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에 잠에서 깬 건지
잠에서 깼는데 빗소리가 들린 건지는 잘 모르겠다.
순서가 뭐 중요할까.
캄캄한 방 안에서 땅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마음속으로 세어보았다.
일흔둘을 넘어갈 때쯤,
나는 내 오른손 검지손가락이 나도 모르는 새
까딱 거리며 함께 빗소리를 세고 있는 걸 알았다.
옆에서 자는 아이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나왔다.
거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작은 바늘은 삼에, 큰바늘은 육에 머물러 있다.
세시 삼십 분.
열한 시쯤 아이와 함께 누웠지.
한동안 뒤척이는 아이를 꼭 끌어안고 있었지.
아이는 잠든 것 같았고, 이젠 내가 뒤척이고 있었지.
핸드폰 밝기를 최소한으로 낮추고
의미 없는 무언가를 보았지.
그러다 잠이 오기 시작했으니..
그러니까, 대략 열두 시쯤에는 잠이 들었겠다.
세 시간 삼십 분.
지금은 세시 삼십 분.
내가 잠들었던 시간은 세 시간 삼십 분.
그래도 이 정도면 꽤 괜찮은 거 아닌가.
아예 네다섯 시 이후에 잠이 들 때도 있으니.
새벽 세시 삼십 분에 거실창을 통해 바라본 세상은
생각보다 어둡진 않았다.
사거리의 신호등엔 교대로 녹색과 빨간불이
들어오고 있었고, 주위 가로등도 있으니 그런가 보다.
거기다 비.
십일월의 비가 세시 삼십 분의 풍경에 더해지니
하마터면 와인을 찾을 뻔했다.
아, 결혼하기 전 싱글이었더라면 이런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한 병을 꺼냈겠지.
아니, 결혼을 했더라도 아이가 없을 때였으면 바로 꺼냈을 거야.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거실창 앞에 우두커니 서있는데 웃음이 나왔다.
집에 와인이 한 병도 없구나.
이런저런 가정이 무색하게
집에는 와인이 한 병도 없다.
이것 참, 새벽 세시 삼십 분에 혼자 거실에서
이런저런 가정을 하고 있었던 좀 전의 나에게
조금 미안하기도 하고
지금의 나는 조금 무안하기도 하다.
세시 삼십 분.
십일월의 비가 내리는 새벽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혼자 미안하기도 하고
또 혼자 무안하기도 하고 있다.
잠시 창밖을 좀 더 바라보다
다시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쌕쌕 거리는 아이의 숨소리와
투둑 거리는 빗방울 소리가 제법 잘 어울린다.
쌕쌕 거리는 아이에겐 침대 발치에 널브러져 있는
이불을 펴서 잘 덮어주고
투둑 거리는 십일월의 비에겐 다시 오른손 검지를
까딱거리며 내리는 빗방울을 함께 세어주었다.
옆으로 돌아누운 아이를 뒤에서 끌어안고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십일월의 비가 오는 소리를 듣는다.
일흔둘쯤 헤아렸을 때 눈이 감기기 시작한다.
현실과 잠의 경계에서
나는 아침이 되면 글을 한 편 쓰기로 했다.
첫 문장은 이렇게 쓰자.
빗소리에 잠에서 깬 건지
잠에서 깼는데 빗소리가 들린 건지는 잘 모르겠다.
다시 깨어난 아침에 십일월의 비는 잠시 그쳐있었다.
아이를 깨워 학교에 보내고
나는 노트북을 챙겨 집을 나섰다.
카페에 들어와서 이 글을 쓰고 있으니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들어왔을 때 시켰던 뜨거운 커피는
미지근하게 식어있다.
이제, 커피를 마실 시간이다.
*사진출처: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