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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이를 주문하던 초등학교 선생님

feat. 필리핀으로 떠난 미용사

by 박나비

헤어지고 단 한 번도 생각이 안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끔 머릿속의 어느 문을 불쑥 열고 튀어나와 잘 지내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이 사람도 내 생각을 이렇게 한 번씩 할까 와 같은 질문을 자아내는 사람이 있다.


일을 하다 처음 만난 클라이언트일 경우도 있고, 반대로 내가 클라이언트가 되어 처음 만난 에이전시의 사람일 경우도 있다.

술자리에서 소개받아 즐겁게 함께 놀았던 친구의 친구인 경우도 있고, 미용실에서 한 달에 한 번 내 머리를 깎아주다 이제 그만하기로 했다며 필리핀으로 훌쩍 떠난 미용사일 경우도 있다.

인도 배낭여행에서 야간버스를 타고 13시간을 갈 때 누가 배낭을 훔쳐가지나 않을까, 누가 해코지를 하지나 않을까 마음 졸이며 한숨도 못 자고 새벽 어느 도시에 내렸을 때 구세주처럼 만난 한국인 친구일 경우도 있고, 그 친구와 서로 나이는 묻지 않고 같이 다니는 동안은 말을 놓고 지내기로 하고 20시간의 기차를 함께 타고 간 어느 도시에서 만난, 인도 여행이 이번이 두 번째라며 현지인처럼 짜이를 주문하던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일 경우도 있다.


나도 누군가에겐 헤어지고 난 뒤 다시는 생각이 나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고, 가끔 머릿속 어느 문을 툭 열고 나타나 잘 지낼까라는 질문을 자아내는 사람일 수도 있겠지. 지나치게 다정하고 관대하면 상대방은 무례해진다고 쇼펜하우어선생님이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나를 만난 사람들이 전자보단 후자의 경우가 많았으면 좋겠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사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사랑이나 호감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지난 시간들을 화를 내고 남을 비난하거나 뭉개며 살아오진 않았다는 증거일 테니.




*이미지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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