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화 흑막들의 재롱잔치

by 동상

내가 처음 빛을 보기 시작한 뒤 열 번의 열 번 정도 온 세상이 어두워지고 밝아졌다. 난 벌써 긴고 긴 세월을 저 음흉한 흑막들과 보내고 있다. 흑막들도 긴 시간이 지루했는지 자기들끼리 뭔가를 계획하고 있었다.


나는 곤히 자는척하며 몰래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엿들었다. 언뜻 들리는 소리는 "스뜌디오~"라는 남흑막의 소리와 "세르프~"라는 여흑막의 소리가 반복해서 들려왔다. 분명히 이 단어들은 나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됐지만 아는 것이 적은 난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오랜 시간을 상의한 끝에 역시 남흑막보다 지위가 높았던 여흑막의 의견대로 '세르프'라는 것으로 정해진 듯했다. 그 후에도 그 둘은 손안에 네모난 상자를 가지고 손가락을 마구 두들기기도 하고 서로의 상자를 보여주며 나 몰래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바보들 난 다 듣고 있는데. 들어도 모르는 내가 바본가?'


어느 날 남흑막이 무거운 철문 밖에서 커다란 상자를 가지고 낑낑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상자 안에는 이제껏 보지 못했던 물건들이 많이 있었다. 보기만 해도 간지러울 것 같은 하얀 두 뭉치가 달려있는 것도 있고 잠잘 때 내 머리밑에 두는 것과 비슷한 물건도 있었다. 그리고 내 배출물과 비슷한 색의 다양한 문양들도 있었다.


흑막들은 나에게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저리 가. 나에게 뭘 하려고?' 나는 발버둥 치며 저항했지만 어느새 내가 입던 옷은 새하얀 새처럼 바뀌어 있었다. 옷 뿐만 아니라 흑막들은 나의 몸을 이래저래 막 움직이며 어떤 모습을 만들었다.


그들도 이런 행동이 처음이었는지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며, 평온했던 나를 부단히도 귀찮게 했다. 어느 순간 그들은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큰 노란 의자 위에 올라가 손에 작은 상자를 들고는 몸을 이렇게도 틀어보고 저렇게도 틀어봤다.


모든 준비가 완료되고 본격적으로 나의 환심을 사려 흑막들은 재롱을 피우기 시작했다. 남흑막은 자신의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만들거나 신기한 소리를 재밌게 냈다. '뭔가 바보 같지만 재밌어. 오늘은 나의 기분을 풀어주는 날이구나.' 여흑막은 아주 큰 소리가 나는 물체를 들고 내가 운동하듯 힘차게 흔들기 시작했다. "짝짝짝." 그런 이상한 행동들이 내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내가 시선을 주니 여흑막이 손안에 상자를 나에게 향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 "찰칵찰칵" 거렸다. 여흑막은 상자를 유심히 쳐다보며 "B컷."이라고 소리쳤는데 그럼 둘이서 나를 또 웃겨보려 다시 재롱을 피우기 시작했다. 처음엔 나도 웃어줬지만 이 흑막들은 정도를 모르고 계속해서 재롱을 피워대니 좋은 것도 한두 번이지 웃는 것도 힘들었다.


성격 좋은 난 흑막들의 정성이 갸륵해서 마지막이란 생각에 씩 미소를 지어줬다. '방긋' 흑막들이 좋아 죽었다. 여흑막은 뭐가 그렇게 기쁜지 방긋 웃으며 소리 질렀다. "A컷~"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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