을 끌었었어.



코코넛: 홈페이지에 낚인 것 같아?

세일러문: 낚인 것 같지는 않아 그래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다 젊은 편이고. 그래서 내가 상상했던 곳이라고 생각해. 물론 아닌 때도 있지만, 그래도 다른 친구들 회사 생활을 하는 거 들어보면 나는 완전 전형적인 회사에서는 일을 못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



코코넛: 그래도 첫 회사만 지원하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홈페이지 말고 다른 지원 기준은 없었어?

세일러문: 있었어. 회사가 얼마나 탄탄한지, 재무구조를 봤어. 나는 안정을 되게 추구하는 사람이다 보니까 그랬던 것 같아. 그때 영세한 소셜마케팅 회사도 엄청 많았고 그런 데서도 신입을 많이 뽑았는데 너무 작은 규모거나 회사가 없어질 것 같은 곳은 지원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두 가지였던 것 같아요. 내가 안정적인 걸 추구하지만 너무 안정만 추구할 수는 없고, 재미도 있어야 하고. 그래서 내가 욕심쟁이인 것 같아.



코코넛: 이 기준대로면 첫 회사가 맞지. 수요도 많았던 만큼 지원자도 많았을 텐데, 당시에 너만의 차별화 포인트는 뭐였어?

세일러문: 마케팅 채널들을 운영해 봤던 경험이랑 진짜 실무를 경험했던 거.



코코넛: 인스타그램 계정 상단에 하이라이트 모음집 있잖아. 회사 생활을 주제로 그런 걸 만들 수 있으면 어떤 순간들을 넣을거야?

세일러문: 나는 잘 보이기를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아. 그래서 좀 있어 보이는 큰 행사 하고 막 이런 것들로 채울 것 같기도 하고.



코코넛: 지난 1만 시간의 회사 생활 중 가장 큰 위기가 언제였어요?

세일러문: 계속 팀이 바뀌었던 거. 회사가 마케팅이라는 조직을 되게 여기 붙였다. 저기 붙였다 했던 곳이라서. 근데 또 나는 또 여기가 첫 회사라서 회사가 원래 이런가 보다 해서 당시에는 이게 큰 위기라고 생각을 안 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였던 것 같아.



코코넛: 힘들었던 게 새로운 상사를 만나는 게 힘들었던 거야? 아니면 일이 계속 바뀌는 게 힘들었어? 정확히 힘든 원인이 뭐였다고 생각해?

세일러문: 상사가 계속 바뀌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 상사의 스타일에 적응해야 하니까. 사실 일은 계속 바뀌어서 나는 오히려 지금까지 다닐 수 있었던 것 같아. 사람이 문제다. 일은 오히려 바뀌어서 다행이었어. 일로써 환기할 수 있었어.



코코넛: 회사 퇴사율이 높은 편이잖아. 지금 같이 입사했던 친구들은 많이 안 남아 있는데 친구들이 하나둘씩 떠날 때 어떤 생각이 들었어?

세일러문: 처음에 한두 명이 퇴사할 때는 그냥 ‘하나 보다’ 하고 말았어. 근데 이제 거의 얼마 안 남았잖아. 나랑 초코랑 꾹꾹이밖에 안 남았어. 중간중간에 많이 퇴사할 때 “나도 이직해야 하나?”라는 마음이 사실 생겼었거든. 그래서 어디 회사를 넣어야 할까? 기업들을 찾아 봐. 겉으로는 좋아 보이지만 일이 엄청 빡세거나 급여가 일하는 것에 비해 낮거나 되게 불안정한 곳도 또 많았단 말이야. 업계가 약간 그런 것 같아. 그래서 물론 원서를 넣은 곳도 있고 인터뷰까지 간 곳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돌아왔던 것 같아. 그냥 마음이 그랬어. 그래서 약간 나는 안정적인 걸 엄청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걸 또 느꼈어.



코코넛: 업계를 바꿀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어?

세일러문: 우리가 이십 대 초중반에 입사했잖아. 그때는 솔직히 회사가 뭘 만드는 곳인지도 잘 모르고 들어갔어. 내가 원래 소통하던 대상이 회사의 타깃층이 아니다 보니까 처음엔 정말 힘들었단 말이야.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나이를 먹고, 내 상황도 변하면서 점점 괜찮아졌던 것 같아. 첫 회사 입사 전에 내가 경험했던 업계는 화장품 쪽이었는데, 화장품 업계도 정말 영세한 곳이 많고, 이때는 화장품 회사들이 소셜 광고에만 집중하던 시기라, 나는 요즘 말하는 퍼포먼스 마케터 타입은 아니었거든. 그래서 업종을 바꾸면서 직무까지 바꾸는 건 위험이 너무 크다고 느꼈어.



코코넛: 회사 다니면서 가장 잘한 일이 뭐라고 생각해요?

세일러문: 회사 동료들을 친구로 만든 거. 업무를 하면서 아니면 진짜 개인적으로 힘들 때 되게 의지가 많이 됐던 것 같아.



코코넛: 이제 공통 질문. 사회 초년생의 본인에게 지난 1만 시간 동안 벌어진 일 한 가지만 스포일러할 수 있다면 뭘 해줄 거예요?

세일러문: 당연히 비트코인 사라고 하지.



코코넛: 드디어 나랑 똑같이 말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세일러문: 일단 그러면 경제적 자유가 생길 테니까 뭐든지 할 수 있을 거 아니야. 당연히 비트코인 사라고 스포해야지.



코코넛: 경제적 자유를 얻어도 회사 다닐 거야? 지금 회사 다닐 거야?

세일러문: 나 로또 일등 당첨되어도 다닐 거야. 그러면 돈 많으니까 더 마음 편하게 회사 다닐 수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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