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내 것을 갖는 느낌, 표현할 때마다 뚜렷해지는 게 좋았어요.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살아가는 일을 실감할 일도 없을 것이다.
- 하이데거
언제 우리는 스스로가 온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까요? 어떤 이는 가족의 따뜻함에서, 어떤 이는 일에서 오는 성취감에서, 또 어떤 이는 연인과 떠나는 여행길에 문득 살아있음을 느낄 지도 모릅니다. '살아있다'는 느낌으로 매일 가득찬 하루를 지나가는 일은 어쩌면 때로는 단단한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편하게 살아왔던 관성을 던지고 쳇바퀴 굴러가던 일상에서 방향키를 돌릴 수 있는 그런 용기 말이죠. 오늘 만난 이일웅님은 항해사라는 직업을 내려놓고 온전한 내 것, 그리고 나를 표현하고 싶다는 갈증과 함께 망원동 골목 한 켠에 닻을 내렸습니다.
요즘처럼 온전한 내 것을 갖기 어려운 시대에, 일웅님은 처음부터 제품의 사진을 찍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스스로의 선택으로 태어난 '나의 것'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목공의 매력으로 꼽았습니다. 매일 그 선택 속에서 나의 색깔을 찾아간다는 일웅님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볼까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합정동에서 목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비비우드 스튜디오 ‘이일웅'(@bebear_woodstudio)이라고 합니다. 시작한 지는 일 년 반 정도 되었고, 처음엔 취미로 시작하다가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목공방을 하기 이전엔 어떤 일 하셨었나요?
그전에는 2년 동안 알바를 많이 했고, 그 전에는 해운회사에 다녔습니다. 해양 관련 업종(항해사)에서 3년 동안 배 타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2년 동안 무얼 할지 고민을 많이 하고, 사업도 해보려다가 끝자락에 잘 되었었는데 결국 오게 된 게 목공방이에요.
항해사를 그만 두게 된 계기는?
딱히 계기는 없었고 자연스럽게 그만두었어요. 배에서의 시간도 가치 있는 시간이었지만 저는 무의미하게 느껴졌어요. 또래에 비해 급여를 많이 받는 편이었는데 그에 비해 잃는 것이 확실하게 많이 있었어요.
그때가 20대 중반이었는데 배에 있으면 할 수 있는 게 너무 한정적이에요. 인터넷도 안되고, 일 끝나면 배에 한 달에 한 번씩 올라오는 외장하드에 담긴 프로그램들을 봤어요. 그게 무의미하다고 느껴졌고, 그때 ‘돈이 전부가 아니구나.’라고 느꼈어요.
항해사란 직업도 곳곳을 돌아다니고,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직업인데 아쉽지 않으신가요?
제주도 같은 데서 배를 보면 아 저 배는 어떻게 하고 있겠구나 이런 생각은 드는 데 사실 배가 더 고립돼요. 사람들의 오해 중 하나가 항해하는 사람들은 견문이 넓을 것이라 생각하는 데 오히려 갇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왜냐면 정박해서도 나가는 게 아니라 당직을 서고, 루틴이 있고, 위험한 상황들도 많아서 항상 대기해야 해요. 오히려 지금이 더 자유로울 수 있어요. 그리울 때는 있지만 아쉬운 건 없어요.
항해사를 그만 두고 2년이란 시간 동안 여러 고민들을 하고 계속 무언가를 하신 것 같아요.
앞으로 뭘 할지에 대해 가장 고민했어요. 근데 그때가 자존감이 굉장히 낮을 때였어요. 무언가를 한다고 서울에 연고없이 올라왔는데 막상 부딪히면 한계가 많이 느껴졌어요. 친구가 서울에서 가죽 브랜드를 운영해요. 그 친구들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는데, 그 친구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알바는 계속하면서 그 와중에 뭘 할지 계속 찾았어요. 무언가를 창출하려고 노력했어요. 요리도 배우고, 바텐더 일, 바리스타 일들을 하면서 그 와중에 했던 게 목공이었어요. 처음엔 바(bar)를 운영해보고 싶었는데 막판에 진행이 안돼서 최종적으로 목공으로 왔어요. 하다 보니까 2년이 지났어요. 어떻게 보면 버틴 거죠?
말씀하신 것들 중 목공을 선택한 이유는?
