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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비 Nov 11. 2024

숨바꼭질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어릴 때 너는

숨바꼭질을 참 좋아했다

술래는 맨날 내가 하고

숨는 건 맨날 네가 했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다 숨었니?


아니


바로 내 귀에다 대고 아니라고 하면

어쩌자는 거니

너의 따뜻한 입김이 바로 귓가에 느껴지는데

어쩌자는 거니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다 숨었니?


아니


소리의 크기와 방향이 안방인데

어쩌자는 거니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다 숨었니


다 숨었다!


작은 방이구나

나는 일부러 안방으로 가

침대 위 이불도 들쳐보고

어, 이상하다. 여긴데 왜 없지


화장실로 가

샤워 커튼도 소리 내어 젖혀보고

어, 진짜 여긴데 왜 없지


마침내,

작은 방으로 들어가 보면


창문이 있는 벽

노란 커튼이 달린 그 벽 한 구석에

앙증맞은 너의 두발이 보이고

기저귀가 툭 튀어나온 너의 엉덩이가 나를 부른다


살곰살곰 다가가

와락

너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으면


꺄르륵

웃는 얼굴과 똑같이 생긴 웃음소리가

작은 방을 가득 채운다


아빠 아빠

다시, 다시 한번 더


나는 다시

거실 소파가 놓인 벽 구석에 얼굴을 대고

네가 바로 내 옆에 있는 걸 전혀 모른다는 듯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다 숨었니


아니


바로 내 귀에다 대고 아니라고 하면

어쩌자는 거니

너의 따뜻한 입김이 바로 귓가에 느껴지는데

어쩌자는 거니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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