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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비 Jan 30. 2024

그런 날이 있다

와인 한 스푼, 수다 세 스푼 일상 와인 스토리 시즌3

그런 날이 있다.


부산하게 아침 일정을 보내고 정오에 가까운 오전.

햇볕이 잘 드는 거실 창가에 앉아 있노라면,


오래된 나무에 붙어 있는 가느다란 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

어디선가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무언가를 열심히

쪼는 모습.

건너편 도로에 신호등이 빨간불에서 파란불로

바뀌는 모습.


여러 풍경이 눈을 여과하여 머리 뒤로 흘러 나간다.

한동안 멍하니 창 밖의 이런 풍경들을 바라보다

거실로 고개를 돌린다.


환한 햇살이 거실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한사코 더 내어달라고 욕심을 부리는 햇살과

그래봐야 오후에 다시 물러갈 걸 알기에

순순히 자신의 공간을 내어주는 거실바닥.

때때로 구름이 지나가는지,

환하던 바닥이 살짝 어두워지기도 한다.


그런 날이 있다.


부산하게 아침 일정을 보내고 정오에 가까운 오전.

멍하니 거실 창가에 앉아 있노라면,


이름 모르는 새가 지저귀는 소리.

안방 베란다의 우수관에서 물이 흘러가는 소리.

바깥 복도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고 내려가는 소리.


여러 소리가 귀를 여과하여 머리 뒤로 흘러 나간다.

한참을 멍하니 이 소리들을 듣고 있는다.


새가 친구를 부르나.

윗집에서 세탁기를 돌리는구나.

택배 기사님인가.

여전히 멍한 상태로, 들려오는 소리의 이유를 가장

1차원적으로 해석한다.


햇볕은 따사롭고,

눈에 보이는 장면들

귀에 들리는 소리들이

마음속 어딘가를 간지럽힌다.


평화롭고, 평온하고.

따사롭고, 한가롭다.


갑자기 ‘딩동댕동’ 기계음 소리가 거실에 달려 있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


기계음 다음에 나오는 목소리는

긴장한 여자분의 목소리일 때도 있고,

우렁찬 남자분의 목소리일 때도 있다.

하지만 안내 방송의 첫 시작 부분은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냐에 상관없이 늘 한결같다.


“아아,  관리실에서 알려드립니다.”


관리실의 안내 방송 소리에 비로소 정신을 차리며

잠시 투덜거려 본다.


하지만,

창 밖 흔들리는 오래된 나무의 나뭇가지만큼이나.

이름 모를 새의 지저귀는 소리만큼이나.

건너편 신호등의 바뀌는 색깔만큼이나.

복도의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는 소리만큼이나.

관리실의 안내 방송 또한

이 시간의 어엿한 구성원이자 일부분이다.


오히려,

이 시간에 집안에 있는 멀뚱한 한 남자야말로

이들의 평온한 일상의 방해꾼이다.


잠시의 투덜거림이 미안해진다.

뭐, 하지만 오늘은 나도 이 공간의 어엿한 구성원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주방으로 걸어가 걸려 있는 와인잔 하나를 빼온다.

구석의 셀러에서 와인 한 병을 빼온다.


병을 오픈해서 잔에 와인을 따라 거실 테이블 위에

두고 다시 주방으로 향한다.


냄비를 올린다.

간장과 물, 식초와 설탕을 감 잡히는 대로

냄비 속으로 집어넣는다.

양파도 채를 썰어 함께 넣는다.

걸쭉한 소스의 질감이 될 때까지 중불에서 졸인다.

적당히 소스의 형태가 만들어지면 뜨거운 냄비를

주방 베란다에 내어 놓고 식힌다.


소스가 식을 동안, 냉장고에서 생연어를 꺼내

적당히 한 입 크기로 썬다.

조리 도구들을 정리하며 잠시 기다린다.

주방 베란다에 내어 놓은 소스 냄비를 가져와,

동그란 접시 위에 붓는다.

그 위에 한 입 크기로 썰어 놓은 연어를 펼쳐 올린다.

연어 위에 남은 소스를 붓는다.

앞접시로 쓸 작은 접시를 꺼내고

접시의 가장자리에 고추냉이를 듬뿍 짜낸다.


연어가 담긴 접시와 고추냉이가 담긴 앞접시를

거실 테이블로 가져온다.


건너편 신호등에서 초록불이 깜빡깜빡 거린다.

뭔가를 쪼아대던 새 한 마리가 날개를 푸드덕

거리며 어딘가로 날아간다.

윗집 세탁기는 본격적으로 헹굼 코스로 들어갔는지

우수관을 타고 내려오는 물소리가 커진다.


따라두었던 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간다.

가지런히 놓여있는 젓가락을 들어 연어 한 점을

집는다.


와인 한 모금.

연어 한 점.


고개를 돌리니 아직도 햇살과 바닥이 땅따먹기를

하고 있다.


그런 날이 있다.



* 한적한 낮 시간에 집에서 한 잔 하면 좋을

와인 한 종 소개 드립니다.

캐년 오크(CANYON OAKS)입니다.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미국 와인입니다.

까베르네소비뇽과 샤도네이 두 종이 있는데

둘 다 괜찮습니다.


이름을 오크라고 달고 나온 것으로 우리는 충분히

맛과 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부드럽고 가볍습니다.

탄닌감이 그렇게 느껴지진 않습니다.

향도, 맛도. 가볍게 즐기기에 딱 좋습니다.


이전엔 행사가로 8천 원 후반대에 나온 적도 있는데

요즘엔 행사가 만원 정도에 볼 수 있습니다.

만원 초반대까지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이 와인이 행사가로 진열되어 있다면

고민 없이 집으세요.  

이렇게 당신과 나, 우리의 데일리 와인 라인업이

오늘도 풍성해집니다.


그럼 오늘도 당신의 행복한 와인생활을 기원하며

이만 총총.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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