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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비 Nov 14. 2024

일상으로의 초대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고 책을 보고 생각에 잠길 때

어릴 때,

(물론 저는 지금도 어리지만

사회의 일반적인 통념을 기준으로 말을 하자면)

저는 사람들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 사람은 왜 사는 걸까.

저렇게 사는 게 의미가 있는 걸까.

행복할까.


저 사람은 왜 저러는 걸까.

저러고 싶을까.

저러고 나면 행복할까.


저 사람은..

저 사람은..

저 사람은..


사람들의 행동과

그 행동들의 합을 통해 엿본 그들의 삶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때 그들을 향한 제 물음들이

결국, 제 자신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이라는 걸,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때, 그들의 삶이 이해되지 않았던 건

그때, 제 삶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서사’

왠지 '서사'라는 단어 앞에는 뭔가 큰 수식어를

붙여야 할 것 같습니다.

‘장대한’이라든가

‘웅장한’이라든가.  

하다못해 '대'자라도 하나 붙여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걸까요.

'서사'라는 단어만큼 저와 무관한 단어는 없을 거라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나 같은 사람에게 '서사' 같은 게 있을 리가.


신과 인간 사이에 태어난 반신 정도는 되어야,

아니 현실적으로 생각해 봐도

맨손으로 회사를 세운 재벌 창업자 정도는 되어야.

그런 사람들에게 있는 게,

그런 사람들이 살아온 게,

'서사' 아니겠습니까.


고작 사람들의 행동 몇 가지를 보고

그 행동들의 합을 그들의 삶이라 단정하고 바라봤던

그 시절에는 저에게도, 그 사람들에게도

'서사'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일상은 서사의 반대말이고,

행복은 장대한 혹은 웅장한 서사를 지은 후에

따라오는 것이라 믿었으니까요.


서사가 될 수 없는 일상을 살며

매일을, 매주를, 매월을

출소할 날만 세고 있는 죄수처럼

제대할 날만 세고 있는 군인처럼

달력의 숫자에 X표를 치듯 살았습니다.


더 이상 X표를 칠 수없게 되었을 때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 끝이 하루빨리 다가오기를 바라며

하루하루 달력에 X표를 치듯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알고 있습니다.

몸서리치게 싫었던 그 X표들이 저의 서사라는 걸.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겐 그들만의 서사가 있다는 걸.

작은 돌을 쌓든, 큰 돌을 쌓든

저마다 자신만의 서사가 있다는 걸 말입니다.


손가락 한 마디도 안 되는 작은 돌들을 모아

절 아래 산길을 보면 곳곳에 놓여있는

작은 돌탑 같은 서사를 쌓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몸보다 더 큰 돌들로

피라미드와 같은 서사를 쌓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서사가, 누구의 서사가

더 나은 서사일지를 판정할 수 있을까요.

더 크다고? 더 세다고?

더 멋있다고? 더 감동적이다고?


하루를 버텨내는 게 그 하루의 목표인 것처럼

X표만 치고 살아온 제 과거에도 서사가 있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저 버티며 살아온 제 X들 안에도

꽤 담아갈 만한 서사들이 있습니다.

웃고, 울고, 화내고, 소리치고, 간지럽히고,

어루만지고, 속삭이던 저만의 서사들이

저를 보고 어서 담아가라 손짓합니다.


일상은 서사의 반대말이 아니라

서사의 또 다른 표현이었습니다.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고,

책을 보고, 생각에 잠기는 제 일상이

제 서사라는 걸 이제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이렇게

제 일상에 당신을 초대하고 있고요.

오늘,

이렇게 제 서사의 일부분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당신의 일상에도 저를 초대해 주시겠어요?

기꺼이, 당신의 서사에 일부분이 되겠습니다.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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