목공이 좋은 이유는 사포질 하면서 느꼈어요. 저희 또래들을 보면 뭐 하나 자기 것을 갖기 힘들잖아요. 차, 집, 직장처럼 가질 수 있는 게 너무 없는데 목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다 가질 수 있어요. 온전한 내 것이 생기는 느낌이 정말 컸어요. 힘들지만 막상 만들고 나면 뿌듯하더라고요.
생각을 너무 많이 했던 거 같아요. 이전의 내 상황이랑(항해사로서의). 목공 할 때는 귀 막고 눈 감고 했던 것 같아요. 주변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도록 노력했어요. 오히려 너무 많은 조언이나 얘기를 듣지 않으려고 했어요.
힘들 때도 많지만 하다 보니까 별거 아닌 것도 많이 있었어요. 안 보이는 길이 두려울 때도 있는데 막상 해보니까 다른 길이 열리기도 하더라고요.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수익이 들어오기도 하고요. 의외의 부분이 열린다는 게 재밌었어요.
어떤 의외의 사건들이 있었나요?
우선 이런 인터뷰나 촬영을 하는 것도 의외의 일이잖아요.(며칠 전에 '프립'에서 인터뷰를 진행하셨다.) 그리고 목공배우러 오시는 분들을 보면 굉장히 다양한 업종의 분들이 많아요. 스마트 스토어로 돈을 많이 버신 분도 있고, 캠핑 인플루언서나 필라테스 강사 분들처럼요. 그런 분들 얘기 들어보면 비슷하게 힘들고 고충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런 데서 위안을 얻기도 해요. 회사 다니면 듣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어요.
목공방 시작하실 때 초기 투자비용에 대한 두려움은 없으셨어요?
있었죠. 그래서 이 스튜디오 차리는 기초공사를 스스로 다 했어요. 항해사 때 모아둔 돈으로 했어요. 그런데 무얼 하든 기초 투자비용이 들어가니까 어쩔 수 없었어요.
무언가를 선택할 때 주변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냐가 중요하잖아요.
그 당시에는 (가죽 브랜드 하는) 친구들이 좋아 보였어요. 우선 얽매이는 느낌이 없었고 그 친구들이 자기를 자꾸 표현하고 표출해 내는 게 좋았어요. 색깔이 확실해 보이는 느낌? 회사 다닐 때는 어쩔 수 없이 루틴이 있어서 색이 모호해지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그 친구들이 무언가 선택할 때마다 색이 뚜렷해지는 게 좋았어요.
나는 표현을 해야 하는 사람인데 배 위에서는 그럴 방법이 거의 없어서 그 부분에 대한 갈증이 계속 있었어요.
처음 목공방을 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입문하게 된 방법도 궁금해요.
바로 공방을 찾아가서 진짜 좋은 스승님을 만나서 그분 덕분에 용기를 얻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 그분한테 배웠어요. 보통 사람들이 어떤 공방 같은 걸 할 때 '목공을 아주 잘해야 해, 가죽을 아주 잘 만들어야 해.'라고 생각을 해요. 물론 이런 것이 당연히 기본이 되어야 하지만 그것만큼이나 사람들에게 잘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맥도널드가 수제버거보다 더 맛있고 좋은 버거는 아니지만 브랜딩, 마케팅을 잘하는 것처럼요. 여전히 제가 만든 제품이 맘에 안 들 때도 많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계속 찾아주는 건 내가 ‘잘 알린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진짜 나무 잘 다루시는 분들은 이미 엄청 많아요. 이런 부분들을 선생님께 많이 배우고 용기를 얻었죠.
어릴 때부터 아기자기한 것들을 좋아했었어요. 그리고 사진을 찍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해요.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제대로 보여 주고 싶어요. 요즘은 백 마디 말보다 한 장의 사진이 더 건네는 말이 많잖아요. 사진을 잘 찍어서 알리고 싶은 것들이 있어요.
공방에서 제품을 만드는 것 외에 교육도 하시고 계신데 어떻게 생각하게 되셨나요?
가구만 만들어서 팔기에는 조금 힘들어요. 1인 공방이기 때문에 만드는 데 시간도 오래 걸려요. 무엇보다 교육을 해서 좋은 점은 사람이 진짜 다양하다는 걸 느껴요. 저희 공방의 손님이 95%가 여자분이거든요. 그리고 그분들이 내는 아이디어들에 깜짝 놀라요. 귀걸이 고리 같은 건 여자분이라 나오는 생각들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아이디어를 오히려 얻을 때가 있어요.
