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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 연필 Jun 27. 2020

금을 도둑맞다

소유의 불편함

  며칠 전, 조카 돌이라 금은방에 들렀다. 마음이 참 쓰렸다. 2년 전 보다 껑충 뛰어오른 금 시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2년 전, 돌잔치 후에 안방 화장대 서랍에 넣어 두었던 금반지를 언제 도둑맞았는지도 모르게 도둑맞았다. 허술하게 화장대 서랍 안에 넣어놓은 것도, 빌라 3층인데 외출할 때 창문도 다 열어놓고 외출한 것도, 현관문 도어록을 새건전지로 빨리 교체해주지 않아 삑 소리가 여러 번 나고 문이 잠기지 않았던 것, 지인들이 방문했던 것 등 걸리지 않는 것이 없었다. 우리 집에 놀러 왔었던 지인을 의심하자니 끝이 없었다.


  웃긴 건 18k. 14k는 그대로 있고 순금만 가져갔다는 것이다. 전문가의 소행일까. 결혼할 때 시엄니께 받은 10돈 목걸이에 돌반지, 팔지 총 30돈 정도가 없어졌다. 다 모아 한 상자에 넣어 둔 것도 잘못이었을지 모른다. 혹시 다른 곳에 둔 것은 아닐까 다 뒤져 받지만 헛수고일 뿐이었다. 언제 잃어버린지도 모른다는 것에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어느 날, 상자를 열어보니 비어있었던 것이다. 아니, 상자 안에는 반지를 처음 받았을 때 받은 작은 종이 가방과 주머니가 잔뜩 들어있었다. 알맹이만 상자에 넣어두고, 종이가방은 모아서 옆에 차곡차곡 쌓아두었었는데...


  우리 집과 비슷한 시기에 돌잔치를 했던 아랫집을 찾아갔다. 혹시 다른 집도 도둑맞지는 않았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돌반지를 도둑맞았다며 그 집은 잘 가지고 있냐고 하니, 애기 엄마는 처음에는 잘 가지고 있다고 말하다가, 사실, 급하게 돈이 필요해 다 팔아서 없어서 도둑맞을 일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몇 달 전, 옆 동에 좀도둑이 들어 새벽에 경찰차가 온 적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학생들이었다는 정보까지 알려주었다.


  막, 경찰 임용이 된 사촌에게 전화하니 어쨌든 신고하면, 나중에 다른 사건의 실마리가 될 수 있으니 신고는 하라고 해서 112를 눌렀다. 가장 가까운 파출소에서 나이 많은 한 분과 갓 임용된 순경으로 보이는 한 명이 바로 찾아왔다. 방을 둘러보고 금이 보관된 서랍도 둘러보았고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언제 잃어버린 것을 발견했나, 어떤 상태로 있었는가, 의심가는 사람은 없는가 등의 질문을 한 후 아무래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을 했다. 지문검사라도 해주길 원했으나 많이 만져서 안 나올 것이라며 의미가 없다고 했다.


  솔직히 기대는 안 했지만 너무 형식적으로만 얘기하고 수사 의지가 전혀 없는 경찰에게 실망스러웠다. 마지막으로 신고 안 하려다가 동생이 경찰인데 신고하라고 해서 신고했다고 하니, 눈이 커지더니 나이 많은 경찰은 동생이 어느 지서에 있냐고 물었다. 여기는 아니고 다른 지역이고, 동생이 아니라 사촌동생이라 했더니, 거짓말인 줄 알았는지 약간 조소 섞인 웃음을 짓더니 가버렸다.


  다음날, 사건이 지역의 경찰서 형사과로 인계되었다고 문자가 왔다. 강력 2팀 수사관 ***에게 배당이 되었다고 문자가 와서 수사를 하는 건가 싶어 전화도 해 보았다. 나는 전날, 했던 말을 반복했고, 형사는 찾기 어려울 것 같기는 하나 옆 동에 도둑이 든 적이 있다고 하니 조사해보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한 달 후, 경찰서에서 문자가 왔다.

