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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꼬시기 쉬운 남자

by 박나비

나는 갑자기 잡히는 약속이 좋다.

미리 일정이 잡혀있으면 기대하거나 걱정이 되어 잠을 설치기도 할뿐더러 약속 당일이 되면 꼭 배가 아프거나 속이 안 좋거나 머리가 아프다.

촌스럽게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갑자기 잡히는 약속이 좋다.


평소처럼 아무 고민 없이 입고 나온 옷에

평소와 다름없이 초강력 파마로 돌돌 말린 머리에

적당히 낡아서 조금 꼬질꼬질한 운동화를 신고

만날 수 있는 약속이 참 좋다.


오늘 어때?

한잔 어때?

이런 날씨면 한 잔 해야지?


나는 이런 류의 전화나 문자가 참 좋다.

물론 어떤 사람에겐 이런 류의 갑작스러운 연락이 불쾌할 수도 있다. 내 친구 중에 한 명은 몇 달 뒤까지 약속을 미리 다 정해놓아 미리 한두 달 전에 저녁약속을 잡지 않으면 거의 만나는 게 불가능하다. 한두 번 이 친구와 저녁을 먹으려 했다가 이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 나는 이 친구에게 먼저 연락을 해본 적이 없다. 물론 이 친구가 잘못된 건 아니다. 단지 나와 안 맞는 사람인거지.

어쩌다 한 번씩 이 친구에게서 어찌 지내느냐 연락이 오는데 그때마다 나는 언제 한 번 보자고 답을 하고 대화를 마감한다.

대다수의 사람에게 저 말이 갖는 의미가 비슷할 게다. 나는 보고 싶은 사람에겐 오늘 내일 모레 보자고 얘길 하지 절대 언제 한 번 보자고 하지 않는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고 있으니 다니다 보면 언제 한 번 마주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말의 축약문이다.


당장 오늘 밤, 내일 새벽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세상이라 나는 갑자기 잡히는 약속이 좋다.

그러니까, 그런고로, 그래서말인데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뒤 돌아보지 말고, 당신, 그래요 맞아요 당신.


어떻게, 오늘 한 잔 콜? :)




*이미지출처:인터넷 정재영배우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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