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막들이 답답할 때가 많다. 내가 배가 고파 뾰족한 울음을 울어도 알아듣지 못하고 내 기저귀를 살펴보거나 마냥 달래기만 했다. 젖은 기저귀에 기분이 나빠 낮게 울었지만 내게 음료를 가져다줄 때도 많았다. 그나마 여흑막은 잘 맞췄지만 둔한 남흑막의 정확도는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걸 하고도 내가 울음을 그치길 바라는 괘씸한 모습에 화가 날 지경이었다. 내가 흑막들을 괴롭히고 싶거나 그냥 기분이 나쁠 때도 울어서 그럴 수 있다는 점은 제쳐두자.
이런 나와는 달리 흑막들 사이에서는 소통이 잘 되었다. 그건 바로 나처럼 울음이 아니라 '말'을 통해서 자기의 바람이나 의사를 전달했기 때문이었다. 여흑막이 '우유'라는 단어가 들어간 말을 하면 남흑막은 음료를 가지고 왔고 '기저귀'라는 단어를 말하면 기저귀를 가지고 왔다.
난 그 모습을 보면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흑막들이 세뇌를 시키는 걸 나쁘게만 볼게 아니야.' 내가 흑막들의 '말'을 알아듣게 되거나 할 수 있게 되면 좋은 점들이 아주 많았다. 먼저 흑막들끼리 계획하는 걸 엿들을 수 있다. 그럼 흑막들에게 이때까지처럼 무방비하게 당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걸 편하게 흑막들에게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생각의 결과, 난 이때까지 세뇌라고 생각해서 거부하고 있었던 걸 자발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흑막들이 나에게 반복적으로 했던 말을 최대한 따라 해 보려고 노력했다. 신기하게도 내가 "음마"라고 하면 여흑막은 그 소리를 듣고 "네"라고 답변했다. 난 그게 신기해서 "음마" "네" "음마" "네" "음마" "네"를 여흑막이 귀찮아할 때까지 계속했다.
남흑막도 똑같이 하는지 보기 위해 "아바"라고 하니 역시 남흑막도 "네"라고 답변을 했다. 남흑막도 괴롭힐 겸 계속했다. "아바" "네" "아바" "..." 남흑막은 계속 대답하기 귀찮았는지 몇 번 하기도 전에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여흑막은 귀신같이 알아채고는 남흑막을 혼내기 시작했고 결국 남흑막은 "네"라고 힘 빠진 목소리로 답변했다.
난 '책'이라고 불리는 것도 적극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흑막들은 나를 종종 흔들의자에 앉혀두고 쉴 때가 있었는데 난 그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때 책을 펼쳤다. 그 책에는 내가 배출한 걸 '똥'이라고 하고 내가 모르던 다양한 똥에 대해서 심도 있게 표현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은 김에 똥에 대해 생각해 보니 이상한 점이 많았다. 먼저 흑막들은 이걸 '똥'이라 부르지 않았다. 나에게는 꼭 '응가'라고 불렀고 흑막들 사이에서는 '똥', '응가' 둘 다 쓰지 않았다. 분명 여흑막은 '응가'를 배출하려 내가 씻는 곳으로 가면서 "나 화장실 다녀올게."라고 말했다. 그 말속에 내가 습득한 '똥', '응가'란 단어가 들어있지 않았다. 마치 남흑막을 속이는 듯 했다. 난 여흑막이 그렇게 말해도 나의 밝은 귀를 통해 "똥"을 배출하는 걸 알아챘다. 흑막들은 나를 속이려 실제와 다르게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것 말고도 다른 이상한 점도 있었다. 흑막들은 분명 내 신체의 볼록 튀어나온 부분을 보면서 "배"라고 반복해서 나에게 말해주곤 했다. 하지만 어느 날 내 머리만 한 둥그렇고 누런 물체를 가지고도 "배"라고 말했다. 더욱이 아빠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넓은 물웅덩이 위에 떠있는 커다란 물체를 가리키면서도 "배"라고 나에게 세뇌시켰다. '도대체 "배"가 어떤 걸 가리키냐고?' 흑막들이 나의 기억력을 시험하고 골탕 먹이려는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꿋꿋이 말을 익혀 나갈 것이고 이런 노력이 쌓여 난 여기서 탈출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난 기저귀가 젖는 줄도 모르고 책을 보고 있었다. 이제 슬슬 너무 젖은 것 같으니 흑막들을 불러야 할거 같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낮은 소리로 "응애 응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