"귀하의 사건에 대해 더 이상 범인을 특정하거나 추적할 단서가 없어 부득이 미해결 사건으로 분류하였습니다. 범인에 대한 새로운 단서가 발견되면 다시 수사할 예정이니 계속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른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전화 주시기 바랍니다. 강력 2팀 수사관***"


  예상은 했지만 노력은 했는지 궁금해서 전화를 해 보았다. 누가 충청도 사람 아니라고 할 까 봐 느린 사투리를 쓰는 형사가 전화를 받았다. 이름, 날짜를 말하자 잠깐만 기다려 보라고 하더니 서류 넘기는 소리가 나더니 한 참만에 말을 이었다.


  "아, 이거는 솔직히 찾기 어려워유."

  "그때, 옆 동 도둑 들었던 사건 알아보시고 관련 있는지 조사해 보신다고 하셨었는데요."

  "요새, 증거도 없이 함부로 애들 의심하고 그러면 부모들 난리 나요. 그리고 우리 팀 인원이 줄어서 지금 한 달에 300~400건 되는 사건을 지금 세 명이서 다 해야 하는데 죽겠어유. 이게 말이 되냐고요. 그리고 금은 집에다 두면 안 돼유. 집에다 두는 건 가져가라는 거지. 요새 애들 제 차도 털어가는데유 뭐. 앞으로는 귀중품 집이나 차에다 두지 마세유."

  

  기대한 건 아니지만, 뭐랄까 내가 왜 형사들의 업무 과다로 힘들다는 얘기를 듣고 있어야 하는지...나는 내 사건 진행상황 들으려 전화했다가 "아, 아이고 그러시구나. 많이 힘드시겠어요."이러면서 바보같이 경찰을 공감하고 위로하고 있었다.

 

  통화를 한 후, 이웃집 아저씨와 통화한 듯한 비전문성과 내 사건은 애초에 들여다 볼 생각도 없었다는 느낌만 받아 쓴웃음만 나왔다. 내가 서장 딸이었어도 이렇게 무관심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친구의 친구가 지하주차장에서 누가 차를 긁고 가서 신고했더니, 경찰이 와서는 CCTV도 봤는데 잘 안나와서 못 잡는다고 했다가 전화 한 통 받더니 서장 따님이신 거 왜 말씀 안 하셨냐면서 가해차량을 잡아줬다는 씁쓸한 얘기를 들어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사촌동생이 선배 경찰들에게 물어보니 경찰이 관심 갖고 신경만 써주면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며 어떻게 됐냐고 연락이 왔다. 하지만 나에게 경찰이 신경써줄 이유가 없었다. 통화한 내용을 이야기하니 사촌동생은 웃더니 자기가 더 미안해했다.


  한 동안 주위 지인들을 의심하며 이 사람은, 이때쯤 돈이 어디서 나서 해외여행을 다녀왔을까. 그때 그 친구는 왜 내가 화장실에 다녀오자마자 집에 간다고 일찍 집에 갔을까 등 별의별 생각이 들어 잠을 설쳤지만, 증거도 없이 함부로 의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밤마다, 베란다에서 부스럭 소리라도 나면 깜짝깜짝 놀랐다. 그동안 창문 닫는 것도 깜박하고 그냥 열어두고 자고, 외출할 때도 환기시킨다고 열어두고 다녔던 안일함을 반성했다. 


  남편은 원래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생각하라고 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생활하기 어렵다며 잊으라 했다. 남편 지인도 아파트 1층에 사는데 금을 다 도둑맞았다며 우리의 세 배정도 되는 양이었다는 말에 약간의 위로와 금을 도둑맞는 것이 그렇게 잦은 일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형님은 금을 도둑맞았다는 내 말에 "신문지에 잘 싸서 냉동실에 넣어 놓지 그랬어."라고 처음 듣는 얘기를 했다. 전문적인 털이범은 금 탐지기를 들고 다니기 때문에 냉동실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금을 도둑맞고 나니,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중품을 잃어버렸을 때의 그 괴로움을 느껴 보았기에 이제는 귀중품을 소유하는 것 자체가 불편하다. 뭐 이제 귀중품도 없지만... 다섯 살배기 딸아이가 공주놀이를 한다고 플라스틱 꽃반지를 서너 개씩 끼고 돌아다니는데 왜 이렇게 맘이 쓰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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