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화 첫나들이

by 동상

흑막들은 항상 나를 어딘가에 가둬두었다. 그게 침대, 방, 아빠차, 어떤 건물 등 장소나 방식만 달라질 뿐 난 항상 안에만 있었다. 그 실내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내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땐 무척이나 추웠다. 내가 병원을 나와 아빠차로 이동할 때의 그 차디찬 물방울과 바람이 나의 연약한 몸을 휩쓰는 순간을 생각하면 아직도 으슬으슬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차가움이 어느덧 포근함으로, 포근함은 어느새 뜨거움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런 더위 때문인지 내 몸에선 쉴 새 없이 물이 솟아나고 피부는 붉어졌다. 빠져나온 물만큼 나는 더더욱 목이 말라 음료가 간절해졌고 흑막들에게 강하게 요구했다. "응애 응애" 흑막들도 무척이나 더웠는지 쉬이 지쳐서 널브러져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 추위에 취약했던 여흑막은 오히려 잘 버티는 듯했지만 오히려 추위에는 끄떡도 안 하던 남흑막은 나보다 더 피부에서 물을 쏟아내며 힘들어했다.


더위가 더 이상 참지 못할 정도가 되자, 흑막들은 왜 있는지 몰랐던 거대한 철상자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뾰로롱"이란 이상한 소리를 시작으로 철상자는 시원한 바람을 내뿜기 시작했다. 난 처음에 괴상한 소리에 놀라 울음을 터트렸다. "응애 응애" 하지만 흑막들은 나의 울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나도 점점 진정이 되고 울음을 그치고 보니 아무도 모르게 세상은 시원해져 있었다. 더 이상 나와 흑막들은 더위에 고통받지 않았다. '왜 이때까지 이 좋은걸 안 하고 있었던 거야?' 철상자의 무서움에 울던 때가 무색하게 난 거대한 철상자가 좋아졌다.


흑막들은 철상자뿐만 아니라 더위를 날려버릴 다른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여흑막은 평소 눕던 침대보다 더 좁은 곳에 나를 눕혔다. 그건 '유모차'라고 불리는 것으로 침대보다 더 부드럽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여흑막이 유모차를 밀며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철문을 열고선 밖으로 나갔다. '또 아빠차를 타려고 하나?' 하지만 내 생각과 달리 여흑막은 저절로 열리는 투명한 유리문을 지나쳐 밖으로 나왔다.


병원에서 아빠차로 이동할 때도 밖을 경험했지만 그때는 어둡고 여흑막의 품에 안겨 제대로 보지도 못했었기에 지금을 난 첫나들이로 정했다. 첫나들이는 해님이 방긋 웃으며 세상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내 들이쉬는 숨은 상쾌하기 그지없었고 내 귀에는 지저귀는 새소리가 속삭이듯 들려왔다. 안에 있던 나무와 달리 밖의 나무들은 작게는 내 키가 2개가 있어야 했고 큰 것은 내 키 20개가 있어도 부족해 보일 만큼 어마어마하게 컸다. 그 큰 나무에 있는 수많은 가지와 그 가지에 달린 녹색의 잎은 나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자신의 정체를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듯 얼굴을 흰 천으로 가리고 있는 여흑막은 신세계를 접해 눈이 휘둥그레진 나를 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여흑막만 없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여흑막이 나의 감동을 희석시키진 못했다. 얼마나 감동했는지 그동안 꼭 지키던 1시간에 한번 우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였다. 여흑막도 내가 울지 않아서 인지 아니면 시원한 바람 덕분인지 힘든지도 모른 채 눈으로 미소 짓고 있었다.


철상자도 그렇지만 이 좋은 나들이를 왜 이때까지 안 하고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흑막도 좋고 나도 좋으니 이제 종종 하자고.' 난 그런 의미로 여흑막에게 방긋 웃어주었고 여흑막도 이번엔 완벽히 이해했는지 같이 방긋 웃었다.


여흑막이 계획했던 시간이 어느덧 다 지났는지 나를 데리고 투명한 유리문을 통과해 들어갔다. 결국 나는 철문 안으로 들어와 다시금 강금되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왜 탈출을 해야 하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탈출, 탈출을 해야만이 오늘 나들이에서 보았던 밝디 밝은 세상을 누릴 수 있다. 나의 목표는 오늘로써 더욱 뚜렷해졌고 그에 따라 내 의지는 철문과 같이 굳건해졌다. 나의 미래의 탈출을 위해 '여흑막 여기 음료 한잔 주소.' "응애 응애"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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