제가 원목을 잘 안 쓰고 합판을 주로 써요. 합판은 사실 건축 자재예요. 원목을 안 쓰는 이유는 우선 좀 비싸고, 큰 가구를 만들 때 원목으로 다가가면 가격도 그렇고 물성도 그렇고 좀 무거워져요. 그리고 합판 색감이 좋고 강도도 좋아서 카페 같은 데서 많이 써요.
목공에서 어떤 파트(공정)가 가장 좋으세요?
사진 찍을 때가 가장 행복해요. 제가 만든 결과물을 표현해낼 수 있는 단계라서요. 나머지는 다 힘들긴 해요. 그때는 사포질이 왜 좋았나 모르겠어요. (웃음)
목공방 운영에서 힘든 것도 있으실 것 같아요.
아무래도 매출이 가장 신경 쓰이죠. 그러나 코로나와 함께 했기 때문에 저는… 그래서 코로나 없는 공방은 어떨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유지를 하고 벌어야 공방을 운영할 수 있으니까…
목공일 하면서 개인적인 성향이 달라지신 부분이 있나요?
진짜 안 바뀌더라고요. 제가 성격이 급하거든요. 이번엔 천천히 꼼꼼하게 해야지 하고 다짐하고 하는데, 쉽게 안 고쳐지더라고요. 그래도 차분하게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래야 실수가 좀 줄어드니까. 그래서 실수 노트 같은 걸 요새 쓰고 있어요. 전에 선생님이 ‘제일 느린 게 제일 빠른 거다.’라고 하셨던 말씀이 이제 이해가 가요.
일웅님은 퇴사 후 하고 싶은 걸 찾으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걸 찾는 게 어려운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하고 싶은 걸 찾을 수 있을까요?
갑자기 생각나는 것 같아요. 목공도 '처음부터 차려야겠다!'라고 한 건 아니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거 같아요. 재밌고 작업실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한 거지 처음부터 찾았다고 한 건 아닌 거 같아요. 자연스럽게 시작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무언가를 막 찾기보다는 생활에서 찾아보는 거죠.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말고 처음에 조그맣게 시작해 보면 돼요. 작업실을 구한 것도, 겨울에 밖에서 톱질하는 데 너무 추워서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날 부동산에 가서 구한 거예요.
앗, 바로 작업실을 구하셨다니 충동적인 편이신가요?
저 엄청 계획적이에요. 그런데 그날 너무 추워서 작업실을 구하게 된 거예요. (tmi. 지금도 여전히 계획적이시라고 함) 그래서 퇴사하고 2년의 막연한 시간 동안 고민 엄청 많이 했어요. 아르바이트하고 끝나고 뭐든 배웠어요. 그런데 뭐든 해보면 좋은 게, 해보면 싫어하는 건 확실히 걸러지더라고요.
목공일은 계속하실 것 같아요?
사실 장담은 못하겠어요. 이 목공일도 제가 전혀 생각 못했던 부분이에요. 저는 항해사란 직업도 제가 할 거라고 생각도 못했어요. 또 모르죠, 다른 일을 하고 있을 수도 있는지.
앞으로의 계획이나 꿈이 있으신가요?
항해사 때는 망망대해를 보니까 미래에 대한 생각이 엄청 많았는데, 지금은 당장 한 달 앞까지의 단기 생각도 너무 해야 할게 많아서 거기에 집중하고 있어요. 제품 판매도 그렇고, 클래스는 어떻게 늘릴지 이런 것들을 고민하고 있어요. 공방의 발전? 같은 걸 생각하고 있어요.
비비우드 공방의 색깔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베이지. 편안한 느낌. 공방 소개할 때 저희는 캐주얼한 공방이라고 소개해요. 그냥 가볍게 오는 실용적인 공방이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의 부제를 무엇으로 달고 싶으세요?
저는 ‘나만의 것’ ‘표현’ 이 두 가지가 키워드인 것 같아요. 음 그리고 부제는 ‘어차피 사람은 죽는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자.’로 할게요. 죽는 거 우리가 모두 망각하며 사니까. 당장 내일 죽는다고 하면 못할 게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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