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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비 Mar 25. 2024

여배우 웃기기

고등학교 친구가 배우가 되어서 나타났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여전했다.

여전히 감정이 풍부했고,

여전히 마음은 따스했고,

그리고 여전히 당찼다.


배우가 되고 싶어 뒤늦게 관련 학교를

다시 들어갔다는 얘기에 한 번 놀라고

그 학교가 한예종이라는데 두 번 놀랐다.


비록 내가 이쪽 분야에 문외한이지만

한예종의 드높은 명성은 익히 잘 알고 있다.


 “이 새끼 자식 너무 멋진 거 아니냐!! “


호들갑을 있는 대로 떨어대는 날 보며

여배우의 고상한 손짓이 허공을 가른다.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연신 손사래를 치지만

내가 호들갑을 떤 이유는 배우로서 성공 유무가

아니었다.


확고한 목표를 지닌 자에게는 그 특유의 향이 있다.

인생의 방향을 잡은 친구에게서 그 향이 느껴진다.

나의 호들갑은 그 향에 대한 치사이자 감탄이자

부러움이었다.


뒤늦게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친구들과 같이

학교를 다닌 이야기,

독립영화, 저예산 영화들에 수 없이 오디션을

보러 다닌 이야기,

촬영한 작품들의 편집 과정에서 분량과 컨셉이

날아간 이야기들을 스스럼없이 하는 친구에게서

점점 그 향이 짙어진다.


가볍게 커피 한 잔을 하려고 들어간 별다방에서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그동안 만나지 못한 시간만큼이나

오랜만에 만난 시간도 금세 지나간다.


“아 참, 나 코미디 장르를 너무 좋아해.

요전에는 나한테 전혀 맞지 않는 배역인데

코미디 작품이어서 너무 하고 싶은 거야.

그래서 오디션장에서 미친척하고 연기했는데

이게 어떻게 운 좋게 됐네?(하하하 꺄르르)“


연기를 제대로 배운 사람답게

비연기인인 내가 듣기에도

그녀의 시원한 발성과 특유의 하이톤은 참 멋지다.

말끝마다 ‘하하하’, ‘꺄르르’ 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호방함과 귀여움이 교차하는 웃음소리는

이제야 좀 익숙해진다.


“근데 실제 촬영 들어가니까 너무 힘든 거야.

그래도 내가 좋아서 시작한 거라 원래 대본에 없는

연기도 만들어서 해 보고..

더 연구하고 더 오바해서 정말 미친 듯이 했거든.

뭐 나중에 편집본을 봤는데 늘 그렇듯이 아쉬운

점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 연기에 후회는 없더라.

진짜 좋은 경험이었고, 너무 많은 걸 배웠어.

맞지 않는 배역이었지만 도전해 보길 정말 잘했단

생각이 들었지(하하하 꺄르르)“


역시 멋지다! 는 내 말에

그리 큰 작품도, 비중 있는 배역도 아니었다며

또다시 연신 손사래를 치는 여배우 친구다.

하지만 너는 모르겠지.

나중에 네가 정말 큰 작품에, 주연으로 출연한다

하더라도 나는 좀 전에 얘기한 그 작품 속,

그 배역을 연기한 네가 더 멋지고 자랑스럽다는 걸.


긴 수다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사람들로 북적이는

길을 여배우 친구와 걷는다.


“야! 나중에는 너랑 이렇게 길도 같이 못 걷는 거

아니야? 사람들이 주변에서 막 사진 찍고! 어!

옆에 아저씨는 누구냐며 뉴스에 나고 이러는 거

아니야? 어휴, 지금 너랑 좀 걸어둬야겠네.

나중에 사람들한테 자랑하려면. “


여배우 친구가 꼭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마음을

고등학교 친구에게 전달하기에 적절한 너스레로

포장해서 슬쩍 보낸다.


절대 아닐 거라며 마지막으로 손사래를 치지만,

기분 좋은 미소가 얼굴에 가득하다.

그렇게 여배우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카페에서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너 글 쓴 거 다 봤어! 잘 쓰더라.

나 네 글에 유머가 너무 마음에 들어.

그런 쪽으로 계속 써서 나 좀 웃겨줘 봐!

왠지 뭔가 될 것 같은 느낌이야(하하하 꺄르르)“


흠, 여배우를 웃기기라니.

하아, 여배우 한 번 웃겨봐?

잠깐! 노량에서 최민식 배우님이 그랬는데.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고.

그럼, 웃기고자 하면 울 것이요. 울리고자 하면...

아! 여배우 한 번 울려?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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