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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렵거나 사랑하거나

비로소 나는 듣고, 읽고, 마시는 것이다

by 박나비

밤은 또 다른 세계다.

낮과는 다른 밤만의 세계가 존재한다.

특히, 인간에게 그렇다.

대부분을 시각에 의존하는 인간에게 이 밤이라는 세계는 절대적인 두려움과도 같다.

새까만 밤에 일렁이는 불빛을 도깨비불이라 하며 두려워하고, 낮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나뭇가지의 움직임 하나에도 혼비백산한다.

시각으로 느껴지지 않는 세계에 인간만이 가진 상상력이 배가되어 생기는 현상이라 쿨하게 설명하고 싶지만 실은 나도 밤이 무섭다.

특히, 무서운 영화를 보거나 이야기를 들은 날에는 오늘은 제 엄마랑 같이 잘 차례인 딸에게 슬며시 다가가 오늘은 아빠랑 같이 잘까 하며 가족수면규정에 어긋나는 발언을 할 정도이니..

그럼 밤이 이렇게 무섭기만 하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밤이란 신비롭고 경이롭고 또 경외로운 세계다. 나는 밤의 어둠을 사랑한다.

주변이 새까맣게 깜깜해지면 왠지 아늑한 동굴 속에 있는 기분이다.

그래서 나는 모두가 잠든 밤 그 아늑한 동굴에서 듣는 음악을, 읽는 책들을, 마시는 와인을 사랑한다.

모든 것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부터 밤이라는 또 다른 세계에서 나는 나의 일과를 다시 시작한다. 비로소 나는 듣고, 읽고, 마시는 것이다. 이때 듣는 음악과 이때 읽는 책과 이때 마시는 와인은 낮의 세계의 그것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 노래가 너무 좋고, 아직 문장이 이어지는 이 책을 사랑한다. 다만, 이제 바닥에서 찰랑거리는 이 와인병이 아쉬울 따름이다. 하지만 아침이면 다시 모든 것이 드러나는 세계로 가야 하기에 헤드폰을 벗고, 읽던 책을 덮고, 와인병을 치운다.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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