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나비 Mar 27. 2024

몽땅, 흥해라!

봄이 오긴 오려나 봅니다.

※ 이 글에는 시샘, 시기, 질투, 부러움과 같은

저급한 감정은 1g도 없으니 이 점 꼭 유념하시고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한적한 오후입니다.

봄기운이 느껴지는 날씨라

오랜만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거려봅니다.


조금만 담가두어도

흐느적거리는 갈색 종이빨대에서

조금 더 오래 담가두어도

비교적 제 모양을 유지하는

하얀색 종이빨대로 바뀌었지만

커피를 삼킨 후 입안에 남는

미묘한 종이향이 싫어

빨대 없이 컵을 들어 홀짝홀짝거립니다.


품위 있게 홀짝홀짝

봄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기며

무심코 바라본 앞 테이블에

커플 한쌍이 눈에 띕니다.


옆으로 나란히 앉은 커플은

아주 오래전 충치 치료를 한 안쪽 어금니가

욱신거릴 정도로 달달하게 연애 중입니다.

여자는 예쁘고, 남자는 잘생겼습니다.

청춘은 다 예쁘고, 다 잘생기고.. 그런 겁니다.

나도 한때는 저럴 때가 있었는데...


흐뭇하게 보고 있는데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동시에 잠깐의 이별도 참기 힘든 모양인지

일어서는 남자의 손을 꽉 부여잡는 여자입니다.


그러자 아무리 힘을 줘도(줬다고 하겠습니다.)

여자의 가녀린 손을 떨쳐내기 힘든 남자가

선 것도 아니고 앉은 것도 아닌

엉거주춤한 자세로 쩔쩔맵니다.

나도 한때는 저럴 때가 있었는데...


한참을 그렇게

(지극히 객관적인, 제 심리적 시간으론 대략

두어 시간은 족히 지난 것 같은 느낌입니다.)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듯 서로의 손을 부여잡고 있던

여자와 남자는 급기야 타이타닉 영화를 찍습니다.


나무판자위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손에

키스를 하며 꼭 살아남겠다고 약속을 하던

케이트 윈슬렛을 눈앞에서 보고 있노라니

그때의 감동이 생생하게 다시 떠오르며

가슴 한켠이 아려옵니다.

나도 한때는 저럴 때가 있었는데...


테이블에서 서서히 멀어지는

남자의 모습과

그런 남자를 아련히 바라보고 있는

여자의 모습에서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온몸이 얼어붙은 레오가

나무판자 위에서 떨고있던 케이트로부터 

서서히 멀어지던 타이타닉의 명장면이

오버랩됩니다.

너무 아련해서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나도 한때는 저럴 때가 있었는데…


이제 오른쪽으로 꺾기만 하면 화장실이건만

차마 바로 화장실로 돌지 못하고

아쉬워 어쩔 줄 몰라하는 레오와

오리처럼 입을 쭈욱 빼고 '빨리 와'라고

입모양으로 진심을 전하는 케이트입니다.

나도 한때는 저럴 때가 있었는데...


마침내 케이트의 시야에서 레오가 사라지자

케이트가 재빨리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냅니다.


아... 요즘 손거울은 참... 크네요.

저런 사이즈는 집에서만 쓰는 줄 알았는데.

특대형 손거울로 얼굴을 요리조리 살피던 케이트가

다시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냅니다.

입술도 손을 보고, 볼터치도 다시 합니다.

그리곤 앞머리 모양이 영 마음에 안 드는지

몇 번이고 계속 손을 대봅니다.


앗! 저기 레오가 돌아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특대형 손거울을 들고

앞머리 수선 삼매경에 빠진 케이트는

레오가 걸어오는 걸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제 아주 거울 속으로 얼굴이 들어갈 정도로

바싹 붙어 앞머리를 만지작 거리고 있습니다.


안돼! 지금 너의 레오가 오고 있단 말이야!

얼른! 그 특대형 거울을 가방에 집어넣어!

아니! 케이트, 왜 지금 이 사이를 확인하는 거야!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에 한껏 소리쳐 보았지만,

제 마음의 소리가 저기 앉아 있는 케이트에게

들릴 리 없습니다.


이제 절반 정도 걸어온 레오가

돌연 발걸음을 멈춥니다.

거울 삼매경에 빠져있는 사랑스러운 케이트를

잠시 바라보더니 뒤를 돌아 다시 화장실 쪽으로

사라집니다.


레오가 그렇게 사라지고 마음속으로 열다섯 정도

셀 시간이 지났을까요.

드디어 케이트가 손거울을 가방에 집어넣습니다.

다른 몇 가지 자잘한 물건들도 정리해서

가방에 넣고는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십니다.


저기 코너에 다시 레오가 보입니다!

케이트가 이번엔 돌아오는 레오를

곧바로 확인한 모양입니다.

성큼성큼 걸어오는 레오를 보는 케이트의 얼굴에

어느새 환한 미소가 걸려있습니다.

레오가 의자에 앉기도 전에

케이트는 레오의 손을 꽉 부여잡습니다.

그렇게 부여잡은 두 손이 깍지로 변합니다.


다시 나란히 앉은 레오와 케이트는

서로의 볼을 꼬집기도 하고,

또 별 웃기지도 않는

(자리가 멀어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별 웃기지 않은 대화였으리라 확신합니다.)

말에 서로 꺄르르 넘어갑니다.

정말이지 사랑스러운 레오와 케이트 커플입니다.

나도 한때는 저럴 때가 있었는데...


잘생긴 레오와 어여쁜 케이트를 바라보며 마시는

오랜만의 봄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유독 씁쓸 달콤합니다.


봄이 오긴 오는 모양입니다.

이리도 아름다운 커플들이

하나둘씩 깨어나는 걸 보니 말입니다.


봄 내음이 물씬 나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제 봄 플레이리스트 순위권에 늘 있는 곡이 생각납니다.

여기까지 읽느라 수고하신 여러분과

이 멋진 곡을 꼭 함께 듣고 싶습니다.



10cm가 부릅니다.

'봄이 좋냐'


https://youtu.be/hBeMNv8IriI


* 합계출산율이 0.6인 시대입니다.

레오&케이트 커플뿐만 아니라

더 많은 커플들이 새로 생기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다가오는 봄,

알콩달콩 예쁜 사랑들 많이 많이 하시고,

그 사랑의 결실도 예쁘게 맺으시길

적극 응원합니다.

세상의 모든 커플!

몽땅, 흥해라!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사진출처:pixaba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