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에서 윗옷을 꺼내려다 잠시 고민했다.
요즘 아침, 저녁으로 날이 꽤 쌀쌀하던데 긴 팔을 입어볼까. 반팔 티셔츠가 걸려있는 옷장 문을 닫고 바로 옆에 문을 열고 몇 장 걸려있지 않은 빈약한 내 맨투맨 셔츠 중에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그래, 오늘부터 긴팔로 가자.
그러고 보니 요즘 버스정류장이나 사무실 사람들의 옷차림이 거의 긴팔이거나 얇은 카디건을 걸치고 있었던 것 같다.
오늘은 오후에 비도 온다니, 그래 오늘부터.
양말을 신으며 마음이 살짝 흔들린다.
‘그래도 아직 10월도 안 됐는데..’
‘이제 긴팔로 바꾸면 다시 반팔로는 못 돌아갈 텐데..’
‘그럼 올해 반팔은 어제로 끝인 건가..’
‘안 되겠다!’
오른쪽을 다 신고 왼쪽 양말을 신는 중에 벌떡 일어나려다 하마터면 주방 아일랜드장과 옷방문 사이 좁은 공간에서 코를 박고 자빠질뻔했다. 이래서 생각 중에 몸을 움직이면 안 된다. 아, 그 반대다. 몸을 움직이는 중에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아슬아슬하게 넘어지려는 몸의 균형을 내 긴팔 옷장처럼 빈약한 나의 코어 근육으로 어찌어찌 잡고는 다시 옷방으로 들어가 윗옷을 갈아입었다.
잠깐이었지만 보드라운 천에 덮여있던 양팔에 한기가 돋는다. 그래, 작별 인사도 없이 이렇게 갑자기 너를 보낼 순 없지. 9월까지다. 9월까지는 반팔을 입고 10월부터 정식으로 긴팔을 입는 거다.
본디 정상인 사람은 온도에 따라 옷의 길이를 정하지만 타고나길 남들보다 조금 떨어지는 나는 이렇게 달과 계절을 고집 중이다.
짙은 녹색바지에 흰색 스니커즈, 그리고 짙은 남색 반팔티셔츠를 입고 집을 나선다. 상쾌하다. 그래, 아직은 반팔이 맞다.
에에취!
눈앞에서 버스를 놓치고 정류장에서 십여분째 다음 버스를 기다리며..
여러분 긴팔 입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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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한 9월이 이렇게 또 한 번 지나가네요.
*이미지출처: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